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마13장에 네 가지 땅에 뿌려진 씨의 비유를 보면 생명의 씨가 땅에 떨어져 자라 열매를 맺고 고운가루로 갈려져 한 떡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그 과정과 함께 각 과정마다 필사적으로 이것을 방해하는 악한 자의 역사가 있었지만 그 단계마다 항상 큰 씨름을 통해서 이기고 있는 그림의 내용들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주님을 처음 영접한 후, 영광의 소망이신 생명의 씨는 이미 사람의 인성을 상징하는 땅인 우리 사람의 마음에 뿌려졌습니다. 누가 뭐래도 믿는 우리 안에 생명의 씨가 없다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씨가 떨어지는 순간부터 악한 자는 방해하기 시작합니다.
어떤 씨는 길가에 떨어져 공중의 새가 먹어버립니다. 어떤 씨는 돌밭에 떨어져 흙이 깊지 않아 싹이 나왔지만, 해가 돋은 후에 말라버립니다. 어떤 씨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져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습니다. 그러나 좋은 땅으로 떨어진 씨는 백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을 맺습니다. 길가와 같은 마음은 그 안에 세상적인 왕래가 너무 많은 마음이며, 돌밭과 같은 마음은 개인적인 욕심, 자기 연민 등의 돌들이 생명을 뿌리내리지 못하게 하는 마음이며, 가시 떨기는 이생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관한 마음입니다. 그러나 좋은 땅은 말씀의 씨앗이 우리 안에서 자라 결실을 맺을 수 있는 땅입니다.
그러나 씨 뿌림에서 부터 갖은 방해공작을 펴는 원수는 사람들이 잘 때에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갑니다. 원수가 가라지를 덧뿌리는 그 이유는 밀이 자라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잘지라도 악한 자는 잠도 자지 아니하고 악한 뭔가를 뿌리고 다니는 것 입니다. 그러나 악한 자는 여기에서도 멈추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들어온 모든 씨보다 더 작은 겨자씨와 같은 생명의 씨의 본성과 기능을 완전히 바꾸어 놓아 큰 나무가 되게 하여 악한 영인 새가 깃들이게 합니다. 겨자씨는 작고 먹기에 좋지만, 큰 나무는 균형 잡히지 않게 자라 많은 악한 새가 자리를 틀고 앉아 깃들입니다.
그러나 대적은 여전히 쉬지 않습니다. 가루가 된 밀속에 부패시키는 누룩을 섞어 놓습니다. 누룩은 악한 것들입니다. 감추어 넣은 누룩을 부풀게 합니다. 그 방해는 하나님의 목적이 방해될 때까지입니다. 그리스도는 씨로서 우리 안에 오셨습니다. 이 씨가 영광의 소망입니다. 그 씨를 뿌린다는 것은 과정이 필요한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우리 마음에 뿌릴 때, 우리가 그분께 우리 안에서 자랄 수 있는 땅과 기회를 주실 것을 기대하십니다. 어려운 환경은 때로 우리를 거꾸로 매달아 놓기도 합니다. 그러나 고드름이 거꾸로 매달아도 자라듯이 사탄의 어떤 방해에도 우리도 자라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