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량
(Photo : 기독일보) 정인량 목사

형식은 내용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에 내용에 버금가게 중요한 것이 사실이다. 어떤 분이 형식에 대하여 이런 정의를 내렸다. "내용이 내용으로서의 구실을 다하기 위해서는 무작위적으로 모여 있는 알맹이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다. 내용이 내용으로서 제 구실을 다하기 위해서는 알맹이가 일정한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해주는 어떠한 규칙이 있지 않으면 안된다. 바꾸어 말하면 무규칙적으로 모여 있는 알맹이들이 일정한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해 주는 어떤 법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물현상이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해 주는 이와같은 법칙을 우리는 형식이라고 부르는데, 형식은 바로 사물현상을 완성시켜 주는 매우 중요한 구성요소가 된다. 그러므로 형식은 표현방식을 의미하게 된다. 바꾸어 말하면 사물이나 현상의 다양한 요소를 통일적인 연관이나 구조에 연결 지우는 방식이 바로 형식인 것이다."

그러나 형식은 훌륭하지만 그 형식에 반드시 담아내야 할 내용이 변변치 않을때 사람들은 혀를 차고 식상하게 된다. 다시말하면 내용은 알맹이인 까닭에 알맹이를 담는 그릇인 형식이 제아무리 훌륭해도 내용이 없는 형식이란 무용지물이다. 그래서 내용을 담은 형식을 한상 염두에 두는 일이야말로 지도자가 가장 희구해야 할일중에 하나인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선은 형식은 조금 부족해도 내용에 충실하겠다는 각오와 그 실행이 요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식을 우선순위에 두고 그 형식을 완성하는데만 전력질주한다면 빛좋은 개살구가 될 것이 분명하다. 형식이 그럴듯해서 모래밭에서 줏은 진주라고 했더니 그냥 모래알갱이중에 하나일뿐이라는 질타를 받게 된다면 낯뜨거운 일이 될것이다. 내용에 충실하려면 우선은 자신의 분수를 알아야 한다. 내용의 충실은 자신을 아는 일에서부터 출발한다.

히브리어에서 "라가"는 말은 머리가 텅 비었다는 말이다. 예수께서 이 '라가'란 말을 최상의 욕으로 지칭한것으로 보아 히브리문화에서 생각없이 사는 사람이란 말이야말로 가장 치욕적인 말이었던 모양이다. '라가'라고 형제에게 욕하면 지옥에 빠지겠다고 까지 경고한 것을 볼때 내용없이 산다는 것이 얼마나 수치스런 일인가를 명실상부 보여주는 일이다. 자신을 아는 일은 항상 자신이 라가 상태에 있는지 그 여부를 점검하는 일이다. 그리고 라가에서 부터의 탈출을 위해 겸손하게 자신을 가다듬어야 한다. 그것은 자신의 비어있는 베이큠안에 무엇을 채울것인가에 대하여 고민하는 정직한 사변이다.

내용을 중시해서 평생 그 내용을 담을 형식을 도외시해도 문제이지만 사실 오늘날은 이런 기인들이 씨가 말라서 내용없는 형식에 바람든 이들로 충만한 까닭에 몇 사람 쯤은 형식을 중요시하는 사회에서 아랑곳없이 그저 내용에 파묻혀 세월 가는 줄 모르는 위인들이 형식사회와 교계를 질타하는 멋진 일이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