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레사 수녀가 노벨 평화상을 받던 날 기자들이 몰려와 그녀에게 물었답니다.
"세계 평화를 위하여 가장 긴급한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테레사 수녀는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기자 여러분께서 나를 따라 다니느라 수고하지 말고, 빨리 집에 가셔서 여러분의 가족을 사랑하는 것이 세계평화에 가장 긴급한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서 가장 시급한 이슈는 "가정"입니다. 특히 별거, 이혼, 가정 폭력, 동성애, 근친상간, 친족 살인 등 여러 가지 문제로 휩싸여 고통당하고 있는 오늘날의 세태에서 우리네 가정들이 바로 세워지는 것이 절실히 필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가정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우리 가정에서부터 믿음의 눈으로 차세대의 장래를 바라보며 믿음으로 축복의 언어(기도), 언행일치의 모범적 씨앗을 심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기성세대들은 차세대 교육을 위해서는 온갖 수단과 방법들을 다 동원하고, 무수히 드는 비용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어떤 때는 맹목적으로 헌신하고 사랑합니다. 그러나 차세대가 믿음으로 사는 것을 가르치는 일에는 등한히 하고 비용을 아끼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사람을 짓밟아 이기고 무너뜨리는 처세술, 출세하여 부귀영화를 누리는 생활방식은 앞다투어 가르치려 하면서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경건한 사람으로 지혜의 근본인 하나님를 구하며, 존중하고 경외하는 일을 배우도록 하는 것은 항상 뒷전인 기성세대들이 있음을 통한히 여길 수 밖에 없습니다.
언어는 씨앗과 같다고 했습니다. 기성세대가 어떤 언어의 씨앗을 심느냐에 따라 차세대의 열매와 삶의 태도가 결정됩니다. 기성세대들은 차세대들의 아름다운 열매를 위해 축복의 언어(기도), 격려와 인정, 칭찬의 씨앗을 많이 심었으면 합니다.
솔직히 기성세대들도 여러모로 부족하고 연약하기 때문에 차세대의 장래를 완전히 책임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창조주요 생사화복의 주인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하는 축복언어(기도)를 통해서 차세대의 인생을 맡기며 도움을 구할 수는 있습니다. 이것 또한 기성세대의 가장 책임있는 행동으로 탁월한 차세대 교육방법일 것입니다. 차세대를 위한 축복언어(기도)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영향권 안에 차세대 인생을 전폭적으로 의지하는 복되고 지혜로운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축복의 언어(기도)와 격려, 칭찬, 인정의 씨앗만 심어가지고는 차세대가 좋은 열매를 얻을 수 없습니다. 차세대는 기성세대를 모방합니다. 말도 행동도 그대로 따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부전자전(Like father like son)", "집안 내력이다(Runs in the family)", "핏줄은 못 속여!"
차세대는 기성세대를 보고 배우며 영향을 받습니다. 기성세대의 행동들은 차세대들이 미래에 맺게 될 열매의 씨앗입니다. 부모세대들이 자녀세대들에게 어떤 행동을 보여주느냐? 어떤 씨앗을 심느냐? 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이슈이므로 이왕이면 기성세대들은 선한 열매를 맺는 행동을 하고, 뼈를 깍는 고통을 겪으면서라도 믿음의 씨앗을 심는 노력을 해야 차세대에 축복의 열매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크리스천 지도자 중의 한 사람, 존 파이퍼 목사는 그의 책 "삶을 허비하지 말라"에서 오늘의 자신을 만든 것은 아버지의 영향 때문이라고 고백하며 아버지의 삶이 매우 중요함을 지적하는 것에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차세대들에게 가장 우선되고 중요한 축복씨앗은 가정에서 기성세대들이 몸으로 심어주는 믿음입니다. 가정에서 행하는 축복의 언어(기도)입니다.
기성세대로부터 물려받은 축복의 씨앗을 받아 믿음의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언약적 목적을 위해 살려고 몸부림치는 우리의 차세대를 하나님께서는 높이 들어 쓰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 야곱, 요셉, 다니엘, 디모데 같은 사람들도 파란만장한 이민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세상을 승리하며 역사와 나라와 민족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자신들의 선조들이 유산으로 남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모범과 축복의 언어(기도)씨앗 때문이었음을 기억하며, 그 발자취를 따라 가길 바랄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