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국내 최고령 목회자이자 한국교회사(史)의 '산 증인'인 방지일 목사(영등포교회 원로)가 10일 오전 0시 20분께 서울 성북구 인촌로 고대안암병원에서 노환으로 향년 103세를 일기로 소천(召天, 별세)했다.
고인의 빈소는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오후에 마련될 예정이다. 장례는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총회장(葬)으로 치러치며 장례식은 오는 14일이다.
영등포교회 관계자에 따르면 방 목사는 지난 4개월여 식사도 못하고 바깥 출입을 못할 정도로 몸상태가 현저하게 안좋았으나 다시 회복되는 과정이 몇차례 있었다며 몸이 많이 안좋아 병원에 가서 링겔을 맞고 다시 돌아온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회복돼 타교회 초청을 받아 강연을 하는 등 활동을 했다며 강연을 하러 갈때도 휠체어를 타고 가지만 강의는 꼭 서서 했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특히 병원으로 옮겨진 9일 오전에는 "식사도 잘 하셨다"며 편안하게 소천하셨다고 했다. 고인은 이날 오후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옮겨진 뒤 9시간 여만에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한편 고인이 총회장을 지낸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제99회 총회를 앞둔 지난달 총회 장로신문인 <한국장로신문> 인터뷰에서 고 방지일 목사는 "증경총회장 방지일 목사께서 최근 노환으로 바깥출입을 못하고 계신다기에 찾아뵈었다"며 총회를 앞둔 시점에서 "100주년을 앞두고 있는 우리 총회가 잘 될 것이라 본다. 총회 때 가(서) 봐야지"라고 말했다.
또 "한국교회뿐 아니라 전 세계교회가 복음을 잃어버리고 종교문화 행사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예수는 이 땅에 죽으러 왔다. 그리고 부활 승천하셨다. 다시 오실 것이다. 이 복음을 기억해야 한다"고 당부하셨다고 보도했다.
고인은 1911년 평안북도 선천에서 방효원 목사 아들로 태어나 선천 신성중학교와 평양 숭실대, 평양장로회신학교를 나왔다. 신학교 시절, 평양대부흥운동의 중심지였던 평양 장대현교회 전도사로 시무하면서 길선주 목사와 함께 사역하기도 했다. 1937년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중국 산둥성 일대에서 21년간 선교사로 사역했다.
귀국 이후 지난 1958년부터 20여 년간 서울 영등포교회 담임을 맡아 성공적으로 목회를 했다. 예장 통합 총회장과 대한성서공회 이사장,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명예회장, 한국교회연합 명예회장 등을 역임한 고(故) 방지일 목사는 정부로 부터 국민훈장 모란장(2008)을 받았고, 저서로는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2010)', '세이레 평화 기도회(2011)'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