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너’는 예의범절을 가리키는 영어단어입니다. ‘매너’는 한 사람의 인격전체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매너’는 동서양과 고금을 막론하고 사람의 품격을 가늠하게 합니다.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에서 외교적인 매너는 대단히 중요 사항으로 다룹니다. 외교적인 매너를 의전이라고 표현합니다. 정상회담을 위한 준비과정에서 의전절차만 다루는데 걸리는 시간이 상당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때로 의전절차가 합의되지 않아서 정상회담이 채 열리기도 전에 결렬되는 사례도 있다고 합니다. 그만큼 외교적인 매너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 같습니다.
현대의 비지니스에서도 매너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있습니다. 소비자들이 제품 자체보다 세일즈 매너에 끌려서 제품을 구입한다는 연구결과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고급 레스토랑을 찾는 이유는 음식보다 오히려 음식을 서빙하는 고품격 매너 때문이라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결국 비지니스는 매너를 사고 파는 행위라는 개념까지 등장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선진국인가 후진국인가를 결정하는 가장 큰 잣대가 ‘머니파워’였습니다. 경제력이 있으면 수준높은 나라라는 공식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 공식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보이는 ‘머니파워’보다 보이지 않는 ‘파워’가 중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보이지 않는 파워 중 하나가 바로 ‘매너파워’입니다. 아무리 경제력을 갖추어도 국민들이 ‘매너가 꽝인 행동’이 스스럼없이 행해지면 “이 나라는 아직 멀었어!”라는 생각을 갖도록 만듭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도 ‘매너’가 매우 중요합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매너’를 강조합니다. 사랑을 강조하는 고린도전서 13장을 연구해 보면 결국 ‘매너’ 또는 ‘에티켓’을 다루는 것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면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고린도전서 13:4, 5).” 언어의 에티켓을 강조하는 말씀도 있습니다.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골로새서 4:6).” 유대인들의 시기심으로 억울하게 고발당한 사도 바울이 자신을 변론하는 장면을 살펴보면 사람들을 향한 고품격 매너의 끈을 결코 놓지 않습니다.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되신 예수님도 매너와 에티켓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셨습니다. 절제된 고품격 언어, 온유한 행동, 상대방을 배려하는 친절은 많은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모습이었습니다. 오늘의 시쳇말로 표현하자면 ‘매너 짱’이었습니다.
“난 한국사람이라서 미국식 매너나 에티켓이 불편해…”라고 말씀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한인 교회에 속해 있으니 한국식으로 하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분명 매너와 에티켓에는 문화적 요소가 담겨져 있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만 문화와 관습을 뛰어넘는 매너도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매너 말입니다. 그 매너는 한국식이냐, 미국식이냐가 아닌 ‘천국식’이라 표현할 수 있는 매너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천국시민입니다. 그렇기에 천국시민은 반드시 ‘매너 짱’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