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로마제국은 세계를 장악해서 부귀영화를 누리며 부하고 강한 국가를 형성해서 전 세계를 지배하려 했었습니다. 그런 로마에도 하나님의 은혜로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 교회에 바울사도께서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고 영적인 소망에 애타는 권면의 내용이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1. 영적예배: 사도바울의 애타는 권면
1절에 사도바울은 구원 얻은 성도들을 형제라고 부르며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권하노니’라는 말은 헬라어로 ‘파라칼레오’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명령한다’는 것과 ‘호소한다’는 두 가지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 단어를 통해 단호한 명령과 애타는 호소를 동시에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사도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과 교회를 얼마나 기대 가운데 사랑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지금 땅 위에 많은 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의 목자들이 양떼를 두고 그 영혼이 기어코 천국 들어가서 영원히 함께 살 수 있기를 기대하고 소원하는 마음이 간절할 때에 이렇게 ‘파라칼레오’라고 하는 애타는 마음으로 간청하는 부탁을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간청하는 명령은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사람이 그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속죄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자신의 죄로 대신 죽을 양을 준비하고 그 머리에 손을 얹어 자신의 죄를 전가시킵니다. 그리고는 양을 죽이고 그 피를 뽑아서 성막 휘장에 우슬초로 뿌리게 됩니다. 그러면 이로 인해 제사를 드린 자의 죄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영원히 속죄 받을 때까지 임시로 용서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의 제물은 다 죽습니다. 구약시대의 제물은 양, 소, 염소, 비둘기까지도 다 죽음으로 하나님 앞에 제물이 되어 끝나 버립니다. 하지만 신약시대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언약의 피, 그 보혈의 공로로 죄를 용서받았다고 해서 내 몸이 죽는 것이 아닙니다. 즉, 죄가 용서된 후 성령을 파송해 주시어서 성령이 내게 인치시고 나를 하늘나라로 데려가 주시는 과정에 내가 육체의 남은 때를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 육체의 남은 때를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권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 예배라고 합니다. 영적인 소망의 목적을 두고 사는 삶입니다. 이 세상 조건에 빠져 얽매여 살지 말고 영적인 소망과 그 성과를 목적으로 살라는 말입니다. 이는 헬라어로 ‘로기케’라는 말인데, 그 어원은 ‘로고스’입니다. 로고스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다보니까 예수님을 닮아가고, 말씀에 순종함으로 생활이 영적 예배가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배는 예배당에서만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 예배는 우리의 생활 모든 분야에서 내가 얻은 구원의 영적 소망의 신령한 기쁨을 주변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2. 성도의 삶의 자세: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2절에서 영적 예배를 드리며 사는 자들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합니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는다’는 것은 영적으로 거듭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타락했던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으로 확실하게 달라져야 합니다.
그렇게 바뀌면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알려주십니다. 그 뜻을 분별하여 행할 때에 우리를 보시는 하나님의 기대와 관심도 더욱 깊어지실 것이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대접도 달라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회를 열심히 잘 다녀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 대접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원망하기 전에 먼저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영적으로 성숙되어 있는가를 점검해야 합니다.
3-5절을 보면, 우리는 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성도로서 예수님의 지체가 되어졌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합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가 되십니다. 예수님이 머리가 되시고 그 몸을 이루는 것은 성도들입니다. 성도라고 함은 성령을 받아 구원 받은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그렇기에 성령 받은 성도들만이 머리되신 예수님의 뜻을 받들기 위하여 몸을 이루는 지체의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가운데 성령 받지 못한 사람이 직분을 받아 끼어있다고 하면 그 부분은 머리 되신 예수님과 통하지를 않습니다.
결국, 그 부분은 죽어 있는 부분, 썩어 있는 부분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교회 안에 조직을 신중히 세워야 합니다. 모든 조직은 영적 예배를 위하여 교회가 이 시대적 사명을 받들고 영적 예배로 쓰임 받기 원하는 사람들이 교회 조직에 참여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로만 조직이 이루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3. 다양한 은사로 세워져 가는 교회
6-9절에 교회 구성원들은 제각기 받은 은사가 다르다고 합니다. 교회는 성령으로 한 몸을 이루어야 하지만 그 각각의 은사는 다르게 됩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주신 영적 기술과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말씀을 권세와 능력으로 선포하게도 하시고, 또 맡기신 양떼가 병이 나서 고통 가운데 있으면 하나님이 목자의 기도를 들어주심으로 즉석에서 낫게 해주십니다. 따라서 교회 안에는 성령으로 하나 되는 영적체질신앙이 있어야 하지만, 또한 각자가 받은 은사는 다양해야 합니다. 봉사하는 사람이 있고, 기도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기도를 열심히 하고, 또 병 고치는 은사를 받았으면 기도해 줘서 병 낫게도 해야 합니다. 이런 다양한 은사들을 받은 사람들로 교회가 조직을 이루게 되면 그 교회는 전도와 선교를 통하여 구령성과가 더 넘치는 영광을 돌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10-11절에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말씀합니다. 즉, 같은 성령 받아 구원을 얻은 형제, 자매는 영적체질신앙으로 함께 교제해야 합니다. 피차 간에 주인 되시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그 분이 원하시는 성과를 위하여 이해하고 협동하는 일에 합심 전력하자는 것입니다.
이는 나의 입장,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주되신 예수님의 소원을 더 잘 이루어 드리기 위하여 피차 자기 입장을 제쳐놓고 예수님의 입장을 따라 영적인 성과와 또 그 영광스러운 결실의 소망을 목적으로 합심전력 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은 소망 중에 즐거워하고 환란 중에 참게 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살면서 더 잘 믿으려고 하면 할수록 마귀들은 더 대적하고 훼방하며 여러 모양으로 핍박하고 괴롭히게 될 것입니다. 내 믿음이 구원의 확신도 없고, 교회만 들락거릴 뿐이지 영적인 것에 대하여 전혀 소망 없는 모습이라고 한다면 사탄 마귀가 건드릴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영적 가치도 모르고 소망도 없는 자이니 언제라도 사탄이 이용해서 교회 가운데 환란풍파를 일으킬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성령 받은 사람은 원수마귀들로부터 중상모략과 행패와 핍박과 환란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이럴 때에 그것을 맞서 내가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나와 함께하시는 성령께 맡기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즉시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 받은 사람은 그 기도 응답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기도에 항상 힘쓰는 것은 하나님과 내가 마주대하여 살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기도할 때 하나님을 향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간절히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내게로 향하여 주십니다. 그래서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마주보고 사는 것이 됩니다. 항상 하나님과 마주보고 살기 위해서 우리는 기도를 쉬지 않고 힘써야 합니다.
지금 우리 인생 가운데 잘못 살았던 것이 생각나면 철저히 회개하고 용서받아야 합니다. 오늘부터라도 생각, 말, 행동하는 모든 것이 영적 예배를 위한 생활이 되도록 새 출발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