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택하시고 부르심을 받아 성령의 계시와 감동으로 자기의 영적인 상태와 지옥형벌의 심판, 예수 그리도의 구속하신 은혜를 믿어지게 하심으로 회개하고 죄와 지옥 형벌의 저주를 벗어난 사람입니다. 이 성도는 믿음으로 하늘소망을 목적으로 새출발했기 때문에 그 사람을 하나님은 자기 자녀로 받아 주시는 표시로 그의 죄를 예수 이름으로 용서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주시어서 하늘나라 생명책에 이름을 올리시고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어주십니다.
이런 사람을 영어로 크리스천(Christian)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입장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성령의 도구로 쓰임 받으며, 하늘나라로 인도해 가심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그리스도인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내외가 로마에서 쫓겨 와 고린도에서 사업을 시작 했지만, 그들의 기술이나 노력만으로 그렇게 빨리 사업을 일으킬 수는 없었습니다. 그들은 온전히 하나님의 사업으로 열심을 냈고 결국 그 사업장은 하나님이 경영을 하시게 되니까 하나님의 방법으로 그 기업을 크게 일으켜 주심으로 그 두 내외는 얻어지는 수익금으로 사도바울의 유럽과 아시아 선교 뒷바라지를 하기에 붙들어 쓰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어떤 가상적인 생각으로만 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아니고 현실적으로 하나님이 택하시고 부르셔서 회개케 하시고, 거듭나게 하시고, 성령으로 붙들어 쓰시면서 그들을 통하여 세우신 계획이 이루어지도록 하나님은 살리시며, 붙들어 써 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성도의 생활 원리입니다.
돈을 벌어 불의와 타협하고 죄악을 저질러 가면서 수입만 목적으로 사는 것은 저주를 재촉하는 것이며, 심판과 형벌을 장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에 혼신의 진액을 다해서 신령한 성과를 이루어 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 나와 내 가정에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하늘조건으로, 하나님의 방법으로 주십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우리가 은혜를 은혜로 깨닫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의 계시와 조명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받아 각 사람에게 일을 시킬 때에 성령 받은 사람은 자청하여 일을 하겠다고 나섭니다. 그러나 성령 받지 못한 사람은 목사님이 우리의 형편을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잘 아시면서 이렇게 어렵고 힘든 일을 하라고 한다며 불평 속에 있게 됩니다. 이들은 자기 기준이고 자기 입장 중심입니다. 아볼로라는 대학자도 아무리 세상 공부를 많이 했어도 유대인이면서도 하나님을 잘 안다고 강의도 하면서 하나님 중심이 아니었습니다. 자기중심이며, 이기적이고 자기를 나타내므로 자기가 대접받고 영광 받고 강사료 챙기는 목적으로 살아오다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내외를 통하여 하룻밤에 진리를 깨달아 성령으로 거듭났습니다. 회개하고 성령 충만했습니다. 자기중심의 인생이 하나님 중심 인생으로 바뀌고 챙기기를 목적으로 살았던 인생이 드리는 인생으로 살게 됩니다. 그리고 복음을 위해서 자기의 모든 것을 드리기로 하고 선교사로 가서 큰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그 다음부터 아볼로는 자기의 지식을 팔아먹는 장사꾼으로 얻어지는 수입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자기 재산을 의지하고 산 인생도 아니고, 자기 인생을 영육간에 회개하고 성령 받는 순간부터 하나님께 온전히 바친 것입니다. 하나님 것이 된 것입니다. 그에게는 하나님 밖에 없는 생활로 바뀌어진 것입니다. 이런 믿음을 가졌을 때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내가 예수님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2:29-30에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듯 예수님 안에 들어가 있으면 예수님이 먹여 살리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리고 31절에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성도의 생활원리입니다.
예수님 안에 들어간 것은 의롭다는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들어갈 수 있었고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성령에 이끌리어 예수님 안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 사람은 이미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늘나라 상속받을 자격이 된 사람입니다.
타락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 형상으로 만들어진 인간이 하나님 형상을 파괴시켜 기준이 허물어진 것입니다. 기준은 하나님이십니다. 타락한 인간은 이성을 잃고 미쳐버린 것입니다. 성령 못 받은 사람은 제정신이 아닙니다. 귀신에게 사로잡힌 자는 귀신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고 말하다 보면 인격적으로는 귀신에게 휘둘리며 사는 것입니다. 타락한 사람은 진리도, 구원도 모르고 하늘나라도 모르며 분별의 혼돈이 생겨 마귀가 넣어주는 생각으로 죄을 짓고 살게됩니다. 절대로 제대로 살 수가 없습니다.
구원의 은혜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본문 1절에 있는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은 헬라어로는 호로고스라는 단어입니다. 인격적인 말씀을 뜻합니다. 그 말씀은 선포되는 즉시 반드시 이루어지는 인격적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인격이 담겨있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선포하신 이후로는 선포하신 하나님이 그 말씀대로 되어지도록 책임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인격적인 말씀을 믿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자니라”(요한1서1:2)
요한복음 14:6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 했습니다. 예수님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하늘나라 갈 사람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때 빌립이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요14:8)했을 때 예수님께서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니라”(요14:9-10)하셨습니다.
이는 아버지 아들 성령은 달라도 몸은 한 분, 삼위일체인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또 무엇 하시는 분인가를 아들 예수님의 공생애를 통해서 입체적으로 증거해 보이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셨을 때는 사람으로 보였지만 예수님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6:63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했습니다. 예수님 말씀이 영원한 생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그 자체가 영원한 생명 본체입니다. 그 말씀이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셨는데 그가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말씀 속에 생명이 전달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 말씀을 들음으로 생기는 것입니다. 성령이 역사하심으로 믿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전하는 것은 구원 얻은 성도들과 사귐을 갖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런 사귐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생명이 죽은 심령에도 전달되어지기 위한 목적으로 교제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의 사귐은 사람들끼리 사귐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더불어 사귀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빛 된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5절에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합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귀는 구원 얻는 성도라고 하면서 빛 가운데 살지 아니하고 어둠을 배경으로 산다면 그 인생은 거짓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저가 빛 가운데 계신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한1서 6-7)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빛을 온 세상에 비추면서 어둠을 물리치는 일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빛과 어둠은 반대입니다. 예수님이 생명의 빛, 구원의 빛으로 오셨는데 그 예수님을 모시고 산다고 하면서 빛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고 불의와 타협하고 죄악을 일삼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어두운 배경을 의지하고 사는 인생은 구원 얻는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믿음으로 제대로 살지 않으면서 입으로만 잘 믿는 척하고 생활하는 행동은 완전히 어둠의 자식처럼 산다고 하면 그 사람은 가짜입니다.
예수님이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서로 사귐이 계속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영생에 동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고 하면 스스로 속이고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죄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기가 거짓말 하는 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분으로 만들어 버리는 엄청난 죄를 짓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자백하면 하나님은 의로우시고 믿음직스러우신 분이기 때문에 그 아들 예수 이름으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죄악에서 구원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가운데 역사하십니다.
항상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점검하고 하나님께 붙어사는 것이 성도의 생활원리입니다. 말씀이 내게 아무리 힘들고 부담스러운 말씀이라도 하나님을 떠나는 것은 죽는 것입니다. 하나님 생명으로 계속 살리심을 받기 위해서는 어떤 힘든 부탁이라도 달게 받아서 기쁨으로 순종하고 실천하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귀하게 보십니다. 그러면 그 사람에게 하나님은 엄청난 계획이 세워지고 그 계획에 따른 기대만큼 관심도 더 깊어지시고 대접도 달라지실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를 살리는 것입니다. 순종하면 살고 거역하면 죽는 것입니다. 이사야1:19-20에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니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살고자 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살 수 있습니다. 말씀 순종하는 믿음 생활이 그리스도 안에 사는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고 성령에 이끌리며 하나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일로 쓰임 받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에 접착시켜서 영원히 살리시는 영생의 소망을 보장해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