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신대학교(총장 정일웅)가 지난 22일 정기운영이사회를 열고 제5대 총장을 선출하려 했지만, 결국 이를 잠정 연기하고 말았다. 선거 부정을 막기 위해 후보를 투표 1시간 전 추천키로 한 것이 오히려 "후보 검증이 어렵다"는 불만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이에 총신대는 후보 '추천'을 '등록'으로 다시 바꿨고, 가능한 한 빨리 임시운영이사회를 소집, 일을 마무리 짓겠다는 계획이다.

총신대는 지난 제4대 총장 선출에도 수 차례 난항을 겪었었다. 당시 운영이사회에서 투표 후 개표하던 모습.
총신대는 지난 제4대 총장 선출에도 수 차례 난항을 겪었었다. 당시 운영이사회에서 투표 후 개표하던 모습.

하지만 제도를 보완해 새 총장을 뽑기까지, 꽤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한 교단 관계자는 "후보 등록과 임시이사회 소집 절차 등을 고려했을 때 현 정일웅 총장의 임기만료일인 9월 17일까지 후임 총장을 뽑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며 "뿐만 아니라 김영우 재단이사장이 현재 교단 부총회장 후보로 나선 상태여서, 9월 정기총회 전에 새 총장을 뽑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그는 "10월 내지 11월 경에나 (총장 선임이)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4년 전과 같은 '총장 공석'이 발생, 학교 운영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총신대는 지난 2009년 9월, 무려 1년 가까운 선거 끝에 정일웅 교수를 제4대 총장으로 선출한 바 있다.

최근 열린 총신대 운영이사회. 이날 이사들은 총장 선출을 하지 못했다.
최근 열린 총신대 운영이사회. 이날 이사들은 총장 선출을 하지 못했다.

왜 이렇게 총장을 뽑기가 어려운 것일까. 물론 이번 총신대의 총장 선거 연기를 '인물 부족'이나 지나친 '정치' 때문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보다 '깨끗하게' 하기 위해 신중을 기하는 과정에서 선거가 연기됐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러나 만에 하나 이후 진행될 선거가 또 다시 '파행'으로 얼룩진다면, '개혁신학의 보루' 총신대의 위상은 땅에 떨어질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본지는 역대 총장들의 면면을 살펴 보려 한다. 그들이 왜 총장이 되었고, 총신대가 왜 그들을 총장으로 선택했는지 알 수 있다면, 그 연장선상에서 새 총장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고 어떻게 선출해야 하는지도 어느 정도 그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마포삼열 박사

마포삼열=1901년 평양에서 '조선예수교장로회신학교'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총신대는 지금까지 모두 15명의 총장을 배출했다. 제1대(1901~1925) 총장(교장)이자 총신대 설립자이기도 한 故 마포삼열(Samuel Austin Moffeff , 1864~1939) 박사는 미국에서 신학교를 졸업하고 한국 선교를 자원, 1890년 내한해 주로 평양에서 선교활동을 펼치며 우리나라 근대교육에 힘을 쏟았던 인물이다. 특히 그는 총신대 외에도 평안도에 많은 학교와 교회를 설립했으며, 1918년부터 10년 동안 숭실중학교와 숭실전문학교의 교장을 역임했다. 1919년에는 조선예수교장로회 제8대 총회장에 오르기도 했다.

민경배 박사(백석대 석좌교수)는 "마포삼열 박사는 한국 장로교회의 체질을 굳힌 분이다. 한국교회의 신앙이나 신학, 그리고 교회의 구조를 규명하고 체계화하는 일은 반드시 마포삼열 박사의 신앙 유형을 분석하고 나서야 할 수 있는 일"이라며 "즉 마포삼열 박사를 이해하고 나서야 한국교회를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라고 그를 평가했다.

장신대 장영일 전 총장 역시 "복음의 일꾼들을 길러내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복음 사역자들을 양육할 수 있는 지도자들을 배출하는 일일 것"이라며 "마포삼열 박사는 바로 이 사역에 생명을 다해 집중하신 분이다. 장신대를 졸업한 2만7천여명의 목회자 모두가 바로 그분이 씨를 뿌려 거둔 열매들"이라고 말했다.

박형룡 박사

박형룡=총신대를 설명함에 있어 故 박형룡 박사(1897~1978)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총신대 제3대(1946~1951), 제5대(1953~1958), 제6대(1960~1962) 교장과 초대(1969~1972) 학장 등 모두 4번에 걸쳐 총신대 총장에 오른, 그야말로 불세출의 인물이다. 그는 평양 숭실대학을 졸업한 뒤 1926년 미국 프린스턴신학교를 졸업하고 1931년 총신대(평양장로회신학교) 교수로 취임했다.

박형룡 박사는 한국 보수신학계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이다. 그는 일평생 칼빈주의 개혁신학 연구에 몰두했는데, 자유주의 신학에 맞서 성경의 무오(無誤)와 이른바 '축자영감설'(逐字靈感說)을 주장했다.

장동민 교수는 그의 책 「박형룡」(살림)에서 "박형룡 박사는 한국 신학계의 거대한 산이다. 신학적 영향력에서, 정통 신학을 사랑하는 그의 열심에서, 장로교회에 남긴 유산에서 그렇다는 것"이라며 "한국의 장로교회와 복음주의적 교단의 목회자들은 박형룡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 기독교의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던 초기 한국교회에 진정한 복음과 기독교가 무엇인지, 기독교와 기독교적 애국운동을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지, 기독교와 전통 종교의 영성이 어떻게 다른지, 기독교와 현대주의는 어떤 공통성과 차이점이 있는지를 박형룡이 분명히 구분해 주었기 때문"이라고 그를 평가했다.

박윤선=故 박윤선 박사(1905~1988)는 총신대 제8대(1963~1964) 총장(교장)을 역임했던, 대표적 개혁신학자다. 그는 지난 1931년 평양신학교에 입학했고 1934년 떠난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 유학길에서 칼빈과 개혁주의 신학을 공부하게 된다. 이후 네덜란드 유학을 거치며 개혁신학을 공고히 한 그는, 고신대와 총신대,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등에서 후학들을 가르쳤다. 그 역시 박형룡 박사와 마찬가지로 자유주의 신학 물결에 대항했으며, 개혁주의 보수신학 연구에 평생을 바쳤다.

합동신대 역사신학 교수를 역임한 김영재 박사는 그의 책 「박윤선」(살림)에서 "박윤선은 성경 전체를 주석하는 대업을 이룬 주석가이다. 그는 주석을 통해 한국의 설교자들에게 성경 해석에 눈을 뜨게 해 주었으며 설교를 위한 자료를 제공함으로써 크게 도움을 주었다"며 "신학 교육에서 그는 후학들에게 신학이 교회를 섬기기 위한 학문임을 말과 글로써 강조할 뿐 아니라 목회를 동반한 그의 삶을 통해 역설했다. 그는 한국 장로교회가 칼빈주의 신학, 즉 개혁주의 신학의 바탕 위에 서도록 많은 글을 쓰고 가르침으로써 교회의 쇄신을 도모한 개척자요, 개혁신학자"라고 평가했다.

김의환=총신대의 규모가 커지면서 교장, 학장이 아닌 정식으로 '총장'이라는 명칭을 쓰기 시작한 건 제1대(1995~1999) 故 김의환 총장(1933~2010) 때부터다. 김의환 박사는 미국 칼빈신학교를 졸업하고 웨스트민스터신학교와 템플대학교 대학원에서 유학했다. 1976년부터는 미국 나성한인교회를 개척해 1995년까지 담임목사로 재직했으며, 1995년 고국으로 돌아와 총신대학교 초대 총장을 4년간 역임하고, 퇴임 후 4년간 성복중앙교회를 담임했다. 2002년 칼빈대 제2대 총장을 맡으며 학교로 돌아온 그는, 소천하기까지 일본선교회(JMF) 대표를 맡는 등 선교에도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총신대가 소속된 예장 합동총회(총회장 정준모 목사) 교단지 '기독신문'은 故 김의환 총장이 총장직에서 물러나던 지난 1999년 사설에서 "김의환 총장의 총신을 위한 많은 수고와 노력은 누가 후임 총장이 되든 귀감이 되고도 남을 것"이라고 기록한 바 있다.

"새 총장, 바른 개혁주의적 자세와 정신 가져야"

총신대에서 역사신학을 가르치다 최근 교편을 놓은 심창섭 박사는 "박형룡 박사님이나 박윤선 박사님 같은 분들로 인해 지금까지 한국의 개혁주의 전통이 지켜질 수 있었다"며 "그런 점에서 신학교의 총장은 일차적으로 학문, 즉 개혁주의 신학에 대한 바른 자세와 정신을 가진 이여야 할 것이다. 개혁주의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성경에 목숨을 걸고, 성경을 가장 객관적으로 해석하려는 몸부림이다. 그렇기에 총신대 총장은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고 이해하려는 개혁주의 정신이 투철한 사람이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다음으로 총장에겐 행정력이 필요하고, 또 총신대가 교단에 소속된 신학교인 만큼 어느 정도의 정치력 또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총신대 제3대(2004~2008) 총장을 지낸 김인환 박사는 과거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총장이 좀 더 많은 권한을 가졌으면 한다. 지금은 교수 임용을 비롯해 모든 인사권이 재단이사회에 있다. 그러니 학교가 교권을 쥔 자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며 "총장에게 인사권을 비롯해 좀 더 많은 책임과 권한을 줘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