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내 공교육 문제가 갈수록 심각성을 더해가는 가운데, 캘리포니아 동성애 교육 의무화를 비롯한 반기독교 교육이 탄력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공교육에 대한 보장되지 않는 기대보다 이제 교회가 적극 나서 교육문제에 대한 해법과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본지는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차세대 新개념 대안학교’를 설립해 운영 중인 교육전문가들의 글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입소문을 타고 학생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첫 시간 아무도 없이 시작한 학교에 드디어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한인 뿐 아니라 타민족 학생들도 새로운 학업의 기회를 찾기 위해 몰려들었다. LA지역 고등학교 카운슬러들도 적극적으로 학생들을 연결해 주었고 그동안 공을 들인 여러 지역 단체에서도 청소년들을 추천해 주었다. 갑자기 수십 명으로 불어난 학생들로 수업은 활기가 넘쳤고 클래스도 증설되었다. 몰려드는 수요를 채우기가 어려울 정도로 많은 학생이 대안학교로 찾아왔다. 새로운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도 고용하고 교사 진용도 새롭게 갖추어 학교의 외형적 모습이 조금씩 갖추어져 가고 있었다. 그러나 학교는 날마다 도전의 연속이 아니던가. 이제 정말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그저 고등학교 졸업장을 수여하는 것이 목표였다면 모를까 우리에게 맡겨진 그 학생들이 사회의 온전한 일원으로서 그 역할을 감당하려면 어떻게 지도하고 가르쳐야 할지 말이다.
오랫동안 학교를 떠나 있던 학생들
우리 학교는 만 16세부터 24세까지의 학생들을 받을 수 있도록 가주 정부와 연방법에 따라 정해져 있다. 그렇다 보니 청소년들도 꽤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18세가 넘은 성인들이다. 학생들과 입학상담을 해 보면 몇 가지 부류로 나누어져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비슷한 선택을 하게 된다. 주로 학교를 떠나는 시점은 10학년과 11학년이다. 자퇴하거나 퇴학을 당해 강제 전학(Transfer)을 하게 된다. 이때 잠시라도 학년을 쉬거나 아르바이트 등으로 시간을 보내게 되면 바로 만 18세 조항에 걸려 더는 정규 고등학교로 돌아갈 수 없다. 많은 학생이 이때부터 어덜트스쿨(Adult School)이나 교육국 Extension Program 또는 자습 위주의 프로그램에 들어가서 아무런 학업의 진도 없이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또 한 부류는 취업하는 경우다. 물론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만 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학업 대신 선택한 길이다. 정말 자신의 꿈을 위해 달리는 일이라면 박수쳐줄 일이지만 대부분이 학생들은 무조건 학교가 싫어 아무런 준비없이 사회생활의 첫발을 내딛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그렇게 2-3년이 지나면 아무런 준비없이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학생들에게서 듣는 같은 말이 있다. 바로 더는 자신이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자기보다 더 어린 학생들이 그나마 일하고 있는 직장과 일터에 더 낮은 임금을 받고 치고 올라오니 특별한 기술도 없고, 기술이 요구되는 직장도 아닌 곳에서 버티고 있기란 ‘하늘의 별따기’라고 한다. 혹 좋은 직장에서 시작을 한다 해도 승진 시험이나 자격시험에서 고등학교 졸업장이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음을 곧 깨닫게 된다고 한다. 그렇게 세상에서 쓴맛을 보고 나서야 학교로 돌아오는 만 스물 두어 살의 만학도들이 있다.
가정을 벗어난 학생들
대안학교를 운영하면서 가장 큰 도전이 되는 일은 바로 부모의 부재다. 학생들이 성공하려면 학생과 교사 그리고 부모의 공조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이 아이들 곁에는 부모가 없다. 먼저 한국 학생들은 유학생의 경우 자취나 하숙을 하기에 부모가 곁에 없다. 한국에서 전화 몇 통, 수년에 한 두 번 정도의 방문으로 자녀들이 매일 치러야할 전쟁을 방어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문제가 생기면 유학생들의 가디언과 상담을 하긴 하지만 내 자식만큼 애틋한 마음이 없다. 아니 간절함이 없다고 해야 할까? 갓 이민 온 학생들도 부모의 부재를 느끼는 것은 마찬가지다. 함께 살고는 있지만 정작 아이들이 필요할 때 부모는 곁에 없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단 하루의 쉼도 허락되지 않는 이민의 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단한 삶을 사는 부모들에게 아이들을 위해 나누어줄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아 보였다.
또 한 부류의 아이들은 가출한 학생들이다. 그들의 삶을 들어보면 그렇게 사는 것이 기적이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수년간 친구 집들을 전전하며 살아가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부모의 보호 없이 올바른 가치관이 형성되지 않은 채 거리를 배회하며 안정되지 못한 삶을 사는 학생들이 있다. 가출한 아이들을 색안경으로 보기 전에 그들이 거리로 내몰리게 된 공통점이 있는데, 그건 바로 부모의 부재 그리고 가정의 부재다. 부부간의 갈등으로, 가정의 파탄으로, 가장 행복해야 할 가정 공동체는 더 이상 이들에게는 전쟁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곳이 되어 버렸다. 가정폭력에 시달려, 가정을 돌보지 않는 부모로 인해 어쩌면 이들은 스스로 자신들이 살 길을 찾아 나선지도 모른다. 이러한 마음의 상처와 아픔을 가지고 학생들은 학교 문을 두드린다.
멈추어 버린 학습 능력
어렸을 때 어머니가 항상 공부는 때가 있다고 하셨다. 성장기에 맞춰 또 그 나이에 꼭 습득해야 할 지식과 발전해야 할 학습 영역이 있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서 학생들은 공부에 흥미를 잊어버렸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책을 열지 않았다. 그렇게 그 학생의 학습능력은 거기서 멈추어 버린 것이다. 우리 학교에 등록하면 모든 학생이 Assessment Test 학업능력 평가시험을 거치게 된다. 여러 가지 각도에서 이 학생이 그 나이에 걸맞은 학습능력이 있는지를 평가하는 것인데 놀랍게도 정확하게 학업을 중단한 그 학년 이상으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시험결과를 받아보면 이 학생이 언제 학업에 흥미를 잃게 되었는지가 대충은 짐작이 가게 된다.
우리 학교 데이터를 분석해 보면 보통 학생들이 학교를 떠나 다시 학교로 돌아오기까지 약 3-5년 정도가 소요된다. 성장기 청소년들에게 3년은 거의 10년과 맞먹는 시간일 것이다. 이 시간 동안 많은 것들을 습득하고 생각이 깊어지고 행동이 습관화되는데 이 시간을 놓친 학생들에게서는 예외없이 동년배 학생과는 현저하게 떨어진 학습 장애가 나타난다. 특별히 주의력 결핍이 심하게 나타나고 간단한 공식을 외우거나 적용하는 것에 애를 먹기도 한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글로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것을 어려워하고 한 단락의 글도 문법에 따라 정확하게 서술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쉽게 발견하게 된다. 또한 기본적인 수학이나 과학 그리고 역사의 이해도가 낮은 상황에서 무조건 고등학교 과정을 이수하도록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자신이 인정하기 싫어도 이렇게 어려움에 처한 학생들이 존재한다.
몸의 습관을 바꾸어야 하는 학생들
우리 학교 수업은 아침 8시 30분 부터 오후 3시 5분까지다. 물론 단 1분의 지각도 허용치 않는다. 그리고 1분도 일찍 먼저 집에 갈 수 없다. 매년 가을학기가 시작되면 두 주간 Orientation Week을 가진다. 이 기간 동안 신입생들에게 주어진 테스트는 정시 등교와 학교에서 정해준 교칙을 따르는 일이다. 이때 단 한 번이라도 지각하거나 교칙을 어기면 입학이 취소된다. 그뿐만 아니라 쉬는 시간, 점심시간, 교실 이동 때에도 누구의 통제와 감시도 없지만 정확하게 시간을 지켜 움직인다. 학교에 입학해도 이 교칙을 지키지 않으면 단 두 번의 경고 후 한 주간의 정학을 거치고 그래도 교칙을 따르지 않으면 퇴학시킨다. 이렇게 강력하게 하면 누가 학교에 남느냐고 반문하겠지만 학교 문을 닫는 한이 있어도 학생들에게 도전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바로 몸의 습관 변화다.
초창기 학교 수업이 시작되었는데 학생들은 제시간에 자리에 와 있는 법이 없었다. 수업은 오전 8시 30분에 시작하는데 10시가 넘어서야 겨우 반 정도가 출석한다. 아예 오후에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학생도 있었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만난 학생들이 정작 교실에는 없었다. 너무 오랫동안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던 이들에게 시간 개념을 요구하는 것이 무리였다. 밤이 새도록 놀다가 다음 날 늦게까지 자고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몸에 벤 학생들에게 아침 8시30분은 정말 새벽과 같았을 것이다. 집에서 자고 있어도 누구 하나 깨우거나 학교에 가도록 보채는 이 없이 그렇게 수년을 살아온 학생들에게, 누구의 간섭없이 정신없이 시간을 보낸 학생들에게 정시 등교는 정말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졌다. 그러한 학생들을 독려하여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들에게는 정말 끈질긴 싸움이 아닐 수 없다.
학교에서 벗어나 수년간 아무런 제제 없이 살아온 이들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바로 하루를 계획성 있게 살도록 하는 일이었다. 방과 이후의 삶까지 컨트롤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학교에서 보내는 7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에는 이들에게 계획되고 절제된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아무리 교과과정이 훌륭하고 시설과 환경이 좋아도 단 하나, 몸의 습관이 길들어 있지 않으면 결코 이들은 실패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아무리 세운 목표가 위대하고 비전이 훌륭해도 자신의 몸을 가누지 못하면 그저 화려한 외침에 불구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시작한 것이 “Mental Toughness”라고 불리는 오리엔테이션 시간이다. 한 두 명이 아무리 잘해도 학급 전체 분위기를 바꿀 수 없기에 전체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훈련을 통해 아이들은 느슨하게 풀려있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마음을 다잡을 기회를 가지게 된다. 고등학교 졸업이라는 한가지 목표를 위해 누가 깨우지 않아도 태워다 주지 않아도 스스로 학교에 정시에 등교해서 자신의 하루 스케줄에 따라 수업을 듣고 공부하고 시험을 보는 일들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7시간씩 그 틀에 자신을 맞추어 가는 훈련이다. 반복적으로 아주 귀찮을 정도로 몸을 움직여야 하니 말이다.
2주간의 오리엔테이션이 끝나면 학생들이 아침에 학교를 오는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교사와 행정가들이 집요할 만큼 학생들을 파악해 학교에 나오도록 한다. 이즈음 되면 벌써 이탈자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작심삼일’이 보통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현상이라면 이 학생들은 ‘작심하루’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일단 등교하는 것이 몸에 습관이 되어야 그 다음 티칭(teaching)도 가능하고 고등학교 졸업장도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우리 대안학교에 입학하려면 성인 학생이건 상관없이 부모의 동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 말은 학생의 문제에 부모나 가디언이 반드시 참여하여 함께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를 무단결석하거나 지각하면 그 날은 반드시 학부모나 가디언이 학교를 오는 것으로 명시했다. 이들에게는 얼마나 귀찮은 일일지 모르겠지만 학부모들이 자식들에게 관심을 쏟는 만큼 아이들은 반응하게 되어있기 때문에 부모의 파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자유분방한 삶을 살아온 학생들에게 아예 처음부터 지각하거나 빠져서 골치 아픈 뒷감당을 하느니 차라리 학교를 정시에 가서 자는 한이 있더라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도록 했다.
초창기 학생들의 반발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특별히 만 18세 이상의 성인 학생들의 빈정거림과 누군가 자신의 삶을 컨트롤 하려고 하는 것에 대한 반발은 매우 컸다. 또한, 부모들이 자신들의 교칙 위반으로 인해 교사들과 함께 상담을 받아야 하는 상황 자체가 이들을 많이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만약 이것이 학생들에게 모멸감을 주거나 창피를 주기 위한 일이었다면 결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부모에게 고자질하기 위해 상담을 강제로 받게 하거나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만나는 것이었다면 우리는 결코 아이들의 변화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진심은 통한다
그러나 진심은 통했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학생들이 우리의 진심을 읽기 시작했다. 정말 자신들이 잘되도록 사랑으로 훈계하는 교사들과 스태프들에게 진정성으로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고등학교 졸업장을 수여하는 것이 최종 목표였다면 이렇게까지 힘을 들여 이들의 삶을 간섭할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본질적인 목표인 사회의 한 일원으로서 제대로 된 역할을 감당하게 하려면 이들의 삶의 변화까지 이끌어 내야만 했다.
우리의 역활은 교사로서 때로는 친구로서 때로는 부모와 같아야만 했다. 한 번은 교칙을 어겨 퇴학을 당한 학생이 1년이 지난 어느 날 나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교사들은 이 학생을 다시는 받아서는 안 된다며 강한 어조로 반대했었다. 일단 말이나 들어보자는 마음으로 그 학생을 만났다. 다시 우리 학교로 돌아오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교칙도 지키지 않고 선생님들에게 반항했던 학생이었는데 말이다. 교사들과 관계도 썩 좋은 편도 아니었고 말이다.
내심 궁금했다. 왜 오려고 하는지 물었다. “제가 이 학교를 떠나 2-3곳의 학교를 지난 1년간 돌아다녔습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해도 잘 못하고 있는데도 아무도 나에게 잘못하고 있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형식적인 대화와 수업은 진행되었지만 아무도 내 삶에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내가 얼마나 행복한 학교에 다녔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 번만 기회를 더 주시면 정말 열심히 해 보고 싶습니다.”
그 사건 이후 나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매년 6월 학교 졸업식이면 나는 어김없이 졸업생들의 간증을 듣는다. 그들이 얼마나 이 학교에 있는 동안 행복했었는지를 말이다. 누군가 저들의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실패의 굴레를 끊고 이제 새로운 꿈을 향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준 것에 대한 감사가 늘 넘친다.
때로는 심하다고 느낄 정도로 다그치기도 했지만, 오늘 본인이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정말 나를 사랑하기에 한 번뿐인 자신들의 인생을 소중하게 여겨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고백들을 듣게 된다. 정말 사랑은 포기치 않는 것이다. 너무 멀리 중심에서 벗어나 있지만, 다시 그 중심으로 돌아올 때까지 포기치 않는 것, 이것이야말로 사랑이었고 끈질기게 싸워야 하는 이유였다. <계속>
글= 이재영 LA사랑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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