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의 압둘라 국왕은 50년을 통치하였다. 전세계, 특히 러시아와 미국에서도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는 50년 통치 후 한 말이 있다. "내가 행복을 느낀 적은 단 14일이었다."는 것이다. 행복의 정의는 무엇일까? 그것은 정신과 영, 육체가 가장 자연스런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을 원하지만 불행을 느끼며 산다. 순간적인 행복감은 있어도 불행을 느끼는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과연 행복과 불행의 조건이 있는가? 아니다. 단지 느낄 뿐이다. 어떤 조건 속에서도 행복하다고 느끼면 행복한 사람이고 불행을 느끼면 불행한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이 왜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가? 그것은 불행이란 것에 최면당해있다는 사실이다. 성장과정에서 불행스런 일들을 많이 경험한 사람은 자신이 원래 불행하도록 되어 있다고 믿는다. 이런 사람은 좋은 조건 속에서도 불행감을 느낀다. 행복감을 누리는 것에 거북하다. 그러면서 불행해질 준비를 늘 하고 산다. 어느 사건이 닥치면 자기 생각을 첨가해서 불행해지려고 한다. 특히 좋지 않은 일과 자신과 동일시 한다. 사업이 안되면 자신도 그런 사람이란 생각에 젖어있는 것이다. 불행감을 늘 느끼는 사람은 대체로 자기에 대한 몰두가 강하다. 자신의 안좋은 이미지에 모든 에너지를 쏟는다. 네덜란드 속담에, "행복한 사람치고 심술궂은 사람은 없다."고 하였는데, 반대로 불행을 느끼는 사람은 자학하는 것은 물론, 인간관계가 원만치 못하다. 상대방에 대한 태도와 대화가 무례하다. 그 결과 정말로 이 사람은 불행해지는 것이다.
불행감을 없애고 행복감을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 지나친 자기집착을 버려야 한다. 또한 안좋은 사건과 자기를 결부시키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환경과 여건이 안좋아도 그것과 분리하여 자존감을 갖도록 하고 자신의 좋은 모습을 늘 생각하자. 사실 행복이란 개인활동을 통해서 계발되고 형성되는 관념, 생각, 태도에 의해 만들어진다. 한마디로 행복감은 정신적인 습관과 자세라는 말이다. 자신을 훈련시켜보도록 하자. 최소한 하루에 몇번씩 미소짓는 연습을 하라. 어떤 일에 웬만하면 조급하지 말라. 많은 문제들이 시간이 되야 스스로 풀어지는 것을 경험하지 않는가. 안좋은 일에도 차분하라. 나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상대방을 억지로 바꾸려 하지 말라. 여유를 가지고 그 사람에게 계속 나의 할 도리만 하라. 인간관계가 좋아지면 행복은 따라온다. 사실 이러한 노력들은 쉽지 않다. 행복감을 누리고 사는 일이 어디 그렇게 마음먹은대로 되던가? 그러나 할 수 있다고 믿으라.
행복해지려고 하는 노력과 행동은 자신의 상상과 생각에서 나온다. 자신의 생각의 방향과 틀을 바꾸지 않으면 행동과 노력도 곧 시들어버린다. 평소에 좋은 생각을 해야 한다. 우리의 자율신경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이 가상인지, 현실인지를 구분하지 못한다. 내가 골프치는 상상을 하기만 해도 우리의 몸은 실제로 골프친 사람이 갖는 운동효과를 지닐 수 있다고 한다. 생각이 중요하다. 자신은 늘 행복하다고 생각하라. 감사한 일만 생각하면서 말이다. 평소 생각을 옳게 가지면 두뇌, 간장, 신경조직 등 우리 몸이 건강해진다. 나는 이것을 믿음의 한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성경에도 우리의 생각을 통해 하나님이 넘치는 은혜를 주신다고 언급한다(엡3:20). 내 앞에 아름다운 광경과 행복한 자신의 모습을 늘 그려라. 사람들을 만나면 먼저 말을건네고 명랑해지려고 하라. 사람들은 흔히 이런 생각을 한다. 성격대로 산다고....... 그러니 성격이 그렇지 못한 자신은 사람들 앞에서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격을 연구하는 교류분석학자들은 기질은 고칠 수 없지만, 성격은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기질은 타고난 것이지만, 성격은 살면서 경험으로 조성된 것이다. 그래서 성격은 새로운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필요할 때마다 어느정도는 말이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자신이 변화된 모습을 상상하라. 그러면, 그 분의 영이 임재하시므로 우리 몸에 있는 창조적 메카니즘이 가동되기 시작하면서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하게 하신다. 우리의 영혼과 육체, 환경을 회복시키며 살게 될 것이다. 성경적인 행복은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나와의 관계가 원만해지는 것을 말한다. 더 나아가 사회 생활의 길이 열리게 된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전인적 치유(Holistic Healing)이다. 행복이 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행복을 만든다는 생각이 중요하지 않을까.
시애틀 수정교회 남윤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