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간 많은 분들을 만나야 했었습니다. 그 가운데 한 분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기 의견이 옳다는 것을 주장할 때마다 교회와 목사님들이 잘못하고 있다고 공공연하게 힘주어 말합니다. 물론 청중이 목사님들이기 때문에 열정으로 강조하는 말이려니 이해는 하지만 대접까지 해드리며 욕을 먹는 듯해서 은근히 억울한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온전하지 못한 세상에 억울한 일들이 어디 한두 가지이겠습니까? 이렇게 억울한 세상을 살다보면 아담과 하와가 따먹고 자기들 배만 부른 것을 가지고 우리가 왜 죄를 뒤집어써야 하는지 억울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지금은 사순절 기간입니다. 예수님 십자가의 고난은 얼마나 억울한 일이었겠습니까? 죄도 흠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나 같은 죄인을 구하시려고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모진 고난을 다 당하셨습니다. 한두 대 맞고 끝나는 일이 아니라 아예 몸을 찢고 피를 다 흘려 대신 죽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하늘보좌에서 천군천사의 찬양을 받으시던 거룩한 예수님 입장에서는 이 낮고 천한 세상에 오셔서 죄인들을 대신하여 죽는 것이니 얼마나 억울한 일이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억울함을 풀기 위해 사람들과 싸우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부르짖으며 기도하였습니다. 그것도 얼굴에 흐르는 땀이 변하여 피가 될 정도로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결국 모든 조롱과 멸시, 천대와 고통을 다 당하고 죽으셨지만 그러나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의 첫 열매로 온 인류의 구세주가 되신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 구원의 길이 열려졌습니다. 나를 향한, 그리고 온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증거 되었습니다. 아무리 부족하고, 연약하고, 불의하고, 추하다 할지라도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면 영생의 길이 열려진 것입니다. 바로 십자가의 주님 앞에 내 억울함(?)을 내려놓고 죄인일 수밖에 없는 자신을 회개하는 사람에게 말입니다.
2주 전 주일 오후였습니다. 제자훈련 16기 젊은 부부들과 함께 교재 순서를 따라 ‘헌금하는 법’을 공부하는데 갑자기 성령님의 음성이 제 안에 들려집니다. 이제까지 주의 종으로 생활비를 받으면서 그 해의 첫 열매는 항상 하나님께 드려왔었는데, 2014년 1월 첫 번째 생활비를 첫 열매로 드리지 않았던 것에 대한 거룩한 책망이었습니다. 나름대로 이유야 확실히 있었지만, 첫 열매를 드림으로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사랑을 증거하며 살겠다는 우리 가정의 믿음이, 지진에 건물이 흔들리듯 흔들렸다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그래서 즉시로 성령님께 제 교만과 미련함을 조용히 인정하고 항복의 백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첫 열매를 드리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하던 아내의 적극적인 도움을 얻어 거의 3달이 지난 첫 열매를 회개의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유야 있었지만 억울하지 않았습니다. 갑작스러웠지만 마치 오랫동안 준비한 듯 자연스러웠습니다. 현실의 어려움보다 오히려 더 큰 믿음이 솟아나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가슴 가득한 확실함은 누구든지 정말 주님을 만나면 억울하지 않다는 것, 회개의 기쁨과 자유가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