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탈북 청소년들의 마음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극단적 사고와 공격성, 거짓말의 모습 이면에는 그들의 아픔과 외로움이 숨겨져 있었다.
탈북 청소년에 대한 심리적 이해와 멘토링을 돕기 위한 연세대 상담코칭지원센터의 '제1회 탈북청소년 멘토링 워크샵'이 12~13일 연세대 신학관에서 열리고 있다. 첫날 탈북 청년인 김주찬 연구원은 눈물 겨운 탈북 과정과 함께 탈북 청소년을 이해하는 방법을 전했다.
10대 초반 꽃제비였던 김 연구원과 그의 여동생은 꿈도 희망도 없이 북한의 시장을 전전했다. 추운 겨울에는 화차가 연료로 쓰고 버린 석탄더미가 식으면, 그 속에 파고 들어가 온기 속에 잠을 잤다. 수백 명의 아이들이 석탄 더미 속에서 잠을 잤는데, 오래 굶은 탓에 화차가 와도 일어서지 못하고 석탄 불덩어리 속에 타 죽은 아이들이 수도 없다고 한다.
먹을 것을 찾아 농촌도 다니고 산에도 들어갔다. 어느 날은 시장에 나왔는데, 한 아이가 굶어 죽어가고 있었다. 한 조선족 남자가 그 아이에게 빵을 줬는데, 아이는 빵을 입에 넣지 못하고 그대로 끌어안고 죽었다. 김 연구원은 감정도 없이 달려들어, 죽은 아이의 손에서 빵을 꺼내 어린 여동생과 함께 먹었다. 순간 그는 자신이 짐승만도 못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에 탈북을 결심하게 됐다.
하지만 본인도 어린데, 더 어린 여동생까지 데리고 두만강을 건널 수는 없었다. '3일만 있어라. 오빠가 돈 벌어서 데리러 올게'. 지키지 못한 약속이었다. 갈 곳도 없는, 두만강 인근까지 따라온 여동생을 뒤로 하고 두만강을 건넜다.
중국말도 모르는 탈북자 신세였다. 5년간 중국에서 생활하다가 한국에 가겠다는 마음을 먹고 라오스로 떠났는데, 라오스에서 잡혀 다시 북한의 감옥에 들어갔다. 감옥에서 꽃제비 구호소로 옮겨졌을 때는 심하게 말라 있었다. 그는 다시 탈북, 몽골 국경을 넘어 17세에 한국에 들어왔다.
"한국은 천사 같이 따뜻한 사람들만 사는 나라라는 환상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한 탈북자일 뿐이었다. 어떤 탈북자 친구는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며 3개월간 급식을 혼자 먹기도 했다. 학교를 그만 두고 검정고시 학원에 들어가도,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을 만나 탈선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검정고시는 점점 어려워지고 나이는 들고, 학업을 포기하는 일이 반복된다. 대안학교에 들어가도 탈북자 친구들만 보게 되니, 한국의 또래 친구들과의 관계가 없는 것이다."
김 연구원은 탈북 청소년의 특징으로 극단적이고 경직된 사고, 상대방에 대한 비난과 상호불신, 타인에 대한 배려심 부족,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성향,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가치관, 거짓말하는 태도 등을 언급했는데, 이러한 부정적 모습에는 이유가 있었다.
북한에서는 어린 학생들도 생활총화를 통해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친구의 잘못을 고발하기 때문에, 상대방에 대한 비난과 상호불신을 강하다. 심지어 북한의 교과서에는 아들이 아버지의 잘못을 고발하는 일이 옳은 행동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에 가족 간에도 믿을 수 없다고 한다. 북한은 거짓말 안 하고 정직하면 죽는 나라이기 때문에, 거짓말은 나쁜 행동이기보다는 생존과 연결된 수단으로 인식된다고 한다.
"탈북 1.5세는 자신은 한국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학교에서 부모가 탈북자라는 소식이 돌면, 친구들에게 '너도 탈북자야'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수업 시간에 모든 학생들이 졸 수 있는 것인데, 어떤 영어 선생님은 '너 왜 집중 안 해. 양키 영어라 그러느냐'라고 야단을 쳤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나는 탈북자라서 저런 소리를 듣는구나'라고 인식을 하게 되고, 일반 학교에서는 정상적인 생활이 어렵게 된다."
김 연구원에 따르면, 편견과 차별에 결국 다시 한국을 떠나는 탈북 청소년들도 많다고 한다. 배고픔 보다는 한국에서의 차별이 더 큰 고통이라는 생각을 품게 된 청소년들이다. 이에 대부분은 자신이 탈북자라는 사실을 숨기고 살아간다고 한다.
김 연구원은 "탈북 청소년들이 왜 힘들고 어려운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방법의 문제인데, 탈북 청소년들은 칭찬받은 경험의 별로 없다. 북한의 분위기가 그러하다.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칭찬과 격려를 많이 해야 한다. 또 남한의 청소년들은 상대적으로 공부를 잘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남한의 청소년들도 힘들고 어렵게 공부를 한다는 것을 인식시켜줘야 한다. 그리고 안 배웠으니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도 인식시켜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 "탈북 청소년들은 무슨 말을 하면 상처받는다고 생각해서 한국의 친구들이 다가가지를 못하는데, 탈북 청소년들은 여러분들이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다가와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그는 탈북 청소년 멘토링 시 유의사항으로 가족에 대한 상세한 질문은 삼갈 것, 영어와 한자어의 지나친 사용은 자제할 것, 브로커 비용 때문에 경제적으로 힘들다는 것을 인식할 것, 북한에서의 경험을 존중할 것, 선생님을 테스트하는 행동을 알아차리고 대처할 것 등을 전했다. 북한의 청소년들은 인생 경험도 있는데, 상대가 자신을 가르칠 만한 능력이 되는지 테스트하는 행동을 할 수 있다고 한다.
특히 '탈북자와 기독교'에 관해, "개신교회가 대북 구호활동을 70~80% 이상 하기 때문에, 대부분 탈북자들은 제3국에서 기독교를 접하고 들어온다. '평양이 제2의 예루살렘'이라는 말도 있듯이 탈북자들은 기독교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남한에서 신앙의 환상이 깨지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 저는 통일이 얼마 안 남았다고 보는데, 탈북자들은 하나님께서 통일을 준비하기 위해 보낸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탈북자들은 한국의 신앙 안에서 정착하여 통일의 거리감을 좁혀야 한다. 소통의 방식은 기독교 신앙이라고 보기 때문에, 더더욱 탈북자들은 한국에서 바르게 신앙생활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에 대해서는 "여동생에게 3일 후에 데리러 가겠다고 약속했는데 지키지 못한 것이다. 중국에서 한 달 생활하면서 따뜻한 밥을 먹으니 여동생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니 자살하고 싶은 마음만 들 정도로 죄책감이 몰려왔다. 육체적 고통보다는 정신적 고통이 심하다. 동생을 버린 것에 대한 죄책감, 떨어질 때 울부짖던 그 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려온다.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은 기도밖에는 없다. 제발 살아 있게만 해달라고, 보호해 달라고, 제발 지켜 달라고, 그러면 모든 것을 다하겠다고 기도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