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선교교회 이은종 담임목사
(Photo : 기독일보) 한인선교교회 이은종 담임목사

모든 건축물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모든 예술품도, 그냥 생겨난 것이 아니다. 좋은 옷도 그렇다. 좋은 옷은 훌륭한 디자이너가 만든 것이며 건축물도 건축가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위대한 예술품뒤에도 그 작품을 잉태하고 출산한 예술가가 있게 마련이다. 건축가나 예술가나 디자이너는 심심해서..혹은 우연히, 옷을 만들거나, 빌딩을 짖거나, 예술품을 만들지 않는다. 분명한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자신의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다. 우리의 삶은 운명의 결과이거나, 우연의 열매가 아니다. 우리의 삶은 치밀하고도 정교한, 하나님의 마스터 플랜의 결과이다. 내가 노력하고 내가 준비하고,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 삶이 아니다. 악과 선, 행과 불행, 좋은 일과 나쁜일을 포함한 모든 일은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분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역사를 히스토리(history)라고 말한다. 인생이란, 그분의 이야기이고 신앙이란, 그분이 하신 일들을 인정하는 것이다.

나치수용소에 오랜시간 동안 갇혀 지내던 코리 텐 붐(Corre Ten Boom)여사는 고난중에도 중심을 잃지 않는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하고 있다. "만일 이 세상을 보면 우리는 절망할 것이다. 만일 우리의 내부를 들여다 보면 낙담할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안식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각이, 문제라는 말이다.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결과의 차이가 엄청나게 다르다는 것이다.

나무를 보라. 뿌리깊은 나무는 태풍이 불면, 더 깊이 뿌리를 뻗어 내린다고 한다. 그러나 뿌리가 얕은 나무는, 미풍에도 그냥 뽑혀지는 것이다. 동일한 고난이 있어도, 고난이 소스가 되어 신앙의 뿌리를 더 깊이 내리는 사람이 있고 고난을 핑계로, 뿌리채 뽑히는 사람도 있다. 우리주변에는 고난때문에, 믿음이 엄청 자란 사람들의 이야기로 충만하다.

반면에, 고난때문에, 믿음을 잃거나,주님을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로도 충만하다. 성경은 우리에게, 항상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다. 성경은 우리에게, 만사형통을 약속하고 있지 않다. 다만 항상 기뻐하며, 범사에 감사하라고 권고하고 있으며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다. 비가 오면 불신자들이나 신자들이나, 똑같이 그 비를 피할수 없듯이 모든 문제와 형벌같은 고난과, 허리가 꺽이는 듯한 시련도 성도라고 예외가 될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다만 성도에게는, 고난을 이겨내는 비밀병기를 주셨다. 그것은 시각을 바꾸는 것이다. 인격을 가꾸어(성화) 가는 것이다.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은 종종 우리를 말도 안되는 극렬한 풀무가운데로 인도하신다. 세속적인 시각에서, 신령한 시각으로 불신의 시각에서, 믿음의시각으로 부정적인 시각에서, 긍정적인 시각으로 강팍한 사람이, 온유한 사람으로 복잡한 사람이, 단순한 사람으로 세속적인 사람이, 신령한 사람으로 인본적인 사람이, 신본적인 사람으로 계산적인 사람이, 믿음의 사람으로 냉정한 인생이, 사랑의 원자탄으로 교만한 사람이, 겸손한 사람으로 거짓된 사람이, 정직한 사람으로 이기적이던 사람이, 남의 필요를 아는 사람으로 내 중심에서, 주님 중심으로 오만하던 사람이, 남의 발을 씻기는 사람으로 녹아지고 변화되게 하시기 위해서 말이다.

하나님은 필요하시다면, 얼마든지 우리의 태산같은 문제들을, 지금이라도 당장 해결하실수 있으신, 전능자이시다. 하나님은 실제로, 다니엘을 사자굴에서도 지켜주셨고 홍해속에도 길을 만들어 건너게 하시며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이고, 열두 광주리를 남기셨다. 지금도 필요하시다면, 마른 하늘에서 비내리게 하시며 쪼개진 반석에서 샘물나게도 하시며, 백세에도 아들 낳게 하시며 없는 가운데 있게 하시며, 불가능도 가능케 하시며 필요하시다면, 죽은 사람도 살려내신다.

그러나 성경에 이면을 보면, 하나님은 침묵하시며 가만히 계실때도 있다. 얼마든지 구해 내실수 있고, 건져 내실수 있고, 해결하실수 있는데 말이다. 요셉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힐때, 하나님은 가만히 계셨고 스데반이 돌에 맞아, 피투성이될때도 구해주지 않으셨고 모세가 미디안에, 40년동안 있을때도 모른척하셨고 욥이 극심한 고난 당할때, 외면하셨다. (그러나 사실은 다 보시고, 알고 계심)

뿐만아니라 지금도 수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극심한 고난중에서 부르짖으나, 건져주시지 않으실때가 있다. 그때 성도들은 혼란에 빠지며, 깊은 갈등의 날들을 보낸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성도들에게 다가오는, 고난과 시험들을 막아주실수 있으며 피하게 하실수 있으며, 폭풍같이 질주하여 다가오는 자동차의 위험과, 불사고나 물사고..등, 무수한 재난으로부터, 얼마든지 막아주실수 있으시다.

그러나, 그런 나쁜 일들(저주같아보이는)이, 일어나는 것은, 우리가 당하는 모든 일들속에는 하나님의 허락하심과 목적이 있기때문이다. 하나님의 허락없이는,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질수 없다. 하나님의 결재아래 사단이, 풍랑도 일으키며, 폭풍도 불게 하는 것이다. 왜? 사랑의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녀들의 삶속에, 고통스런 문제들을 허락하시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분명한 목적때문이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로 집약된다. 하나는, 어떤 경우에도 '주만 바라보게 함'이다. 다른 하나는, '인격의 성숙(성화)'때문이다. 야곱은, 잡초같은 인생이었다. 하나님은 야곱을 변화시키기로 작정하시고,그를 풀무같은 고난속에 집어 넣으셨다. 아! 그러나, 인격이 변화되는 것이 어디쉬운 일인가? 어디 하루 아침에 되어지는 일인가? 너무도 변하지 않는 야곱의 인격은 신령한 체험으로도 수 많은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으로도 요동치 않았다. 결국 하나님은, 야곱의 허리를 꺽으시고, 야곱과 씨름하여 야곱의 항복을 받아냈다.

자아파쇄는 나의 결심과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하나님에 의하여 꺽여지는 것이다. 인생의 황혼에 이르러 야곱이 애굽으로 돌아가기 전 야곱은 억센 잡초가 아니라, 고운 화초로 변해 있었다. 변화에는 많은 시간과, 처절한 인내가 필요하다. 이러므로 잡초같은 우리들은, 하나님이 운영하시는 제련소에 들어가,오랜시간을 달구어져야 한다. 다른 길이 없다. 그래야, 하나님을 닮은 형상으로 회복이 가능하다. 하나님은 한번 작정하신 일들을 멈추시지 않으신다. 풀무로 안되면, 그 다음에는 용광로에 넣으신다. 용광로에서도 안 변하면, 그 다음에는 상상에 맡긴다. 출애굽(구원)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만, 성화(성숙)는 40년이 걸린, 이스라엘 백성들을 주목하라. 이러므로 하나님의 거룩한 목적이 이루어짐에 있어서 오히려, 방해나 지연시키는 요소들을 제공치 말아야 한다. 이러므로 형벌같은 고난과, 허리가 꺽이는 시련속에, 우리의 기도의 제목을 바꾸어야 한다.

'주여, 해결해 주세요!' '피할 길을 주세요!'가 아니라, '주여! 내적인 변화와 인격의 성숙을 주옵소서!'라고,기도해야 한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기도가 될것이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고난을 피하면,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게 된다. 요나를 보라. 피해서, 될일이 아니다. 미루어서, 될일도 아니다. 오히려 고난을 우회하지 말고, 정면돌파하여 지치게 하라. 끓어 앉고 품으라. 속히 깨어지라. 그러면, 잡초는 변하기 시작한다. 내가 변하면.. 환경도 변하고, 하나님도 변하시기 시작한다. 실수 같아보이는 하나님의 일, 허비같아 보이는 지금의 시간들, 낭비같아 보이는 훈련의 시간들, 형벌같아 보이는 지독한 고난들, 허리가 휘청이며, 망할듯 하고 숨막히는 연단의 과정들 속에도, 하나님의 마스터 플랜은 있고, 거룩한 목적이 있으며, 그 속에도 하나님은 공평하시며,언제나 선하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당신의 오늘은, 영광의 날이 될 수 있다.

뿐만아니라, 이후의 영광은 더할 것이다. 오늘도 하나님의 시선은, 잡초같은 나를 주목하고 계시다. 그리고, 하나님은 잡초같은 야곱을, 화초같은 요셉으로 변화시키려는 작전을 내 안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의 분량으로 성장하기까지.... 왜냐하면, 나의 이야기는, 그분의 이야기(history)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