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 통나무집에 한 병약한 남자가 살았습니다. 그 집 앞에는 큰 바위가 있었는데, 그 바위 때문에 집 출입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집 앞의 바위를 매일 밀어라!" 그때부터 그는 희망을 가지고 매일 바위를 밀었습니다. 8개월이 지났습니다. 점차 자신의 꿈에 회의가 생겼습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바위의 위치를 자세히 측량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 바위가 1인치도 옮겨지지 않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현관 앞에 앉아 지난 8개월 이상의 헛수고가 원통해서 엉엉 울었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찾아와 그 옆에 앉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왜 그렇게 슬퍼하지?" 그가 말했습니다. "하나님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지난 8개월 동안 희망을 품고 바위를 밀었는데, 바위가 전혀 옮겨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네게 바위를 옮기라고(to move the rock) 말한 적이 없단다. 그냥 바위를 밀라고(to push against the rock) 했을 뿐이야. 이제 거울로 가서 너 자신을 보렴." 그가 거울 앞으로 갔습니다. 곧 그는 자신의 변화된 모습에 깜짝 놀랐습니다. 거울에 비춰진 남자는 병약한 남자가 아니라 근육질의 남자였습니다. 동시에 어떤 깨달음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지난 8개월 동안 밤마다 하던 기침이 없었구나! 매일 기분이 상쾌했고, 잠도 잘 잤지."
하나님의 계획은 '바위의 위치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를 변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변화는 '바위를 옮겼기 때문'이 아니라 '바위를 밀었기 때문'에 생겼습니다. 변화를 경험한 남자는 드디어 깨닫게 되었습니다.
삶에서 '바위를 옮기는 표적'보다 '바위를 미는 행위'가 더 중요함을.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개념을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식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목적으로 합니다.
사도 요한이 천사가 준 작은 책(하나님의 말씀)을 먹자 입에는 꿀같이 달았으나 다 먹은 후에 배에서는 쓰게 되었다고 요한계시록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변화를 가져다 주는 특성을 지녔음을 설명한 내용입니다. 약이 쓰다는 말은 약의 효능을 설명한 것입니다. 써도 몸에 좋으니까, 병든 몸을 회복시키니까 먹으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이 죄성에 물든 사람을 변화시키는 역동성을 가지고 있음을 강력하게 설명하는 내용입니다.이렇게 변화를 주도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뀌게 되는 영역은 무엇일까요?인생의 방향 수정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심령 속에 들어오고, 우리가 그 말씀에 붙잡히기만 하면 내가 무엇을 하며, 무슨 목적으로 살아가야 할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방향을 잡아주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인격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히면 그 사람의 지식이 달라집니다. 생각도 말도, 가치관도, 목적도 변하기 시작합니다. 땅이 산성화 되면 열매를 잘 맺지 못합니다. 그러나 거름을 자꾸 주면 점점 알칼리성으로 바뀝니다. 그래서 다시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인격적으로 부딪치게 되면 그 말씀이 나를 근본적으로 변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힘으로 되지 않지만 성령으로 되게 하는 능력이 담겨져 있습니다. 강퍅하고 황폐한 영혼이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히면 전혀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아름다운 인격의 소유자가 됩니다. 손가락질 받으며 기피 대상이었던 존재가 존경과 사랑의 대상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을 사랑하시기에 큰 축복을 허락하셨습니다. 그 축복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아무나 그 말씀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만이 받습니다. 그렇기에 삶의 변화를 주도하는 강력한 능력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주목합시다. 그 말씀에 귀를 기울입시다. 그 말씀을 실천해 봅시다. 하나님의 말씀이 만들어가는 변화가 분명 당신의 몫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