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문화라는 오랜 전통을 가진 한국 사회에 처음 들어온 기독교는 바깥 출입을 하지 못하는 여성들을 위해 '전도부인'을 둬 그들과 만나 복음을 전했다.
또 여성을 위한 학교를 세우기도 했다. 당시는 여성들의 외부 출입이 제한됐기 때문에 선교사들은 버려진 여자 아이, 의지할 데 없는 가난한 여성들로 학생 수를 채우며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끌어 올렸다.
이처럼 소외된 여성들에게 가장 먼저 다가갔던 기독교의 전통과는 반대로, 지금의 한국교회는 우리 사회에서 '여성에 대해 가장 보수적인 집단'으로 남아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지난 21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IVP산책엔잇다' 카페에서 진행된 청어람 테마토크에서 강연자로 나선 <교회언니 여성을 말하다>의 저자 양혜원 작가는 '교회 안에서 여성의 자리는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먼저 '교회 안에서 말하는 여성의 존재'에 관해 정의하며 여전히 여성에 대해 문턱이 높은 한국교회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양 작가는 "우리가 흔히 교회를 통해 배운 것들은 여자로 인해 이 세상이 타락했고, 따라서 여자는 남자에게 순종해야 하고, '정숙함으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의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딤전 2:15)이다"며 "여성이 존재론적으로 열등하다고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지금 이 세상에서 여성에게 주어진 역할을 이것이라는 것이 여성에 대한 교회의 중론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성경에는 또 한편으로는 여성을 어느 정도 남성과 대등하게 대하는 부분도 있다"며 "대표적인 것이 갈라디아서 3장 28절(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이고, 고린도전서 7장에서도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결혼하지 않은 상태를 더 좋은 것으로 권면한다. 또 바울의 편지에는 여성 동역자들의 이름도 종종 등장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초기 기독교가 자라난 배경이 됐던 그리스 로마의 가부장적 문화와 그 사회에서 나오는 기독교에 대한 평판들을 의식했기 때문에, 성경에도 여성의 자리에 대한 일관되지 않은 가르침이 혼재한다고 보았다.
양 작가는 "고대의 로마 사회는 매우 가족 중심적인 사회였는데, 아버지의 권한이 가장 큰 권한이고, 아버지의 명예는 아내의 순결과 자녀의 순종이 지켜주었다. 또 여성에게 성적 순결은 곧 남성의 명예와 직결된 것이었다"면서 "로마 사회에서는 그래도 여성의 재혼을 장려했지만 우리 유교 문화에서는 재혼도 금지되어 있었다. 그만큼 (한국 사회가) 여성의 남성에 대한 예속이 심한 사회였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양혜원 작가는 "한국에 처음 기독교가 전파되었을 때, 그 당시 사람들이 접한 기독교는 아마도 유교와 많이 다르게 인식되었을 것이다"며 "제사를 모시지도 않고, 여성들에게 교육을 시켰고, 또 교회 안에서 여성과 남성이 함께 어울려 일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고 부연했다.
그는 이어 "기독교가 서구문물과 근대화 그래서 무언가 선진적인 것과 연결되지 않았다면 그렇게 성장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며 "그러나 서구의 성적 문란은 늘 비판의 대상으로 그것은 한국의 정체성을 찾고 유지하고자 하는 대항적 움직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양 작가는 "유교적 국가들이 아시아 경제대국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유교적 가치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했고, 따라서 서구에 대항하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교에서 찾기 시작했다"며 "한국 교회의 성장은 어쩌면 그와 비슷하게 한국의 유교적 교회 문화에 대한 자신감으로 표출되는지도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끝으로 그는 "선교 초기에 기독교는 서양문화가 동양문화에 낯선 것처럼 한국 문화에 낯설었지만 오늘날 기독교는 더 이상 한국 문화에 낯설지 않다"며 "오히려 기독교가 (유림을 제외하고) 여성에 대해 가장 보수적인 집단으로 남아 있다. 전통의 담지자가 된 것이다"고 지적하면서 "즉, 이것은 성경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의 문제인 것이다. 만약 이것이 오늘날 기독교의 역할이라면 그것을 통해서 어떤 선한 것들이 전파되겠는가" 반문하며 "만약에 전파되지 않는다면 한국 기독교는 선교적 사명에서 큰 위기에 봉착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우려를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