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생명윤리연구소(소장 박상은 샘병원의료원장)는 7일 오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함춘강의실에서 ‘베리칩,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주제로 창립 16주년 기념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세미나에선 이중원 교수(서울시립대 철학과)가 ‘베리칩의 개념과 철학적 함의’를, 박준현 교수(정신의학과 전문의, 인제의대 임상교수)가 ‘정신의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베리칩 논쟁’을,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장, 창조론오픈포럼 대표)가 ‘베리칩에 대한 신학적 논점’을, 이승구 교수(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가 ‘베리칩 관련 생명윤리 논점과 대안’을 각각 발표했다.
먼저 이중원 교수는 “베리칩이란 ‘Verification’과 ‘Chip’의 합성어로 ‘확인용 칩’을 의미한다. 쌀알 크기의 작은 마이크로 칩으로, 생명체의 몸 속에 투여해 신원이나 정보를 확인하는 데 사용한다”며 “베리칩이 가져올 긍정적인 측면 뿐 아니라 그것이 초래할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분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베리칩’이 갖는 철학적 함의에 대해 “첨단기술(도구)에 의해 인간과 세계,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변질될 것”이라며 “과학기술은 단순한 인간의 산물이 아니며, 오히려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는 역사적이며 존재적인 사건이다. 더 이상 목적을 위한 수단 혹은 합리적인 도구가 아니고, 현대사회의 모든 존재자들을 대상화하고 부품화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베리칩 신학, 세대주의 종말론과 궤 같이해”
특히 조덕영 박사는 ‘베리칩에 대한 신학적 논점’을 제목으로 한 발표에서 “종말론으로서의 ‘베리칩’ 신학은 시한부종말론적 경향을 지닌다는 점에서 세대주의 신학과 밀접한 연관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세대주의는 주로 인류 역사를 도식적 세대 구분의 틀 속에 넣는 다는 특징을 가진다”며 “문제는 세대주의의 경우 각 세대 뿐 아니라 마지막에 임할 (천년)왕국시대를 문자적으로 이해함에 따라 필연적으로 지나온 인류 역사를 6세대(6천 년)로 규정하게 되어, 마지막에 임할 천년왕국시대를 계산할 경우 지구는 긴박한 종말을 맞을 수밖에 없다는 시한부종말론에 자연스럽게 이르게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 박사는 “만일 세대주의에 따른다면, 혹시 휴거와 종말의 시기가 이미 지나쳐 버린 것은 아닌가 우려(?)될 정도로 지구는 모든 6천 년이 이미 지나가 버렸으니 필연적으로 시급한 종말이 우리 세대에 임해야 하는 것”이라며 “적그리스도가 ‘베리칩’ 곧 666이라는 소동은, 바로 이 같은 세대주의의 세대 구분 신학과 아주 잘 들어맞는다. 기독교는 종말과 재림을 믿는 종교다. 하지만 긴박한 종말론이나 시한부종말론은 항상 큰 부작용을 불러왔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어 조 박사는 “세대를 구분하는 것이나 구분하여 가르치는 것이 큰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고, 세대 구분이 성경 이해에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세대주의의 문제는 성경을 문자적으로 도식화해 해석함으로써 여러 가지 부작용을 양산하는 데 있다”며 “성경을 문자적으로 절대화할 때, 성경이 단순한 책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되며, 성경 내용을 도식화하는 과정에서 성경을 마치 판타지 만화와 같은 책으로 오해하게 만드는 위험성이 있다. 즉 기본적 성경해석학에 대한 오해로 말미암은 미숙한 성경 해석은 큰 문제를 가져올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세대주의 종말론을 따르다 이단이 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라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베리칩’ 신학은 세대주의 종말론과 그 궤를 같이 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조 박사는 “요즘 일부 열정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신비주의적이고 극단적인 시한부종말론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불안감을 주는 경우가 한국교회 안에 다시 머리를 들고 있다”며 “이것은 자칫 하나님께 열심을 다한다는 착각 속에서 실은 마귀에게 이용당하는 누(累)를 범할 수 있음을 늘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아울러 조 박사는 “최근 한국교회에 갑자기 여러 가지 형태의 이상한 신비주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은 참으로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며 “늘 바른 하나님 말씀의 분별이 우선되지 않으면 우왕좌왕하기 마련이다. 오늘날 일부 한국교회에 이런 불안을 동반한 신비주의가 만연된 것은 분명 정상이 아니다. ‘베리칩’ 소동은 바로 이 같은 혼돈 속에서 등장해 미혹의 마약처럼 번지고 있다. 깨어 기도하고 사단의 꾀에 속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리스도인들, 일반은총적 관점에서 논의해야”
마지막 발제자로 나선 이승구 박사는 “그리스도인들의 구별된 의식과 삶의 태도가 바로 그들이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라는 ‘표’를 가졌다는 것을 드러내고, 또한 그것이 그들이 ‘짐승의 표’를 받지 않았음을 드러내는 것”이라며 “그러므로 ‘베리칩을 몸 속에 이식하는가 아닌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진정으로 하나님 백성의 특성을 가지는가 아닌가’가 근원적이고 핵심적인 문제다. 이런 의미에서 베리칩은 ‘666’이라는 ‘짐승의 표’를 가지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그러므로 베리칩을 요한계시록과 연관시키거나 기독교적 종말론과 연관시켜 생각해서는 안 된다”며 “건전한 성경해석자들이나 건전한 신학자들은 전혀 그렇게 연관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주목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은 이에 대해 일반은총적 관점에서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 박사에 따르면 ‘일반은총적 관점에서의 논의’란 “각자의 지식과 판단에 따라 상대적으로 더 좋은 것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는 문제”로, 그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도 사고를 당했을 때 신속한 의료적 돌봄과 도움을 위해 베리칩을 사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반면 인권 침해의 소지가 있으므로 이를 사용하는 것이 편안하기는 해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있을 수도 있다”며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아주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하기 어렵다. 성경의 입장을 존중하는 사람들로서 어떤 것이 보다 많은 사람들을 위해 더욱 좋을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각자 신실한 의견을 제출하고 그에 대한 논의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