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대학교(총장 채수일)가 주최하고 한신대 학술원 신학연구소가 주관한 '종교와 과학 학술대회'가 '동아시아의 종교와 과학의 대화'를 주제로 27일 서울 한신대 신대원 채플실에서 열렸다. 장회익 교수(서울대 명예교수)가 주제강연자로 나섰고, 그 외 12명의 학자들이 다양한 주제로 발표를 이어갔다.
"과학, 동아시아 정신세계에 큰 영향 못 끼쳐"
장회익 교수는 '종교와 과학의 대화-동아시아 문명의 맥락에서'를 제목으로 발표했다. 장 교수는 먼저 한국의 기독교가 자리하고 있는 동아시아의 문명 특징을 고찰했다. 그는 "동아시아에서는 '과학'이 쉽게 '기술'과 등치되는 경향이 있다"며 "그래서 뒤늦게 서구에서 전래된 체계적 과학조차도 이것을 우리의 근원적 '물음'을 구성하는 '정신문명'의 일부로 보기보다는 이런 '물음'과는 무관한 고급기술 정도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과학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우리의 문제 상황 자체의 이해를 어렵게 하며 결과적으로 과학과 종교 사이의 건전한 대화를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장 교수는 "한국의 기독교는 유교 중심의 상층문화 계층을 중심으로 수용된 것이라기보다는 기복종교의 색채가 짙은 기층문화 계층을 중심으로 급격히 전파됐다. 그리고 이것은 곧 개인의 영혼 구원과 현세적 위안을 위주로 하는 복음주의, 그리고 교리적으로는 근본주의적 성향과 맞물려 오늘날 한국 기독교의 지평을 형성하고 있다"며 "한편 과학 측의 사정을 보자면, 이것 또한 기독교와 거의 같은 시기에 주로 선교사들이 설립한 학교와 병원 등을 통해 도입된 외래 문물의 일부로 인식됐다. 그러면서 이것은 기존의 상층문화가 자리잡고 있던 정신문명의 일부로 수용 및 정착되기보다는 오히려 기술의 한 형태로 이해되면서, 현실적으로 동아시아의 정신세계에 그리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고도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 기독교가 놓인 이러한 정황들을 고려할 때 과학과 종교 사이에 자연스러운, 그러면서도 건설적인 대화가 이루어지리라 기대하기는 매우 어렵다"며 "그러나 오히려 그러하기에 더욱 이러한 대화가 요청되는 일면이 있다. 이것이 분리되어 있고 또 서로 관련을 가질 수도 없고 가져서도 안 된다는 생각이 크면 클수록, 종교는 종교대로 그리고 과학은 과학대로 제 구실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역설했다.
장 교수는 "그러므로 가능한 한 가지 해법은 인위적으로라도, 특히 학문 공동체를 중심으로, 이러한 대화를 유도하고 이것의 가능성에 대한 학문적 연구와 이에 필요한 교육적 노력을 기울이는 일"이라며 "그러면서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미처 전수되지 못한 상층문화의 높은 지적 유산을 살려냄으로써 이러한 작업에 도움을 얻을 수도 있다"고 제안했다.
"생명, 종교와 과학 연결할 현실적 고리"
그는 종교와 과학이 대화할 수 있는 주제로 '생명'을 꼽기도 했다. 장 교수는 "생명에 대한 이해는 그간 과학 안에서 가장 많은 진척을 얻어낸 분야 중 하나이며, 종교로서도 삶의 의미와 지향과 관련된 하나의 중심적 관심사라 할 수 있다"며 "실제로 생명 문제는 과학과 종교를 연결할 가장 긴요하고도 현실적인 고리일 뿐 아니라 특히 현대문명이 처한 생태적 위기와 직결된 것이어서, 이를 함께 풀어낼 적극적 자세를 지닌다는 것은 과학과 종교가 협력해 시대의 문제를 함께 대처해 나간다고 하는 매우 긍정적인 의미도 가지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생명은 하나하나의 '낱생명' 형태가 아니라 커다란 전체로 묶인 '온생명' 형태로 존재한다"며 "그러므로 이제부터 나는 온생명의 주체로 살아가게 되는데,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그리고 이렇게 살 때 그 바른 삶의 방식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새롭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바로 과학과 종교를 향해 던질 수 있는 하나의 물음이며, 종교는 여기에 대해 가능한 대답을 마련해야 할 위치에 놓이게 된다"고 밝혔다.
종교 있는 과학, 과학 있는 종교
끝으로 장 교수는 "아인슈타인은 '종교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이며, 과학 없는 종교는 장님'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말처럼 종교 없는 과학, 과학 없는 종교는 모두 불완전하며 때로는 위험하기까지 하지만 이 단계에서 종교 있는 과학, 과학 있는 종교로 넘어가는 길은 그리 순탄치 않아 보인다"며 "그래서 종교와 과학이 대화를 통해 서로의 지혜를 합쳐 보자는 것이다. 그러나 대화 또한 쉬운 것은 아니다. 모든 대화가 그러하듯 그것의 성공은 대화 상대에 대한 따뜻한 배려에서 싹트게 된다. 서로의 다름을 확인하기보다는 서로의 '다르지 않음'을 먼저 찾아내고 이를 바탕으로 서로의 차이를 서로의 보탬으로 전환해내겠다고 하는 마음의 자세가 그 첫 단계라 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