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창 12:7-8)
아브라함은 마땅히 내놓을 이력이 변변치 못한 인물이었다. 그는 75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녀마저 낳지 못하는 불행한 형편 속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리고 전혀 익숙하지 않은 열악한 환경의 가나안 땅에서 새로운 후반전 인생을 시작한 것이다. 하나님은 무엇을 보시고 아브라함을 부르셨을까? 이에 대한 답은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지 않다. 다만 아브라함이 보여준 행동을 통하여 하나님께 대한 신뢰가 대단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큰 신뢰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여전히 미숙한 인물이었다. 하나님께서 주목하신 것은 그의 완벽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물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었다.
아브라함에게 있었던 성장 가능성은 어떤 것일까? 성경은 다음 두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로, 그가 하나님 앞에 제단 쌓는 일을 즐겨했다는 점이다. 제단 쌓는 것은 하나님 앞에 예배함을 의미한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가나안 땅으로 와서 처음으로 도착한 곳이 세겜이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어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약속하셨다. 이에 아브라함은 그곳에 단을 쌓았다(창 12:7). 그가 제단을 쌓은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전적으로 받아들였다는 의미이며, 그런 약속을 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응답이었다. 세겜을 떠나 벧엘로 장막을 옮겼을 때에도 그는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창 12:8).
그는 거처를 옮겨 다니면서 가는 곳마다 하나님 앞에 단을 쌓고 예배를 드렸다. 예배는 일정한 시공간에서 하나님과의 만남을 의미한다. 예배를 통하여 우리들은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가장 기본적인 예절이며 거룩한 의무이다. 하나님과의 만남을 즐거워하였던 아브라함은, 하나님과의 기본 관계를 바르게 설정하고 유지한 인물이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목한 아브라함의 가능성이다.
둘째로, 아브라함은 더 성숙할 여지를 가진 인물이었다. 성장의 여지는 곧 훈련을 통하여 더 큰 인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완벽은 더 이상 성장의 여지가 없다는 뜻이다. 아브라함은 완벽한 인물이라서가 아니라 더 성장할 여지가 있어서 부름받은 것이다. 결국 그의 부름받음은 훈련을 위한 것이다.
훈련은 편안함보다 불편함에서 더 큰 효과를 발휘한다. 아브라함의 고향인 갈대아 우르나 잠시 머물렀던 하란은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 강으로 인해 물이 풍부한 지역이었다. 그곳은 역사상 최고의 문명이 꽃핀, 세계의 중심지였다. 그에 비하여 가나안 땅은 주변이 모두 사막으로 둘러싸여 있는 문명의 외곽지역이고, 기근이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열악한 환경이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이런 곳으로 불러내신 것은 어려운 여건을 통하여 훈련받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고난은 종종 하나님께서 즐겨 사용하시는 성장의 훈련학교가 된다.
아브라함이 기근을 피하기 위하여 가나안을 떠나 애굽으로 내려간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역행한 큰 잘못이었다. 하나님께서 주신 더 좋은 훈련 기회를 스스로 회피했기 때문이다. 그의 선택은 신앙적이기보다는 인간적이고, 대부분 사람들이 선호하는 세속적 관행이었다. 그것은 신앙인들 모두에게 자주 찾아오는 유혹이기도 하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더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게 하였다. 그는 애굽으로 내려가면서 목숨을 부지해 보려고 사라를 아내가 아니라 누이라고 속였다. 예상했던 대로 바로는 외국에서 온 사라를 취하여 자신의 궁으로 데려갔고, 아브라함에게는 후대하는 표시로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약대를 주었다(창 12:16). 아브라함이 바로에게서 받은 것은 일종의 결혼보상금 '모하르'였다. 이 일로 인하여 아브라함은 삶의 안정과 함께 상당한 부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큰 민족을 이루겠다는 하나님의 계획은 커다란 위기에 봉착하였다. 큰 민족을 이룰 통로인 사라를 빼앗기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한계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시작되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위기를 맞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바로의 궁에 큰 재앙을 내리심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 주셨다. '재앙'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나가아'는 피부병과 관련된 질병, 곧 문둥병으로 인한 재앙을 암시한다. 바로는 자신에게 내린 재앙으로 잘못을 깨달게 되었고, 그 결과 사라는 다시 아브라함에게 돌아올 수 있었다.
이 사건은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하나님의 보장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잘 보여준다. 훈련을 회피한 아브라함의 미숙함 때문에 생긴 문제였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바로에게 재앙을 내림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셨고, 호된 신앙 훈련을 통해 아브라함은 더욱 성숙한 인물로 성장할 숙 있었다. 자신의 부족함이 하나님을 향해 열려 있으면, 아무리 큰 시련이라도 넉넉히 감당하도록 지켜주시며 성장의 아름다운 결실을 맺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권혁승 교수는
충북대학교 사범대학 영문과(B. A.)를 나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 Div.), 이스라엘 히브리대학교(Hebrew University, Ph. D.)를 졸업했다. 현재 서울신학대학교에서 구약학을 가르치고 있고 엔게디선교회 지도목사, 수정성결교회 협동목사, 한국복음주의 구약신학회 회장으로 있다. 권 교수는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고전 4:16)을 바른 신앙과 건강한 삶의 기본으로 삼고 있으며, 이를 위해 '날마다 말씀따라 새롭게'를 제목으로 한 수필을 그의 블로그를 통해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