매년 가을 필자는 고등학교 졸업반 학생들의 대학 추천서를 쓴다. 일단 추천서 요청을 받으면 학생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과 해프닝이 머리를 스쳐간다. 그런데 흔쾌히 추천서를 써 주고 싶은 학생이 있는가 하면 거부해야 하는 학생도 있다. 왜 그럴까? 무엇이 추천서의 여부를 좌우할까? 그것은 학생의 태도라고 지적하고 싶다.
좋은 태도를 갖고 최선을 다한 학생은 성적이 저조하더라도 찬사를 아끼지 않고 추천서를 써 주고 싶다. 허나, 태도가 나쁜 학생을 위한 추천서는 정말 쓰기 어렵다. 매사에 불만과 불평을 표현한 학생이 교사에게 남긴 인상이 좋은 추천서로 연결될 수 없다. 그럼 좋은 태도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더 나아가 좋은 태도를 어떻게 계발하고 소유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자.
‘태도’를 다룬 책 중 하와이 뉴호프교회 웨인 콜데로 목사가 쓴 “Attitudes That Attract Success”가 있다. 이 책의 예화 중 하나가 “레이”에 대한 것이다. 하와이를 방문하면 공항이나 호텔에서 손님에게 레이를 목에 걸어준다. 레이란 하와이 말로 화환 내지 꽃 목걸이이다. 레이는 그 향기가 아름답고 은은해서 방문객으로 하여금 하와이의 “알로하 스피릿,” 즉 감사와 환영을 느끼게 해 준다. 콜데로 목사는 좋은 태도가 바로 레이와 같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긍정적이고 좋은 태도는 레이 같이 좋은 향기를 풍기지만, 이와 반대로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태도는 악취를 풍긴다는 말이다. 지금 머리에 떠오르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라. 긍정적인 태도를 소유한 사람도 있겠지만, 어떤 사람은 생각만 해도 눈쌀이 찌푸려진다. 그것이 바로 레이의 향기와 악취 때문이다. 감사한 것은, 콜데로 목사의 주장과 같이 우리는 레이나 쓰레기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으며, 부정적인 태도도 노력을 통해 고칠 수 있다는 점이다.
태도는 마음의 자세가 말과 행동으로 표현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학생들과 생활하다 보면 특히 학업과 과제에 대한 학생의 태도를 매일 접하게 되는데, 숙제나 과제를 좋아하는 학생은 거의 없음을 먼저 지적하고 싶다. 하지만, 주어진 과제가 싫고 귀찮아도 최선을 다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불평과 불만을 끝까지 뿜어내는 학생, 그리고 아예 배움을 거부하는 학생도 있다. 이런 반응의 차이의 주 원인이 바로 태도, 마음가짐이라 믿는다.
긍정적인 태도란 기복신앙을 가르치는 어떤 이들의 잘못된 가르침 같이 긍정적인 말을 주문 같이 외워서 현실을 기피하거나 묵살하는 것이 아니다. 올바른 긍정의 태도는 어려움을 인정하고, 그 상황 속에서도 최선을 다함으로 무엇인가 배우고 좋은 결실을 맺는 것이다. 특히 그리스도인의 긍정적 자세와 태도는 어려움을 “통해 (through)” 주를 더 깊이 알아가고 성숙하도록 한다. 말라기 3장 2-3절 말씀에 주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 그리고, “은을 연단하여 깨끗게 하는 자"라고 기록되어 있고, 또 시편 119:71절은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가르친다. 그렇다. 그리스도인은 고난을 통해 주의 섭리를 깨닫게 되며, 환난과 역경 속에서 주의 임재와 인도하심을 체험한다.
이런 관점으로 본다면 학교란 참 좋은 곳이다. 특히 기독교 학교란 곳은 미성숙한 크리스천 학생들이 학업과 관계와 공동체를 통해 매일 배우고, 연단되고, 깨끗게 되는 곳이다. 그렇기에 학생은 학교와 교사, 그리고 학업에 대해 올바른 자세를 갖춰야 한다. 배움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때 학생은 교사의 “제자”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