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진가는 그분의 관 뚜껑을 닫을 때’ 안다는 말을 나는 지난 주간에 다시 실감했다. 사랑하는 친척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그 다음 날 뉴욕으로 날아가 입관예배부터 하관예배까지 여러 번의 예배에 참석하면서 죽음에 대해 다시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설교하시는 분마다 가신 분은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나 80여년을 신앙생활을 잘 하셨고 교회의 장로로서 헌신하시다가 고통과 눈물이 없는 하늘나라로 가셨으니 우리는 슬퍼하는 것보다는 환송예배로 드리자는 말씀에 유가족들은 많은 위로를 받았다. 나는 떠나신 분을 50여년 간 곁에서 지켜 보았기에 누구보다 하고 싶은 말이 많다.
“장로님, 이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고 다른 세상 사람이 되었기에 할 말이 더 많아집니다. 가신 곳은 죽음이라는 관문을 통하여 가셨고 한 번 가시면 다시 돌아올 수도 없기에 가족들은 더 슬퍼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염려하지 마십시요. 산 사람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아픔도 사그라지고 언제인가는 남아있는 식구들도 그곳으로 가서 다시 만날 수 있기에 위로를 받습니다. 장로님, 그곳은 어떻습니까? 내가 믿기로는 그곳에는 이 땅에서 겪었던 수 많은 것들이 없을 줄 압니다. 태풍이나 지진이 없고 병이 없으며 고통도 없는 곳일 것입니다. 대신에 이곳에 없는 것들이 그곳에는 많을 텐데 사방에 우거진 나무나 과실이나 천만 가지 꽃들, 그 안에서 풍겨나오는 향기는 너무도 감미롭고 그 속에는 무수한 새들이 노래하고 춤추고 있을 것입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완전히 변화된 성도들이 되어 천군 천사들과 같이 흰옷을 입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 돌리는 곳에 동참하셨다고 믿기에 축하합니다.
장로님, 그간 세상에서 힘들게 사셨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월남하신 부모님을 따라 서울에 와서는 황무지 같은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밤낮으로 일하시는 부모님을 도우며 그 속에서도 열심히 공부해서 남들이 부리워하는 Y대학에 들어가 공부하고 자녀 교육을 위해 미국에 이민와서는 이런 저런 사업에 종사하셨습니다. 그런 고생이 있었기에 자녀들이 좋은 학교를 나오고 사회에서 한몫을 담당하는 바탕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노년을 즐기지 못하신 것에 가슴이 저려옵니다. 지금의 세대는,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 3일 앓고는 1일만에 가는 것이 가장 좋다지만 사실은 다시 일어나 살고 싶을 만큼 시대가 변했습니다.
장로님은 많은 신앙의 유산을 남겼습니다. 즉 근면과 성실 그리고 절약 정신입니다. 가능한 버리지 않고 재생해서라도 돈쓰는 일을 줄이는 것이 몸에 배었던 이기에 남에게 아쉬운 말 안 하고 구걸하지 않고 오히려 남을 도와주며 사셨습니다. 흔히 고생될 때 교회를 떠날 수도 있고 반대로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면 방종할 수도 있으나 그런 유혹을 잘 이겨내고 건실하게 사셨습니다. 그런 유산은 돈으로 살 수 없고 오직 험란한 삶속에서 얻어진 신앙의 결정체이기에 주위 사람들은 그 유산을 잘 받아 계승하겠습니다. 장로님, 이제부터는 오직 하나님만 열심히 찬양하며 행복하게 계십시요. 저희들도 뒤따라갈 것입니다(참고 눅23:43,요14:1-4; 고전15: 계21:& 22:).”
성경에 ‘결혼식에 가는 것보다 장례식에 가는 것이 지혜자의 길이다’라고 한 이유를 알 것 같다. 흙에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인 나는 일할 수 있는 기회를 귀하게 여기고 최선을 다하며 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