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한국의 송년회에서는 저도주 열풍과 함께 젊은 층을 중심으로 소맥 폭탄주 대신 다양한 음료를 섞어 색다르게 즐기는 믹스주 트렌드가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고 한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믹스주는 소주에 홍초를 섞어 만드는 '홍초주'. 그리고 이 홍초주를 위한 네 가지 레시피가 술집의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고 한다. 우선, 소주 1잔을 따라내고 빈 공간에 홍초 50㎖를 넣고 섞는 홍익인간주, 소주잔에 홍초가 가라앉도록 살짝 따라 첫 맛은 쓰지만 끝 맛은 달콤한 고진감래주, 홍초50㎖ 병을 소주병 위에 세워 자동으로 섞이게 만드는 영웅본색주, 홍초가 맥주와 섞여 아름다운 붉은 빛을 내는 로맨틱 노을주 등 기상천외한 발상들로 주당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 밖에 소주와 비타민을 칵테일한 '비타주', 원두커피를 활용한 '소원주'등 의미와 명분을 중요시하는 한국인을 사로잡는 개념형 마케팅 공략이 교묘하게 스며들고 있다.
전통적으로 한국의 12월은 술 마시는 시간이다. 12월만큼은 제 아무리 술을 좋아하는 주당이라 하더라도 견디기 힘든 살인적 음주 스케줄이 기다린다. 한국인에게 술 없는 12월은 앙꼬 없는 찐빵과도 같다. 세월의 흐름을 유난히도 아쉬워하는 우리들의 정서가 한해의 끝자락에서 술과 노래를 통해서 삶의 회한을 쏟아 버리고 싶은 욕구는 이미 전통 속에서 답습해 왔다. 유독 술이 삶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사람들의 심리가 한국경제의 밑바탕에 깔려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람들의 관계나 각종 사무적인 활동에서 술이 빠지는 예는 거의 없는 듯하다. 그리고 그 술을 팔아야만 먹고사는 경제주체들이 너무도 광범위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한국사회에서 서구의 음주문화를 강조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힘든 일인가에 대해서 나는 오랜 세월 경험해 오고 있다. 하지만 이 알코올 의존 심리의 삶이라고 하는 것이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20대의 대부분을 알코올 의존 심리에서 살아왔던 나는 그때를 회상할 때마다 끔찍했던 내 자화상을 들여다 보곤 한다.
사람들이 알코올 의존 심리에 빠지게 될 때 자신의 삶은 두개의 커다란 영역으로 나뉘어 지게 된다. 낮 시간에 이루어지는 정상적인 삶과 또 밤에 술을 찾아가는 비정상적인 삶으로 말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술이 있는 비정상적인 삶을 정상적 삶의 스트레스를 쏟아 버릴 수 있는 당연한 삶의 피난처라고 항변한다. 하지만, 알코올 의존성이 심화되어 갈 때 비정상적인 술 취함의 세계가 사람의 정상적 삶의 영역까지도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의욕의 상실, 비관적 사고방식, 사회적 불신감, 욕구 불만 등의 정서적 장애를 동반하며 정상적인 삶을 침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정상적 삶에서 탈출을 꾀하며 더욱 자주 술 취하는 세계로의 갈망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비정상적인 삶에서 몸과 마음이 초토화된 사람들이 정상적인 세상에 다시 찾아 왔을 때 그들의 심리가 제대로 작동하기 만무하며 잃어버린 시간만큼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자신의 입장과 태도를 맞추려 할 뿐 스스로의 느낌과 생각을 갖기에는 자신감이 부족할 수밖에는 없게 된다. 이런 까닭이 우리 한국인들의 생각들이 앞에서 선동하고 여론을 호도하는 목소리 큰 사람들을 중심으로 헤쳐 모이려는 심리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
신문을 읽고 시사상식을 시시콜콜하게 알아야지만 유식한 사회였고 이제는 정부를 향해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사람들의 의견에 동참해 야지만 진보적 지식인층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는 위험한 생각들을 독려하기 시작한 것도 가치관의 상실에서 오는 예일 것이다. 술을 좋아하는 사회적 심리가 만들어 내는 모순이다.
12월은 술 마시며 흥청대는 달이 아니다. 바쁘고 힘겹게 살아왔던 지난 1년을 되돌아보며 미처 챙기지 못했던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웃들을 돌아다보며 서로 안부를 챙기고 사랑을 나누는 그런 시간이다. 그리고 이렇게 삶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달이다. 그래야 또 우리는 축복의 새해를 맞이하게 된다. 과도한 알코올 남용과 의존의 심리에서 회복될 때 한국사회가 비로소 협력과 화합의 새 시대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