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이 극심하여 고통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당신이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고통이 조금만 줄어도 살 것 같다.", "고통없이 이대로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할 것이다. 몸이 아픈 사람에게 진정한 평안과 행복은 고통없이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고통은 인간의 육신이 아직도 살아있다는 증거이며 고통 가운데도 삶의 희망을 얼마든지 가질 수 있다.
인간은 누구라고 말할 것도 없이 보다 더 나은 행복과 가치를 추구하며 그것을 붙잡기 위해 많은 도전을 하며 살아간다. "무지개 예화"에 보면 한 소년이 무지개를 잡아보려고 산을 넘고 산을 넘어 보지만 거기에도 무지개는 잡을 수가 없었다. 우리의 행복도 계속해서 이곳 저곳 찾아 다니면서 이것 저것을 하지만 어디에도 참 행복을 찾을 수 없다. 이것을 보면 행복은 사람의 손에 결코 잡히지도 아니하지만 사람이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행복은 과연 무엇일까?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필자가 생각하는 행복은 소유가 아니라 누리는 것이며 누군가와 함께 내가 누리고 사는 행복을 나누는 것이다. 이러한 행복을 실현하며 살아가기를 바란다면 그 사람은 행복의 가치가 어디에서 오며 누구를 통해서 그것이 형성이 되는지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한다. 행복의 가치를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며 그것이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이러한 행복은 인간이 그냥 그냥 주어지는 대로 목적없이 살아갈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비전을 가지고 내일의 희망을 향해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며 그때에 그들에게 성공이라는 결과물이 주어지는 것이다. 비전을 이루고자 원하는 사람이 틀에 박힌 생활로 살아간다면 그러한 생각으로 성공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비전을 가지고 자신이 바라는 소원을 이루는데 에는 항상 작고 큰 어려움의 폭풍을 만나게 된다. 이 폭풍은 인생의 여정에서 고난과 같은 것이다. 머나먼 바다를 항해하는 배가 출항을 하며 목적하는 곳에 가는데 선장과 선원들이 큰 폭풍을 만날 것이라고 예측하며 항해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바다는 어디에서 그리고 언제 바람이 거세게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기에 한번 바다를 항해하기 시작한 배는 폭풍이 와도 목적지를 향해 항해를 계속해야 한다.
인간의 삶도 엄마의 뱃속에서 나올 때부터 인생의 여정이 시작되는데 그 어느 누구도 다가올 삶에 태풍이 올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러나 사람이 가지고 태어난 색깔과 배경과 상관 없이 인간은 항해를 하면서 큰 폭풍을 접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폭풍이 왜 주어지는 것이며 거센 폭풍과 어떤 싸움을 해야하는지 경험해야 할 것이고 그 폭풍이 지나고 나면 어떤 세상이 주어지는지 배워야 한다. 인생의 여정 가운데 주어지는 삶의 어려운 시련과 고통이 나 스스로의 잘못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많은 연단을 통해 정상에 도달하는 기쁨을 위해 주어진다. 그리고 그속에서 자신에게 희망을 이루어 주시는 분이 누구인지를 알게 된다.
삶의 여정 가운데 희망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안다는 것은 자신의 한계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주님께 간구한다.
예수님은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을 먹이신 후에 군중들을 해산시키시고 혼자 조용히 산으로 기도하러 올라가시면서 제자들에게 제촉하여 배를 타고 자신보다 먼저 맞은편 기슭으로 가라고 보내셨다. 그런데 그들의 배가 얼마 항해하지도 못해서 갈릴리 바다의 특유 돌풍이 불어닥쳐 극심한 위기의식을 갖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예수님의 상당수 제자들이 과거에 어부였음에도 불구하고 금새 성난 파도가 배를 삼켜 버릴것 같은 두려움에 고통의 소리를 내며 주님께 살려 달라고 한다. 아마도 배와 바다의 특성을 잘 모르는 사람은 이러한 상황에 크게 실감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필자가 섬에서 목회를 할때 수년동안 배를 타고 넓은 바다를 통과한 경험으로 볼때 바다는 아무리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는 어부 일지라도 그 어느 누구도 바다의 거친 파도를 무서워 하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리고 배를 타고 가는 사람의 수와 상관없이 그 배가 항해를 하는 동안 배 안에 있는 사람 모두가 폭풍을 만나면 두려움이 폭풍이 잠잠해질 때까지 계속된다.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 바울이 3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유대인의 소송에 의해 죄수로 로마 정부에 심판을 받기 위해 백부장 율리오의 인도하에 배를 타고 항해를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배에 276명이라는 사람이 탔는데 그 중에는 선장, 선원, 군사들과 그리고 죄수들이 포함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항해를 하던 중 유라굴로라는 큰 광풍을 만나14일동안 바다에 표류하다가 원주민들이 사는 멜리데 섬에 도착하게 되는데 사도바울의 리더십으로 모든 사람들이 안전하게 구조 된다.
항해를 하는 배가 폭풍의 풍랑을 만나게 되면 누구나 두려움을 갖게 된다. 그러나 폭풍이 두려워 배를 선창에만 계속 묶어 둔다면 그 배는 어느 누구도 탈 수 없을 뿐 아니라 한번도 가보지 못한 세계를 도전할 수도 없다.
꿈을 가진 사람이라면 다가올 폭풍을 두려워해서도 아니되고 폭풍이 온다고 해서 방향을 돌려서도 아니된다. 방향을 돌리고 가던길을 멈춘다는 것은 폭풍으로 인한 좌절과 절망이라고 본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억지로 배에 태워 갈릴리 바다에 돌풍을 경험하게 한 것은 망망한 바다속에서 그들을 구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 이시라는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시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제자들 인생을 일부러 풍랑속으로 밀어 넣으셔서 하나님을 만나게 하신 것이다. 사도바울이 탄 배가 유라굴라의 태풍을 만났지만 그는 하나님을 알고 두려워하지 아니했다. 그러나 백부장인 율리오와 군인들은 사도바울을 믿은 것이 아니라 바다의 경험이 많은 선장을 믿었다. 그렇지만 그가 믿었던 선장의 경험이 큰 폭풍에서는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하나님을 경험한 바울 사도의 말을 따랐다. 사도바울이 죄수 이면서 그를 포함하여 276명이 폭풍을 이겨낼 수 있었던 또 하나의 힘은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자 한 그의 비전이다. 이러한 비전은 바울이 3차에 걸쳐 전도 여행을 하는 중에 계속적으로 꿈꾸어 온것이다.
로마서 1장 13절에보면 "형제들아 내가 여러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이것을 보면 꿈의 실현은 한번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많은 실패와 고통이 주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교회가 비전을 가지지 않는다면 부흥의 열매는 절대 주어질 수 없다. 폭풍이 무서워 꿈조차 꾸지 않는다면 그것은 불행한 삶이다.
크로스로드 한인교회 김칠곤목사 문의전화)425-773-9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