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 광야를 통과했던 고대 도로는 약 20개가 넘는다. 20개가 넘는 고대 도로들 중에 사해 북쪽에서 예루살렘으로 연결된 도로는 2개이다. 첫 번째 도로는 여리고-예루살렘을 연결한 신약 시대의 로마 도로 (Roman Road)이고, 두 번째 길은 룻기서에서 읽을 수 있는, 후대에 소금 길 (Salt Road)로 불렸던 길이 있다. 예수님은 고대 로마 도로를 따라 갈릴리에서 여리고를 지나 예루살렘으로 가셨다. 반면 나오미는 흉년을 피해 고대 소금 길을 따라 베들레헴에서 모압 산지로 피신했다.
이 두 개의 길 가운데 고대 소금 길을 필자는 몇 사람들과 함께 2014년 3월 2일 걷기로 했다.
유대 광야에 위치한 소금 길 (Salt Road)의 시작은 사해의 북서쪽에 위치한 칼리야 키부츠 (Kibbutz Kaliya) 근처에서 시작된다. 고대 길은 칼리야 키부츠에서 북쪽 알모그 키부츠 (Kibbutz Almog)에서 서쪽으로 향한다. 고대의 길은 해발 -80m 높은 언덕에 위치한 텔 무할할 (Tel Muhalhal)의 가파른 경사면에 발달되었다. 소금 길 가운데 급한 경사를 올라가야 하는 세 구간이 있는데, 무할할 급경사는 그 중의 한 곳이다. 사해의 해수면이 -422m인 것을 감안하면 무할랄이 꽤 높은 언덕임을 알 수 있다. 무할랄의 높은 언덕을 올라선 후 서쪽으로 계속 진행하면 아랍 모스크인 나비 무사 (Nabi Musa)를 만난다. 나비 무사는 모슬렘 시대 이후 많은 아랍인들이 모세의 무덤으로 알고 방문했던 유서 깊은 장소이다.
나비 무사를 지난 고대의 길은 다시 가파른 경사를 올라가야 한다. 그러면 높은 언덕의 북쪽 산허리에 형성된 고대의 도로를 만난다. 이 길의 오른쪽에는 경사 가파른 나할 옥 (Nahal Ok)이 있다. 깊은 절벽으로 떨어질 염려는 없지만 그렇다고 두 사람이 나란히 걸을 수 있는 넓은 길은 아니다. 한 사람씩 나란히 걸어야만 되는 폭이 좁은 길이다. 어느 정도 걸으면 서쪽으로 미쇼르 아둠밈, 마알레 아둠밈과 그리고 감람산이 보인다.
이 고대의 길에서 배울 수 있는 역사적인 사건들은 많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나오미 가족이 베들레헴에서 모압 산지로 갈 때 그들은 이 길을 이용하였다. 고대 소금 길은 베들레헴에서 동쪽 모압 산지로 연결된 가장 짧은 길이기 때문이다. 비잔틴 시대에 경건한 그리스도인들과 수도사들은 이 길을 통하여 요단 동편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하였다. 유대 광야에 위치한 여러 수도원들에 필요한 물품을 공급했던 상인들, 예루살렘을 포함한 중앙 산지에 위치한 많은 도시들을 상대로 무역을 담당한 상인들, 모슬렘 시대에는 아랍인들도 순례를 위해 이 길을 이용했다. 이 길을 소금 길이라 불린 이유는 사해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운반했기 때문이다. 이 길을 통해 소금만 운반했던 것은 아니다. 설탕, 발삼 그 외에 밀, 보리, 생필품들도 운반되었는데, 그래서 때로는 이 길을 설탕과 소금 길 (Sugar and Salt Road), 또는 설탕과 소금과 발삼 길 (Sugar, Salt and Balsam Road)로도 불린다.
필자는 이 길을 걷기 위해 몇 가지를 준비하였다. David Dorsey가 쓴 the Roads and Highways of Ancient Israel, Har-El이 쓴 The Route of Salt, Sugar and Balsam Caravans in the Judean Desert을 읽고 이 고대의 길을 정리하였다. 이스라엘 카르타 (Carta) 출판사에 나온 ‘Israel 1:100,000’ 지도에서 해당 구역을 꼼꼼히 살폈다. 구글 어쓰 (Google Earth)와 구글 지도 (Google
Map)를 통해서도 정확한 고대 도로의 위치도 확인하였다. 지도를 많이 볼수록 사막에서 길을 잃을 가능성은 훨씬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날 미리 출발 지점인 미쇼르 아둠밈에 위치한 유티미우스 수도원과 도착 지점인 알모그 키부츠 (Almog Kibbutz)도 확인해 두었다. 전체 거리는 지도상에서 직선 12km이지만 실제 걷는 거리는 약 15km이다. 우리가 걷는 길은 해발 400m 산지에서 -250m로 내려가는 길이다.
오전 7시 30분 약속 장소에 동행하기로 한 사람들이 모였다. 두 대의 차를 타고 가 한 대는 도착 장소인 알모그 키부츠에 가까운 안전한 장소에 주차하였다. 그리고 또 다른 한 대의 차를 타고 출발 장소인 유티미우스 수도원에서 가까운 미쇼르 아둠밈 한 곳에 두었다. 그리고 약 15km의 거친 광야 길로 들어섰다. 그때의 시간은 오전 9:05분이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약간의 문제가 생긴 것은 미쇼르 아둠밈에서 소금 길이 시작되는 지점에 이스라엘 군부대가 위치해 있어 우리는 어쩔 수없이 멀리 우회해야 했다. 그러나 지도를 통해 고대 도로를 미리 확인해 두었기에 곧 광야의 소금 길을 찾았다.
길을 걸으면서 내내 동쪽 모압 산지를 볼 수 있음은 룻기서의 배경을 잘 이해하게 되었다. 양식을 위하여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 이방 지역으로 떠나야 했던 나오미 가족, 그녀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권고하셔서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룻 1:6)” 며느리 룻과 함께 다시 이 길을 걸어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때 나오미는 어떤 심정으로 이 길을 걸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이런 역사적인 사실을 실제 그 장소, 광야에서 기억하는 것으로도 힘든 걸음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나비 무사에 도착한 시간은 2:15분이다. 그리고 텔 무할할을 지나 평지에 이른 시각이 3:30분이니 잠시 식사하고 휴식을 취한 것을 모두 포함하면 전체적으로 6시간 25분이 소요된 셈이다.
6시간 잠시 수고하고 얻게 된 보상은 평생 계속될 것이다. 앞으로 룻기서를 읽을 때마다, 그리고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을 역사에서 다시 기억하고 싶을 때 나는 분명 이 길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로마의 박해 시대에 살아남은 순교자적 신앙을 지녔던 교회 시대의 초기 경건한 그리스도인들 특히 유티미우스는 터키 북동쪽 아르메니안의 수도 예레반 (Yerevan) 근처 출신이다. 그는 377년 태어나 405년 성지순례에 올랐다. 그리고 나할 옥 (Nahal Ok)의 깊은 골짜기, 고대 도로에서 가까운 곳에 수도원을 건축하고 평생 경건에 힘썼으니 나는 이 길을 통해서 역사만 배운 것이 아니라 믿음의 경건함도 배웠다.
이주섭 목사는 성경의 사실적 배경 연구를 위해 히브리어를 학습하였고, 예루살렘 대학과 히브리 대학에서 10여년에 걸쳐 이스라엘의 역사, 지리, 고고학, 히브리인의 문화, 고대 성읍과 도로를 연구한 학자이다. 그는 4X4 지프를 이용하여 성경의 생생한 현장을 연구하기도 했다. 문의 jooseoble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