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감리교가 국내 교단 중 최초로 일명 ‘세습방지법’을 만들었다. 담임직의 부자 간 승계가 질타를 받던 상황에서 나온 결정이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감리교 소속 모 대형교회가 편법으로 세습을 시도한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잠시 다른 이를 담임직에 앉혔다가 다시 그 자리를 아들에게 물려주는, 일종의 ‘징검다리’ 세습이 아니냐는 비판이었다.
교단은 난감했다. 만약 이 교회의 행위가 정말 세습을 위한 ‘꼼수’라면 이는 ‘세습방지법’의 취지를 어긴 것이 분명하지만, 아들이 바로 담임이 되지 않았으니 표면적으로는 법을 어겼다고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직 교단은 이렇다 할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세습방지법’이 통과되고 채 1년이 지나지 않은 지금, 감리교에겐 또 다른 과제가 주어졌다.
‘세습방지법’, 더 다듬어야
눈길을 끌었던 건, 앞서 모 대형교회의 ‘편법 세습’ 의혹이 논란이 되자 이 교회 담임목사가 감리교의 ‘세습방지법’을 “교회의 안정적 성장을 막는 악법”이라고 비판하며, 아들에게 담임직을 물려주는 것을 “세습이 아닌 목회 계승”이라고 주장한 점이다. 그는 한 교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뭇 진지한 어조로 “돈과 권력을 세습하는 좋지 않은 사례들이 있으나, 나는 아들을 그렇게 방치하지 않고 처음부터 ‘맞춤형 목사’로 키웠다”고 항변했다.
이처럼 감리교의 ‘세습방지법’은 그 입법 가능성이 대두되기 시작한 시점부터 교단 안팎에서 찬반 격론이 계속돼온 ‘뜨거운 감자’다. 그 양상은 대개 담임직의 부자 간 승계를 부정적 의미의 ‘세습’으로 볼 것이냐 하는 것에 대한 시각차로 나타났다. ‘세습’을 나쁘게 보는 이들은 그것을 마치 ‘부와 권력의 대물림’ 등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고, 그 반대편에 선 이들은 ‘목회의 계승’에 좀 더 무게를 둔다.
실제 ‘세습방지법’이 통과된 지난해 감리교 총회 현장에서도 이런 양상은 그대로 재현돼, 해당 건은 결국 투표에 부쳐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만들어진 법이 소위 ‘세습방지법’, 곧 ▲부모가 담임자로 있는 교회에 그의 자녀 또는 자녀의 배우자를 연속해서 동일교회의 담임자로 파송할 수 없다 ▲부모가 장로로 있는 교회에 그의 자녀 또는 자녀의 배우자를 담임자로 파송할 수 없다는 두 가지 내용이다.
이렇게 큰 틀을 만든 감리교는 현재 이를 보완할 ‘시행령’을 만들기에 분주한 상태다. 대형교회의 세습은 방지하면서도, 개척교회나 농·어촌교회의 건전한 ‘부자 승계’ 등의 길은 열어놓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감리교 한 목회자는 “세습방지법에 문제가 있지만 시대적 요구를 반영했다는 차원에서 감리교가 모범을 보였다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보완책, 가령 이 법을 교인수 몇 명 이상의 교회에만 적용한다는 등의 시행 세칙은 반드시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제화 반드시 필요할까?
‘세습’의 사전적 의미는 “한 집안의 재산이나 신분, 직업 따위를 대대로 물려주고 물려받는 것”이다. 그런데 이 용어가 오늘날 주로 부정적 인상을 주는 데는 ‘민주주의’ 혹은 ‘공공성’에 대한 의식 때문이다. 무언가를 소수가 독점하는 행위는 교회는 물론 사회 대부분의 영역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나님의 소유’ 개념이 강한 교회에선 더욱 그렇다. 세습 반대론이 더 거센 것도, ‘세습방지법’에 대한 찬성이 더 많은 것도 이런 까닭이다.
하지만 세습을 반대하는 것을 넘어 법으로 그것을 막아야 하는가에 대해선 아직 그 의견이 다양한 편이다. 법적 강제로 나타날 긍정적 효과 만큼이나 부정적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한 목회자는 “세습은 사실상 대형교회에나 해당되는 이야기”라며 “요즘 작은 교회에선 좀처럼 목회를 하려 하지 않는다. 사실상 (담임목사의) 아들 외에 대안이 없는 상황인데, 법으로 이를 막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최근 기독교대한성결교회에서도 감리교와 같은 ‘세습방지법’이 입법 시도됐다. 한 지방회가 지난 5월 총회 전 관련 안건을 헌의한 것. 하지만 교단 헌법위원회가 이를 부적합하다고 판단함에 따라 총회 정식 안건으로는 상정되지 못했다. 기성 헌법위원회 위원장인 류승동 목사는 이에 대해 “헌의된 법이 허술했다”며 “자녀는 안 되지만 며느리나 사위는 가능하다는 식의 법이었다. 세습을 반대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법으로 명문화하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고 말했다. 법제화의 어려움을 토로한 것이다.
성북성결교회 최종진 목사(전 서울신대 총장)도 “세습에 대한 찬·반을 떠나 법으로 세습 자체를 원천봉쇄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예컨대 교인들 사이에서 현 담임목사의 아들이 후임에 가장 적합하다는 공감대가 있는데도 법 때문에 아들이 담임이 될 수 없다면, 이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한 번쯤 고민해야 한다. 무엇이든 법적 강제성보다는 자발적 참여가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법적 강제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개포감리교회 안성옥 목사는 “교회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할 필요가 있다”며 “구체적인 법을 만들어 그것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의식을 형성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반 기업 ‘오너家 경영’에 대한 부정적 인식 옅어져
그렇다면 일반 사회에선 어떨까. 기업의 경우를 보면, 법으로 세습을 막는 일은 없다. 창업주의 아들이라 할지라도 주주들이 정당한 절차를 통해 그를 경영인으로 임명하면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한때 부자 간 경영 승계를 ‘전근대적’인 것으로 치부했던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것의 장점이 부각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 이병기 선임연구원은 “삼성이나 현대, LG 등이 세계적 기업이 되면서 오너家의 경영 승계가 반드시 나쁜 것 만은 아니라는 인식이 생겼다”며 “중요한 것은 누가 경영을 하느냐가 아니라, 경영인이 얼마나 과감하게 투자를 결정해 기업의 성장을 이끌 수 있느냐 하는 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