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여행할 때 좁은 좌석에서 한 자세로 앉아있다보면 몸이 저려오고 마비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런 증상을 ‘심정맥 색전증’이라고 하는데 좁은 좌석에서 오랫동안 움직임이 없이 앉아있다 보면 혈액 순환에 이상이 생기면서 나타난다. 이것은 ‘장시간 같은 자세’가 그 원인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간격으로 몸을 움직여 주는 것이 최선의 예방법이라고 한다. ‘굳어진 자세’를 만들지 않는 것이 통증이나 ‘심정맥 색전증’을 방지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된다는 것이다.
‘굳어진 자세’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일종의 ‘고집’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한다. 자세를 조금만 바꾸면 되는데 그것을 거부하는 태도를 뜻한다. ‘고집’을 긍정적으로 다룰 수도 있을 것이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태도보다 ‘한 우물파는 정신’을 강조하는 측면에서 말이다. 그러나 ‘한결같은 마음’과 ‘편협한 생각에서 출발하는 고집’은 다른 것이다. ‘한결같은 마음’은 긍정의 결과를 가져다 준다.
하지만 ‘편협한 생각에서 출발하는 고집’은 부정의 결과를 얻도록 만든다. 하나님의 사람은 ‘고집불통’의 사람이 아니다. 대나무처럼 곧고 소나무처럼 늘 푸르른 한결같은 믿음을 갖지만, 동시에 자신을 깨어버리는 일에는 결코 인색하지 않다.
성경은 자신의 고집을 아낌없이 깨뜨려 버린 자가 위대한 은총을 입은 예를 여러 곳에서 보여 주고 있다. 그 중 한 사람이 기드온이다. 사사기 8장에 보면 이스라엘의 적인 미디안 군대의 숫자를 13만 5천명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이스라엘의 군대 숫자가 3만 2천명. 산술적으로는 4배 이상의 차이가 나는 셈이다. 이스라엘이 승리하기에는 불가능한 싸움이다. 그런데 기드온을 향해 하나님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명령을 내리신다. 그것은 ‘버리라’는 것이다. 먼저 하나님은 ‘두려워 떠는 자’를 버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돌아간 숫자가 2만 2천명. 이제 남은 자는 1만명. 그런데도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남은 1만명 중에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 자 9천 7백명을 버리라고 말씀한다. 이제 남은 이스라엘의 군대는 겨우 3백명. 처음 싸우겠다고 찾아온 3만 2천명의 1%도 안되는 숫자이다. 이 1%도 안되는 병사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병사로는 어떠한 계획을 세우는 것도, 싸움도 불가능해 보인다. 이쯤되면 자신의 고집을 부릴 만한 상황이 아닐까? 아닌 것은 아닌 것이기 때문에 말이다. 그런데 기드온은 자신의 고집을 꺾어버렸다. 그러자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미디안 13만 5천명을 깨뜨려 버린다.
하나님의 사람은 이미 고집을 꺾은 자이다. 자신이 세워놓은 자신의 인생관을 꺾고 하나님께서 세워 놓으신 신적 인생관을 받아들인 사람이다. 그렇다면 꺾지 못할 고집이 어디 있을까? 자신의 고집을 꺾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유연함이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