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하나님을 만나다
(Photo : 기독일보) 길 위에서 하나님을 만나다

‘걷기 열풍’이 계속되고 있다. 제주 ‘올레길’의 성공 덕에 각 고장마다 ‘둘레길(북한산, 지리산 등)’, ‘갈맷길(부산)’ 등 걷기 편한 도로들도 생겨난다. 이러한 ‘일상의 걸음’에 신앙적인 의미를 더하면 ‘순례’가 되는데, 이는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영성 훈련’의 한 방법이기도 했다.

‘순례의 영성과 보행의 신학’을 다룬 <길 위에서 하나님을 만나다(The Sacred Journey·IVP)>는 ‘순례’ 하면 ‘성지순례’나 ‘천로역정’ 정도가 떠오르는 일반 기독교인들에게 던지는 ‘순례 예찬기’이자 ‘순례 가이드북’이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가지고, 왜, 어떻게 떠나야 하는지가 모두 나와 있다. ‘누가’는 물론, ‘당신’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당장 이번 여름휴가 때 ‘순례’를 떠나버릴 수도 있지만, 오히려 가벼운 마음으로 별 생각 없이 떠나보려던 이들의 발길을 묶어놓을 수도 있다. 순례는 ‘방랑자를 편애하시는 하나님’을 따라 유랑하는 성경적인 여정이지만, 그만큼 급진적이고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놓기 때문이다. 저자인 찰스 포스터는 “익숙한 삶의 자리를 떠나 일단 주님과 동행하는 길을 가게 되면, 그의 인생은 더 이상 이전과 같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일단 방랑자가 되고 자신이 방랑자임을 깨닫고 여호와의 기쁨과 선호하심을 느끼고 나면, 당신은 절대로 다시 정착민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설령 당신이 다시는 사무실이나 거실을 떠나지 않더라도 말이다.”

하나님과 함께 걷는 길… 삶을 변화시키는 길

“우리 모두는 이 땅의 순례자들이다. 이 땅 자체가 천국의 순례자라는 말도 있다(막심 고리키).”
(Photo : 일러스트=그래픽팀) “우리 모두는 이 땅의 순례자들이다. 이 땅 자체가 천국의 순례자라는 말도 있다(막심 고리키).”

저자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이들-아벨과 아브라함, 모세와 예수님-의 공통점을 그들이 ‘유목민’이었던 데서 찾았다. 그들은 천막에 가만히 머무르지 않았고, 방랑하거나 푸른 초장을 찾아 계속 떠나기를 반복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유목민이 자신을 닮았기 때문에 유목민을 좋아하시는 것 같다. 유목민과 하나님은 가치관이 같으며, 유목민은 또 순수하고 관계를 중시한다.”

순례는 또 ‘자진하여 주변부로 나아가는 것’이다. 예수님의 삶이 그러했다. 그분은 ‘아버지 하나님이 계신’ 예루살렘 지성소로 향하지 않으셨고, ‘팔레스타인에서 위치상 가장 덜 전략적인 지역’을 돌아다니시며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드러내 보이셨다. 그분이 제자들을 택하시며 하신 말씀은 ‘나를 믿으라’가 아니라 ‘나를 따르라’였고, 택하신 이들도 한결같이 ‘주변부’에 있던 자들이었다.

그렇다면, 왜 떠나야 하는가? 쓸모없는 것들을 버리러 간다. 여정이 시작되면 우리 자신의 모습이 되지 못하게 막던 것들을 뒤로 하게 되고, 수십 년 쌓아온 때가 빠지며, 행선지에 다다르면 짐을 내려놓고 완전히 벗어난다. 다 버렸으면, 새로 얻어야 한다. 이는 여정 도중 맞닥뜨리는 수많은 ‘만남’들이다. 걷다 보면, 어린아이처럼 모든 사물을 경이롭게 바라볼 수 있는 ‘새로움’에 대한 회복을 경험할 수 있다.

행선지는 ‘하늘과 땅이 맞닿아 이 세상과 저 세상이 유독 서로 가까운 곳, 조용히 있으면 하나님이 속삭이시는 소리가 들리는 곳’이다. 당신의 마음을 따라가면 된다. 꼭 ‘팔레스타인’일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예루살렘을 걷고 있더라도, 유적지에서 잠깐 사진 찍고 하루종일 에어컨 시설이 완비된 관광버스로 돌아다니는 ‘관광객’이라면 별 소용이 없다.

그럼, 무엇을 가지고 가야 하는가? 많지 않다. 꼭 필요한 것들은 가면서 다 채워지게 되기 때문이다. “꼭 필요할 때 먹을 것이 생기고, 갈림길에 가면 길을 아는 사람을 만나고, 넘어지면 뒤에 오는 낯선 사람의 배낭 속에 꼭 맞는 구급약이 들어있는 ‘기적’을 체험할 수 있다.” 저자의 ‘추천 리스트’는 여권과 신용카드 하나, 약간의 현금, 스웨터 하나, 여벌로 양말 한 켤레와 속옷 한 벌, 가벼운 방수 재킷 정도이다. 설사약이나 수분 보충제 정도는 더 허락할 수 있다.

이 정도로는 여정이 불편하고 힘들지 않을까? 저자는 순례자가 고생 앞에서 보일 수 있는 태도가 ①고생이 전혀 고생이 아님을 깨닫는다 ②고생을 기분 좋게 참는다 ③고난 중에도 즐거워한다 등 세 가지라며, “불평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순례는 단체 여행으로 변하고 만다”고 한다. 단, 떠나기 전 ‘당신의 부재’가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고려해야 한다. 순례를 핑계로 모든 책임을 회피해선 안 된다는 뜻이다. 당신이 어질러 놓고 간 것을 다른 이들이 치우게 한다면, 그것은 순례가 아니라 착취이다.

‘순례’에 반대하는 이들에게도 카운터 펀치를 날린다. 종교개혁가들은 고대로부터 내려오던 영성훈련 중 특히 ‘순례’에 강력히 반대했는데, 그들의 주요 주장은 ‘굳이 갈 필요가 있는가’로 요약된다. 그곳(성지)에 가야만 은혜를 받거나 (타종교처럼) 죄가 씻기는 게 아니라는 것. 이에 대해 저자는 “신학적으로 순례를 반대하는 사나운 독설과 냉철한 논문을 많이 읽어 보았지만, 그것들은 진실하게 들리지 않는다”고 응수한다. 가장 강력한 종교개혁가 중 하나였던 존 번연도 <천로역정>이라는 ‘순례기’를 쓰지 않았느냐고도 한다. 저자는 “‘천로역정’은 책장을 넘길 때마다 나그네의 땀이 흐른다”며 “순례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모두 (적어도 당대의 기준으로 보면) 도시의 잘 나가는 지식인들이며 따라서 잃을 것이 아주 많은 사람들”이라고도 한다.

순례는 이처럼 떠남을 통한 ‘익숙한 것과의 결별’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 순례는 ‘뒤로 돌아가는 여정’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눈, 즉 어린아이의 눈을 줄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에서 말하는 순례가 가장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대상은 아직 순례자가 아닌 사람들이나 자신이 순례자임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이외에도 많은 설명이 있지만, 만 가지 말보다 한번 실제로 떠나보는 것이 낫다. 너무 겁낼 필요는 없다. 책에 따르면 우리 동네 산책길에서도 ‘순례’를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순례의 끝은 일상으로의 복귀이며, 더 이상 일상적이지 않은 삶의 자리에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이 책은 IVP ‘영성과 보화 시리즈’ 중 하나로, 성경 시대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7가지 오래된 영성 훈련들을 새롭게 조명하여 오늘날 그리스도인과 교회를 위한 적용점을 제시하는 기획물이다. 기도·안식·금식·성찬·십일조 등이 이미 나왔으며, 이번에 나온 ‘순례’에 이어 ‘절기’ 편만을 남겨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