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협의회(WCC)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관한 성명서’에서 끝내 북한의 인권 현실을 외면한 것에 대해, 한국 교계 지도자들이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그간 온건한 입장에서 WCC의 변화를 기대했던 이들은 충격을 넘어 분노까지 느끼고 있다.
이종윤 목사(한국기독교학술원 원장)는 이번 WCC 총회 전부터 계속적으로 이 문제의 공론화를 위해 애써온 인물이다. 그는 WCC의 성명서가 발표된 뒤 “WCC가 (성명서에서 인권 유린의 주체로) 북한을 지목하지 않았다”며 “내가 어떤 일이 있어도 (성명서에) ‘북한의 심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우려’와 특별히 ‘종교의 자유가 회복돼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가야 한다고 요청했지만 결국 반영되지 않았다”고 착잡한 심정을 토로했다.
이 목사는 또 WCC가 성명서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우회했다. 북한에서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그런 문제가 많다면서 WCC가 바로 그 약자들 편에 서 있다는 식의 간접적인 표현만 썼다”며 “또 (한반도 평화를 위해) 외세가 다 물러가야 한다고 했고, 핵무기와 핵발전소도 동일시했다. 북한의 핵무기를 없애는 동시에 핵발전소도 없애야 한다고 한 것이다. 칼은 위험한 물건이지만 그것을 의사가 들면 생명을 살리는 데 쓰일 수 있는데도, 그저 모조리 없애자는 논리”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이 문제를 위해 WCC 총회 개회 때부터 참석해 왔다는 이 목사는 “이번 총회 전부터 왜 북한 인권 문제에 침묵하는지 WCC 본부에 항의도 하고 전화도 하며, 편지도 썼다”면서 “사실 제네바 WCC 본부에서 나를 이번 총회에 특별 초청했다. 하지만 대의원이 아니니 전체 회의에서 발언권을 얻을 수 없었다. 그런 가운데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WCC 내에 좌파 세력이 너무 강했다”고 했다.
그는 “얼마 전 WCC 관계자에게 한국에서 총회를 치르려면, 50년 전 한국교회가 WCC 문제로 분열했던 상처를 치유줘야 한다고 했었다”며 “그런데 지금 무슨 치유책이 나왔는가. 나는 오히려 (WCC 총회 후) 한국교회가 더 염려된다. 이번 총회에서도 내가 북한 인권을 말했더니 어떤 사람은 인권보다 평화가 더 중요하다고 하더라”고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또한 이 목사는 “(WCC 회원 교단인) 예장 통합과 기장, 기감, 성공회에서 (북한 인권에 대한) 아젠다를 올렸어야 했다. 그런데 아무도 올리지 않았다”며 “지난 예장 통합 정기총회 때도 이 문제와 관련한 긴급동의안을 냈고 통과까지 됐는데, 시간이 촉박해서인지 해당 안건을 올리지 않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국교회 보수와 진보 진영의 화해를 촉구하며, 이번 WCC 총회와 관련해 애정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 원장)조차 이번 성명서에 대해 “종교의 자유를 주지 않고 기독교인을 박해하는 북한을 비판해야 했다. 교회를 설립하지 못하게 하고 (주민들을) 감금하며 처형하는 그 자체를 이야기했어야 했다”며 “이런 것들을 언급하지 않는 WCC의 정의는 그저 편파적인 정의일 뿐”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