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흔적을 찾아서」.
「신의 흔적을 찾아서」

‘진화론’을 충실하게 소개하는 신학자도 있지만, 오히려 과학계에서는 ‘신’과 ‘영성’에 대한 연구가 한창이다. <신의 흔적을 찾아서(Fingerprints of God·김영사)>는 이러한 ‘첨단 과학’의 성과를 언론인의 시각에서 종합 정리한 역작이다.

사실 현대인들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으면 좀처럼 믿으려 하지 않는다. 심지어 자신이 직접 경험한 사실조차 이러한 경향을 보이는데, 어떤 면에서 이는 ‘과학’이라는 우상을 숭배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들이 놓치고 있는 것은, 이 과학기술에도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것은 어떠한 원인과 결과를 지금까지 밝혀진 과학기술적 방법으로 정확하고 타당하게 설명할 수 없다는 뜻으로 통용된다. 이는 해당 내용이 ‘과학적’이지 않아서일 수도 있지만, 현대 과학 수준으로는 이를 설명할 길이 없다는 뜻도 된다는 것을 우리는 놓치고 있다.

하지만 ‘과학’이라는 우상은 거침없이 ‘과학적일 필요가 없는 영역’까지 침범해 점령군 행세를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비단 ‘창조-진화’ 논란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겪은 ‘영적 경험’을 놓고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이를 무시해 왔다.

이 ‘주류’ 과학자들은 사람들이 흔히 경험하는 직감, 예감, 기도의 힘 같은 것을 우연이라 폄하하는 것 외에 어떠한 설명도 내놓지 않는다. 저자는 “그들이 이러한 일상적 현상들에 대해 설득력 있는 이론을 내놓는다면, 다른 해석을 찾으려 애쓰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책에 따르면, 과학기술은 이제 전인미답의 ‘신의 영역’에 도전하고 있다. 저자는 유전학과 뇌과학, 신경정신학과 화학 등 분야의 전문가를 찾아다니며 사실성을 철저히 검증하고, 반론도 주의 깊게 청취한다. 특히 뇌파 측정기와 뇌 스캐너 등을 통해, 사람들에게 ‘영적 체험’이 일어나는 순간 특정 뇌 영역이 공통적으로 활성화된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대조군·통제군 등을 활용해 ‘중보기도의 능력’을 실험하고, ‘유체이탈의 순간’에 대비해 카메라를 설치해 놓았다.

이는 ‘과학’의 반격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신’의 반격이기도 하다. ‘신’의 입장에서는 애초부터 다 존재해 왔던 것을, 과학이 이제서야 발견해냈을 뿐 아니겠는가. 신에게는 현대 과학, 특히 ‘새로운 무신론자들’이 마치 도수가 맞지 않는 안경을 낀 채 “보이지 않는다”며 마음대로 결론을 내려버리는 ‘애송이들’로 보일 수도 있겠다. 저자는 이렇게 덧붙인다.

“과학은 당신과 내가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고, 따라서 우리는 때때로 영적 세계를 들여다보고 신을 알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 몸의 유전자 언어, 우리 몸이 보이는 화학 반응, 우리 뇌의 신경회로, 이러한 것들은 모두 자신의 존재를 우리가 알게 되기를 바라는 그분의 솜씨다.”

과학자들은 ‘신’과 ‘영성’을, 신학자들은 ‘진화’를 연구하는 세상이 됐다.
과학자들은 ‘신’과 ‘영성’을, 신학자들은 ‘진화’를 연구하는 세상이 됐다.

하지만 연구는 쉽지 않다. “과학적 영역이 아니라서”가 아니다. 저자는 이러한 ‘금단의 프로젝트’에 선뜻 비용을 대줄 곳이 많지 않다고 여러 차례 서술하고 있다. 종교계가 주목해야 할 지점이 바로 여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 책의 ‘신’이 기독교의 하나님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 대신 ‘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티베트 불교 승려나 프란치스코회 수녀 등 영성에 일가견이 있는 집단들이 등장한다. 저자는 기도의 힘을 유독 강조하는 ‘크리스천 사이언스’ 교도에서 복음주의로 ‘회심’했지만, 내용은 언론인답게 ‘팩트’만을 다루면서 비종교인들도 책으로 이끌어간다.

저자는 “책의 첫 글자를 쓰기도 전에” 신이 존재한다거나, 죽은 후에도 영혼이 산다거나, 우주가 지적이고 포용하는 곳이라는 걸 절대로 ‘증명’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하지만 ‘까마귀가 모두 검다는 법칙을 깨기 위해 흰 까마귀 단 한 마리만이 필요하듯’, 임사체험이나 유체이탈, 신 경험(성령 체험) 등의 사례들을 펼쳐놓으면서 이를 어느 정도 확증해내고 있다.

“과학이 아무리 신을 추방하려고 애써도, 신에 대한 믿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신이 사라지지 않은 이유는 사람들이 설명할 수 없는, 아주 영적인 순간에 신과 끊임없이 마주치기 때문이다. 나는 과학이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는 없지만 신과 공존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저자는 이러한 영역에 도전하는 ‘게릴라 과학자들’이 옳은지는 곧 판명이 날 것이라고 전망한다. 과학이 진보하면서, 순수하게 유물론적 패러다임이 풍미하던 시대는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과학은 영성을 부인하는 게 아니라, 활짝 열어 젖혀 모두가 볼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이는 저자만의 결론이 아니라, 수 세기에 걸쳐 영성을 알고자 하는 ‘신비주의자들’과 신앙인들이 한 목소리로 외친 결론이다.

“물질만으로 세상을 설명하는 패러다임을 반박하는 증거들이 쌓이고 있고, 이러한 증거들은 명상, 기도의 작용, 임사체험 같은 보다 혁신적 연구들에 의해 보강되고 있다고 그들은 믿는다. ‘이례적인 현상들’이 축적되면서 유물론을 둘러싼 댐에 압력이 가해지고, 그 댐은 결국 무너지게 될 것이다.”

오늘날 풍수나 토정비결보다도 홀대와 견제를 받고 있는 ‘영성’과 ‘신’에 대한 과학적 패러다임의 전환은 과연 저자의 예측대로 이루어질까. “우리는 온통 신의 지문 투성이(fingerprints of God)”라는 저자는 두 가지 성경말씀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 13:12)’.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함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시 139:1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