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신문은 724명의 교수들을 대상으로 '새해 희망의 사자성어'를 설문조사했다. 265명(36.6%)이 '정본청원'(正本淸源)을 선택했다. 이것은 한서(漢書) 형법지(刑法志)에 나오는 문구인데, '근본을 바로 하고 근원을 맑게 한다'는 뜻이다.
왜 이 말을 2015년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택했을까? 이에 대해 고려대 이승환 교수는 말한다. "관피아의 먹이사슬, 의혹투성이의 자원외교, 비선 조직의 국정 농단과 같은 어지러운 상태를 바로잡아, 근본을 바로 세우고 상식이 통용되는 사회를 만들자는 의미이다."
'요즘 애들은 싸가지가 없어.' '요즘 애들은 개념이 없어.' 어른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사실 이들이 만들어 갈 미래를 생각하면 아득하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 그런데 아이들이 이렇게 된 원인은 뭘까? 어른들이 잘못 가르쳐서 그런 건 아닐까? 어른들이 잘못 보여줘서 그런 건 아닐까? 진짜 가르쳐야 할 건 안 가르치고 '성공해라, 출세해라'고 독촉했던 부모들 잘못이 아닐까?
돈을 벌 수 있다면 음식에 이상한 물질도 첨가할 수 있는 어른들. 순간적인 쾌락을 만족시키기 위해 딸 같은 아이들도 안을 수 있는 어른들. 자기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는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 어른들. 자기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순진한 학생들까지도 선전용으로 동원할 수 있는 어른들. 상아탑에서 자기 만족을 채우기 위해 제자들도 이용할 수 있는 어른들. 바로 이들이 문제다. 이런 자들에게서 배운 후세들이니 오죽할까.
이제 개념정리부터 해야 한다.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성공·출세를 운운하기 전에 정도를 찾아야 한다. 이권을 위해서는 원칙도 헌신짝처럼 내던지는 수준으로서는 안 된다. 편법·불법·반칙을 근절시켜야 한다. 기본적인 개인의 양심도 지키지 않으면서 사회적 양심을 운운해서는 안 된다.
어느 날 여수에서 있는 집회에 가기 위해 광명KTX역으로 갔다. 열차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열차가 오고 있었다. 열차를 타기 위해 사람들이 하나둘 나왔다. 저쪽에서 젊은 신사가 양복을 입고 오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플랫폼에서 가래침을 뱉는 게 아닌가? 아~ 저 몰상식!
열차에 탔다. 옆쪽 열 앞좌석에 젊은 아가씨 네 사람이 탔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깔깔거리며 가고 있었다. 직장을 다니는 아가씨들 같은데, 즐거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젊음이 있어서 그런지 보기에 좋았다. 잠시 후 한 아가씨가 말했다. '초코파이 먹고 싶다.' 가방에서 초코파이를 꺼내 먹었다.
그런데 한 아가씨가 실수로 초코파이 조각을 통로에 떨어뜨렸다. 당연히 줍겠지?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떨어진 초코파이 조각을 발로 옆 사람 의자 밑으로 차 버리는 게 아닌가? 아니 이럴 수가? 알 만한 아가씨가. 수치가 뭔지를 느낄 만한 나이가 아니던가? 그런데 어떻게 저런 행동을. 정말 개념 없는 아가씨가 아닌가?
우리 동네는 좀 지저분하다. 쓰레기 분리수거가 기본이건만, 그것도 하지 않는다. 그래도 겨울에는 냄새라도 나지 않지. 여름이면 괴롭다. 음식 쓰레기와 일반 쓰레기를 같이 버린다. 그러다 보니 음식물이 썩어서 물이 질질 흐른다. 그 냄새가 창문을 타고 집안으로 들어온다. 가구는 딱지를 붙여서 구청에 신고를 하고 내다놔야 한다. 기본이다. 그런데 그 기본을 지키지 않는다. 신고도 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내버려 둔다.
우리 집은 길 옆에 있는 빌라이다. 바로 밑에 재래시장이 있다. 물가가 싸기 때문에 서민들이 살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시장에서 올라오다 보면 우리 집이 좀 언덕진 곳이다. 연세 드신 분들이 그곳을 오르는 게 힘드나 보다. 그래서 가다가 도중에 쉬신다. 우리 집 옆에 있는 화단 근처에서. 그런데 그 화단이 지저분해진다. 빈 병을 버리고, 먹다 만 음식 쓰레기도 버리니까. '이게 우리 동네 수준이란 말인가?' 서글픈 일이다.
요즘 담뱃값은 자꾸 오른다. 그러니 좋다고 웃는 이도 있고, 속상해서 인상을 찌푸리는 이도 있다. 그런데 나는 반갑다. 왜? 사람들의 건강을 지켜주려는 것이니까. 사실 나나 아내는 담배 연기를 참 싫어한다. 그런데 우리 동네 아저씨들은 길을 가면서 담배를 많이 피운다. 10-20m 정도 떨어져 있어도 그 담배 연기를 마셔야 한다. 괴롭다. 아내는 더 짜증을 낸다. 간접흡연을 하는 셈이다. 왜 자기 즐거움만 생각하는 것일까? 다른 사람을 조금이라도 배려한다면 저렇게 하지 않을 텐데.
더 화가 나는 게 있다. 담배를 피우고 남은 꽁초를 아무 데나 버린다. 그래서 동네 거리에는 담배꽁초가 너저분하게 버려져 있다. 그런데 더 개념 없는 이들이 있다. 우리 교회는 주차장도 교회도 개방하는 편이다. 지역 주민과 함께 가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그런데 새벽기도 시간이나 아침 출근길에 보면 이곳저곳에 담배꽁초가 뒹군다. 교회라고 하면 담배를 피워서는 안 될 곳이라는 상식 정도는 갖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신성한 교회에서조차 담배꽁초를 버리는 건 무슨 배짱인가?
뿐만 아니다. 교회에 주차를 해 두고 며칠간 빼지 아는 사람들도 있다. 심지어 주일까지도.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다. 되레 화를 내는 사람도 있다. 어떤 때는 옆에 있는 차를 긁어 놓고 아무런 얘기도 없이 사라지는 얌체도 있다. 정말 개념 없는 사람들이다.
교회 앞에 목욕탕이 있다. 자그마한 동네 목욕탕이기 때문에 별도의 주차장이 없다. 교회 주차장을 이용하는 분들도 있으리라. 나는 그런 건 개의치도 않는다. 그런데 목욕탕 앞 작은 공터에 주차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도 그럴 수 있다. 잘만 주차해 둔다면. 그런데 다른 차들이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주차를 해 두는 사람이 있다. 연락을 해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심지어 어떤 이는 연락처조차 남기지 않는다. 운전하는 이라면 차가 빠져나갈 수 있는지 정도는 분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왜? 정말 개념이 없다.
교회는 이 세상의 대안 사회이다. 그런데 요즘 교회에서도 개념 없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상식 이하의 일을 저지르는 이. 말이 통하지 않게 고집을 피우는 이. 자기 맘에 안 든다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이. 어디 그 뿐인가? 장로라고 하는 사람들이 서로 멱살잡이 싸움을 하는 광경이란 정말 꼴불견이다. 세상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교회는 달라야 하지 않는가? 교회에서조차 개념이 서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겠단 말인가? 그러니 '상식이 통하는 교회'라는 슬로건을 표방하는 우스운 일도 벌어지지 않는가?
지난 한 주간 기도원을 다녀왔다. 도로에서 기도원으로 들어가는 길이 300여 미터 정도 된다. 그런데 그 길 좌우측에 비닐봉지, 휴지, 캔, 전단지 등이 너저분하게 버려져 있다. 어떤 이는 나뭇가지에다 학교를 소개하는 광고지를 꽂아두기도 하고, 어떤 이는 귤껍질을 비닐봉지에 넣어 꽃나무 사이에 감춰두기도 했다. 개념 없는 사람들. 그런데 그게 누굴까? 기도원을 오르내리는 교인들 아닐까?
2015년은 '개념 세우기'를 했으면 좋겠다. 그럼 무엇으로 개념을 세울 건가? 개혁주의 신학에 맞게 하나님의 말씀을 잣대로 삼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지 않게. 하나님의 말씀을 넘어서지 않게. 하나님의 말씀에 못 미치는 일이 없게. 철저하게 말씀 중심으로. 교회도, 목회자도, 온 성도도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