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감리교회 목사가 되는 과정의, 연회 준회원들을 심사하는 뜻깊은 시간이 있었다. 부족한 자가 자격심사위원이 되어서 한 명씩 교리와 신학, 영성과 목회 비전 등에 대해 질문을 하고 답변을 들으면서 자격을 평가하는 시간이었다.
선배 심사위원들 앞에서 긴장한 듯 전도사들은 먼저 본인의 소속을 밝히며 소개를 한다. "기독교대한감리회 경기연회 00구역 00교회 000입니다" 이것이 쉽지 않아 혹 하나 빼먹기도 하고, 머리로 생각하며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옛날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은 별것 아닌데도 그때는 그것 외우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하늘 같은 목사님들 앞에서 떨리기도 했다. 그 당시 열심히 잘 말했는데, '전도사님은 소속이 없습니까?'라는 질문을 받고서야 '기독교대한감리회'라는 말을 빼 먹었던 것을 알아차린 기억도 났다. 감회가 새롭고 나의 목회도 점검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우리에게 배정된 15명의 진급자들을 심사하면서 솔직히 썩 좋은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내일의 꿈이 그려지며 기대에 벅찰 만큼 자신감과 자부심을 가질 수 없었다. 교회를 든든하게 세워나가야 할 차세대 지도자들인데, 목회에 대한 비전이 약해 보였기 때문이다. 영성에 대한 강한 준비와 훈련이 부족한 것을 보았다. 보다 정확하게 다니엘처럼 뜻을 정하여 다부지게 하려고 하는, 구체적인 열정이 아쉬웠다.
물론 말씀을 본다고 했지만 주로 큐티 책을 이용하여 하루하루 묵상하는 정도였다. 물론 좋고 중요하다. 그러나 목사가 되고 목회를 하려면 나에게 주는 강한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이에 성경을 붙들고 기도하면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녹고 깨지고 체험되는 영적 훈련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 아직 젊고 시간 있을 때에, 초창기에, 나를 향한 뜨겁고 분명한 경험과 주님과의 긴밀한 시간들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설교를 하기 위한 말씀과 기도가 아니라, 나를 변화시키기 위한 영성훈련이 되어야 한다. 잘 되고 편하기 위한 목회의 비전이 아니라, 주의 뜻을 이루며 말씀을 그대로 지키기 위하여 온갖 갈등과 어려움 속에서도 이를 극복하고 응답받는 자기 훈련이 있어야 한다. 훌륭한 프로 선수가 되기 위하여, 수많은 관중 앞에서 골을 넣어 환호성의 갈채를 받기 위하여, 먼저 피나는 훈련과 노력, 고생이 필요한 것과 같다. 그런데 그런 과정이 없어 보이는 것이다.
그나마 수련목보다는 개척을 하여 실제로 발버둥치는 몇 명을 보았지만 아주 야무진 모습을 찾기엔 역부족이었다. 지금의 어려운 상황은 문제가 안 된다. 오히려 그것 때문에 약이 되는 것인데, 어떤 친구는 '지금이라도 이 길이 하나님 뜻이 아니면 접어 달라고 기도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단호하게 '그러한 생각이라면 차라리 지금 그만 두라'고 했다. 분명한 확신과 소명을 가지고 주의 길을 걸어도 때에 따라 힘들고 지칠 수 있는 것인데, 시작부터 그러면 어떻게 되겠는가?
'나는 죽어도 가리라, 비바람이 불어도 가리라, 눈보라가 앞길을 막아도 가리라, 이 길은 영광의 길이며 승리의 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나는 가리라' 이 찬양을 좋아한다. 지금도 자주 부른다. 이 글을 쓰면서도 힘차게 불렀다. 힘이 나고 참으로 좋다. 주의 길을 걷는 것이 행복하다. 나는 행복한 목사다. 직장생활을 접고 주의 길로 뛰어들어 30년이 지났다. 숱한 고난과 역경이 있었지만 아니다. 그러한 모든 것들은 간증이 될 뿐이다. 눈물이 변하여 기쁨과 감사의 고백이 되었다. 한숨이 변하여 아름다운 찬양이 되어 마음을 울리고 있다. 시편 126편 5절의 말씀이 생각난다.
후배들이여, 목회는 울어야 한다. 그래야 웃을 수 있다. 지금 눈물 흘리지 않으면, 배고프지 않으면, 목회의 맛을 모른다. 목회는 아파야 한다. 지금의 상처와 아픔, 그것을 느끼지 못하면 목회가 무엇인지 모른다. 때론 힘들고 또 억울해서 나 홀로 울어보지만, 이것이 주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이며 주님의 심정을 알 수 있게 된다. 후배들이여, 행복한 목회이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