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규영 목사의 다윗의 생애 강해(5)
성경본문: 사무엘상 16장 14절 - 18절
지난 시간에 우리는 왜 다윗이 세 번이나 기름부음을 받아야 했는지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어느 누구도 다윗을 인정하지 않던 때, 어느 누구도 다윗이 어떤 인물인지를 알지 못하고 있을 때, 이미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보시고 계셨습니다. 다윗이 어떤 인물인지를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지자 사무엘을 보내어 숨어 있던 다윗을 찾아내어 그에게 기름을 부으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실제로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까지에는 오랜 시일이 흘러야 했습니다. 나이 스무 살에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실제로 그가 유다 지파의 왕이 된 때는 나이 서른 살 때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모든 이스라엘 백성의 왕으로 다시 기름부음을 받은 때는 그의 나이 서른일곱 살 때였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뜻이 완전하게 성취되기까지에는 무려 17년이란 세월이 지나야 했습니다.
문제는 그 17년이란 세월이 쉽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다윗은 그 기간동안 끊임없이 훈련을 받아야 했습니다. 시험을 거쳐야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 위해서는 그 거룩한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시험을 거쳐야 했습니다. 마치 우리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시던 것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다윗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어떤 한 사람을 불러 쓰시기 전에 먼저 그를 시험하십니다. 테스트를 하십니다. 그 시험 기간을 통해 그는 하나님께서 부르신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게 됩니다. 아무렇게나 하나님의 일을 맡기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에게 당신의 거룩한 일을 맡기십니다. 그렇기에 내가 지금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무런 준비 없이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 후에 실제로 그 일을 하도록 만드십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아무 때나 우리에게 가장 아름다운 것을 주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 아름다운 것을 받을만할 때 그것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가장 아름다운 것을 받기 위해서 때로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때로는 연단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더 겸손해져야 합니다. 때로는 믿음이 더 강해져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가 준비되어 있을 때 하나님은 가장 아름다운 것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더 많은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받기 원한다면,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바르게 사용해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잘못 사용한다면 하나님은 더 이상 우리에게 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질을 주셨는데, 우리가 그 물질을 잘못 사용한다면 하나님은 더 이상 우리에게 물질을 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권세를 주셨는데, 우리가 그 권세를 잘못 사용한다면 하나님은 어느 순간 그 권세를 빼앗아 가실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훌륭한 재능을 주셨는데, 우리가 그 재능을 잘못 사용한다면 하나님은 더 이상 재능을 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을 내가 바르게 사용한다면 하나님은 내게 더 주실 것입니다.
드디어 다윗이 궁중에 들어가게 됩니다. 물론 왕으로서가 아니라 수금 연주자로서 말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다윗의 일생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 하나 등장합니다. 다윗에게 하나님의 거룩한 신이 임하자마자 사울에게서 하나님의 신이 떠납니다. 한 사람은 하나님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고 또 다른 한 사람은 하나님의 신이 떠납니다. 하나님의 신이 떠난 사울에게는 악신이 찾아옵니다.
사울은 그 악신으로 인해 번뇌하기 시작합니다. 번뇌했다는 말은 마음이 시달려 괴로워한다는 말입니다. 고민과 갈등이 시작됩니다. 이로 인해 괴로워합니다. 아마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유 없이 불안해하고 작은 일에도 괴로워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신이 떠나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는 사울을 통해서 보게 됩니다. 우리의 죄로 인해 우리 속에 계신 성령께서 슬퍼하시고, 근심하시다가 소멸되시면, 즉 우리를 떠나시면 우리가 어떻게 되는지를 사울을 통해서 깨닫게 됩니다. 번뇌하게 됩니다. 근심하게 됩니다. 괴로워합니다. 확신이 사라지고 믿음이 약해집니다. 때로 우리가 겪는 번뇌가 단순한 근심이나 걱정인지 아니면 악령의 역사인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악신은 우리를 번뇌하게 만듭니다. 의심하게 만듭니다.
결국 이러한 사울 왕의 상태를 신하들도 알게 되었습니다. 사울은 악신으로 괴롭힘을 당하자 자신의 병을 치료할 방법을 찾습니다. 그러자 이때 신하들이 왕에게 진언합니다. “수금 잘 탈 줄 아는 사람을 구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왕에게 이를 때에 그가 손으로 타면 왕이 나으시리이다.” 신하들의 진언은 겨우 이것뿐이었습니다. 그들은 사울 왕이 악신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왕에게 줄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은 고작 수금 연주를 들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신하들 중에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 있었다면 이런 충언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도 다른 충고를 했을 것입니다. “왕이시여, 당신에게 임한 악신은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앞에서 회개를 하십시오. 그렇게 해서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십시오. 하나님의 종인 사무엘을 궁으로 부르시고, 와서 기도해 달라고 요청하십시오.” 아마 이렇게 충언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생각한 방법은 음악 치료였습니다. 완전한 치료가 아니었습니다. 사울 왕은 악신을 내어 쫓고 다시 하나님의 신으로 회복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세상의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적인 방법은 항상 임시적입니다.
사울 왕은 신하들의 충고를 합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는 수금을 잘 타는 사람을 구해 오도록 요청합니다. 그러자 한 사람이 추천합니다. “내가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을 본즉 탈 줄을 알고 호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 이새의 여덟 아들 중 다윗에 대한 말이었습니다. 이미 다윗이 어떤 인물인지 궁중에 있던 사람들도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탈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서 탄다는 말은 수금을 연주할 줄 안다는 말입니다.
다윗은 예술적인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시인이요, 음악가였습니다. 나중에 그는 스스로 악기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예술적인 재능으로 온전히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호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호기란 씩씩하다는 말입니다. 무용이란 싸울 때 용맹스럽다는 말입니다. 구변이란 말솜씨입니다. 지혜롭다는 말입니다. 다윗은 씩씩하고 용감한 청년이었습니다. 게다가 지혜롭고 말솜씨가 뛰어난 젊은이였습니다. 다윗의 생애를 살펴보면 다윗은 말을 참 조심스럽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구변이란 말을 잘 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말을 지혜롭게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다윗의 인물됨을 보여주는 것은 그에 대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라는 말입니다. 다윗을 소개한 젊은이는 그렇게 다윗의 인물됨을 평했습니다. 다윗이 스스로 말하지 않아도 그를 지켜본 주위 사람들이 다윗을 가리키며 “저 사람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이라고 말했다는 점입니다.
오늘 우리를 바라보는 이웃 사람들이, 아니 나와 함께 있는 우리 가족들이, 늘 함께 다니는 우리 친구들이 나를 바라보며 “당신은 정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혹 나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평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네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은혜가 있는 곳에는 틀림없이 열매가 드러나는 법입니다.
오늘도 우리들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에게서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다윗처럼 “주님께서 그 사람과 함께 계시더이다.”라는 증거를 들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성경본문: 사무엘상 16장 14절 - 18절
지난 시간에 우리는 왜 다윗이 세 번이나 기름부음을 받아야 했는지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어느 누구도 다윗을 인정하지 않던 때, 어느 누구도 다윗이 어떤 인물인지를 알지 못하고 있을 때, 이미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보시고 계셨습니다. 다윗이 어떤 인물인지를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지자 사무엘을 보내어 숨어 있던 다윗을 찾아내어 그에게 기름을 부으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실제로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까지에는 오랜 시일이 흘러야 했습니다. 나이 스무 살에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실제로 그가 유다 지파의 왕이 된 때는 나이 서른 살 때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모든 이스라엘 백성의 왕으로 다시 기름부음을 받은 때는 그의 나이 서른일곱 살 때였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뜻이 완전하게 성취되기까지에는 무려 17년이란 세월이 지나야 했습니다.
문제는 그 17년이란 세월이 쉽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다윗은 그 기간동안 끊임없이 훈련을 받아야 했습니다. 시험을 거쳐야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 위해서는 그 거룩한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시험을 거쳐야 했습니다. 마치 우리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시던 것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다윗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어떤 한 사람을 불러 쓰시기 전에 먼저 그를 시험하십니다. 테스트를 하십니다. 그 시험 기간을 통해 그는 하나님께서 부르신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게 됩니다. 아무렇게나 하나님의 일을 맡기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에게 당신의 거룩한 일을 맡기십니다. 그렇기에 내가 지금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무런 준비 없이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 후에 실제로 그 일을 하도록 만드십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아무 때나 우리에게 가장 아름다운 것을 주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 아름다운 것을 받을만할 때 그것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가장 아름다운 것을 받기 위해서 때로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때로는 연단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더 겸손해져야 합니다. 때로는 믿음이 더 강해져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가 준비되어 있을 때 하나님은 가장 아름다운 것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더 많은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받기 원한다면,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바르게 사용해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잘못 사용한다면 하나님은 더 이상 우리에게 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질을 주셨는데, 우리가 그 물질을 잘못 사용한다면 하나님은 더 이상 우리에게 물질을 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권세를 주셨는데, 우리가 그 권세를 잘못 사용한다면 하나님은 어느 순간 그 권세를 빼앗아 가실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훌륭한 재능을 주셨는데, 우리가 그 재능을 잘못 사용한다면 하나님은 더 이상 재능을 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을 내가 바르게 사용한다면 하나님은 내게 더 주실 것입니다.
드디어 다윗이 궁중에 들어가게 됩니다. 물론 왕으로서가 아니라 수금 연주자로서 말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다윗의 일생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 하나 등장합니다. 다윗에게 하나님의 거룩한 신이 임하자마자 사울에게서 하나님의 신이 떠납니다. 한 사람은 하나님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고 또 다른 한 사람은 하나님의 신이 떠납니다. 하나님의 신이 떠난 사울에게는 악신이 찾아옵니다.
사울은 그 악신으로 인해 번뇌하기 시작합니다. 번뇌했다는 말은 마음이 시달려 괴로워한다는 말입니다. 고민과 갈등이 시작됩니다. 이로 인해 괴로워합니다. 아마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유 없이 불안해하고 작은 일에도 괴로워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신이 떠나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는 사울을 통해서 보게 됩니다. 우리의 죄로 인해 우리 속에 계신 성령께서 슬퍼하시고, 근심하시다가 소멸되시면, 즉 우리를 떠나시면 우리가 어떻게 되는지를 사울을 통해서 깨닫게 됩니다. 번뇌하게 됩니다. 근심하게 됩니다. 괴로워합니다. 확신이 사라지고 믿음이 약해집니다. 때로 우리가 겪는 번뇌가 단순한 근심이나 걱정인지 아니면 악령의 역사인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악신은 우리를 번뇌하게 만듭니다. 의심하게 만듭니다.
결국 이러한 사울 왕의 상태를 신하들도 알게 되었습니다. 사울은 악신으로 괴롭힘을 당하자 자신의 병을 치료할 방법을 찾습니다. 그러자 이때 신하들이 왕에게 진언합니다. “수금 잘 탈 줄 아는 사람을 구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왕에게 이를 때에 그가 손으로 타면 왕이 나으시리이다.” 신하들의 진언은 겨우 이것뿐이었습니다. 그들은 사울 왕이 악신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왕에게 줄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은 고작 수금 연주를 들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신하들 중에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 있었다면 이런 충언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도 다른 충고를 했을 것입니다. “왕이시여, 당신에게 임한 악신은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앞에서 회개를 하십시오. 그렇게 해서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십시오. 하나님의 종인 사무엘을 궁으로 부르시고, 와서 기도해 달라고 요청하십시오.” 아마 이렇게 충언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생각한 방법은 음악 치료였습니다. 완전한 치료가 아니었습니다. 사울 왕은 악신을 내어 쫓고 다시 하나님의 신으로 회복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세상의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적인 방법은 항상 임시적입니다.
사울 왕은 신하들의 충고를 합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는 수금을 잘 타는 사람을 구해 오도록 요청합니다. 그러자 한 사람이 추천합니다. “내가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을 본즉 탈 줄을 알고 호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 이새의 여덟 아들 중 다윗에 대한 말이었습니다. 이미 다윗이 어떤 인물인지 궁중에 있던 사람들도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탈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서 탄다는 말은 수금을 연주할 줄 안다는 말입니다.
다윗은 예술적인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시인이요, 음악가였습니다. 나중에 그는 스스로 악기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예술적인 재능으로 온전히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호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호기란 씩씩하다는 말입니다. 무용이란 싸울 때 용맹스럽다는 말입니다. 구변이란 말솜씨입니다. 지혜롭다는 말입니다. 다윗은 씩씩하고 용감한 청년이었습니다. 게다가 지혜롭고 말솜씨가 뛰어난 젊은이였습니다. 다윗의 생애를 살펴보면 다윗은 말을 참 조심스럽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구변이란 말을 잘 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말을 지혜롭게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다윗의 인물됨을 보여주는 것은 그에 대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라는 말입니다. 다윗을 소개한 젊은이는 그렇게 다윗의 인물됨을 평했습니다. 다윗이 스스로 말하지 않아도 그를 지켜본 주위 사람들이 다윗을 가리키며 “저 사람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이라고 말했다는 점입니다.
오늘 우리를 바라보는 이웃 사람들이, 아니 나와 함께 있는 우리 가족들이, 늘 함께 다니는 우리 친구들이 나를 바라보며 “당신은 정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혹 나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평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네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은혜가 있는 곳에는 틀림없이 열매가 드러나는 법입니다.
오늘도 우리들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에게서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다윗처럼 “주님께서 그 사람과 함께 계시더이다.”라는 증거를 들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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