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싸매는 힐링이 내 사역의 포인트
지난 10월 사우스베이 대표적 한인교회인 토랜스제일장로교회 인터림 목회자로 이종민 목사가 부임했다. 이필재 목사가 떠난 뒤 두 번의 내홍을 겪었던 탓에 쉽사리 회복되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이는 이 교회에, 그가 부임한 지 이제 넉 달째로 접어들었다. 올해로 그의 나이 71세. 40년간 이민목회를 해온 선배의 눈에 비친 토랜스제일장로교회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제 어느 정도 안정화 궤도에 올랐다는 것. 교회를 찾아온 기자에게 건물 구석구석을 소개하면서 “이 교회도 하나님이 좋은 목회자 주실 거라 믿는다. 그럼 난, 아프리카로 선교 갈테야”라고 말하는 그의 얼굴엔 하루라도 빨리 교회가 예전 형상과 영광을 회복하길 염원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우선 그의 이력부터 살펴보자. 77년 시카고 나일스에 위치한 레익뷰한인장로교회를 개척해 31년간 시무하며 시카고의 가장 대표적인 교회로 성장시킨 그는, 2세 교회를 3곳이나 개척해 내보냈다. 그리고 나일스한국학교를 설립해 수많은 한인 2세를 키워냈다. 그러다 65세가 되던 지난 2008년 1월 돌연 담임직을 내려놓고 은퇴했다. 정년이 다 됐다는 이유였다. 그가 속한 PCUSA 교단법 상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더 목회할 수 있지만, 자신이 만들어 놓은 모든 것을 깨끗이 정리해 교회에 넘겨 주었다.
은퇴 당시 그는 “담임목회직이 공석된 교회에서 설교하면서 후임 청빙을 준비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인터림 목회자로 타지역에서 하나님의 종으로 사역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텍사스 어스틴한인교회 인터림 목회자로 1년, 2009년 7월부터 페오리아장로교회에서 3개월, 이어 미네소타참빛교회에서 6개월간 잇달아 인터림으로 시무했다. 그러다 지난해 8월 중순 교회 정상화를 위해 도와달라는 토랜스제일장로교회 청빙위원회의 요청을 받고 LA로 왔다. 오는 2013년 9월 말까지 1년간의 계약을 맺고서다. 부임 당시 한미노회 목회위원회에서 파송된 이귀호 장로가 당회장 역할을 감당해 오다 11월부터 한미노회 행정전권위원회(AC, Administrative Commission)로부터 당회장직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고 지금은 행정까지 병행하고 있다.
통상 ‘인터림(Interim)’이라고 하면 단어 그대로 ‘임시’ 역할이기에 자칫 ‘땜빵’에 지나지 않을거라는 시각도 있을 터. 하지만 이에 대해 그는 “교단 내 정식 인터림 목회제도가 있다”면서 “원칙적으로 ‘인터림 스페셜 트레이닝’을 받은 자에 한해서만 가능한 역할이 바로 인터림”이라고 설명한다. 현재 PCUSA 산하 9개 교단 신학교에서 2주 과정의 집중적인 훈련 코스를 제공하고 있다.
40년이 넘도록, 그것도 한 교회에서만 31년간 이민목회를 해온 베테랑에게 ‘더 이상 무슨 트레이닝이 필요하냐’ 싶다. 실제로 인터림으로 첫 부임한 텍사스 어스틴한인장로교회에서도 자격증 따위 묻지도 않고 받아줬었다. 하지만 해보니 ‘아무래도 받아야겠다’면서 필요성을 절감한 뒤 자진해 프린스톤신학대에 가서 교육을 받고 왔다. 3년 전의 일이다.
그에 따르면, 인터림 목회자에게 필요한 ‘역할’이 따로 있다. 일반 목회의 경우 설교와 양육, 심방, 행정 등이 주된 사역 내용이라면, 인터림 목회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역은 회복과 치유, 그리고 안정이다. 설교는 어떤 식으로 전해야 하는지, 회복은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하루 7-8시간씩 맹훈련을 거친다.
교회 정상화를 위해 인터림 목회자로서 그가 할 수 있는 건 크게 다음의 세 가지란다. 첫째는 기도요,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케리그마)이요, 셋째는 심방 곧 상담이다. 선포하는 메시지의 핵심은 ‘힐링’이다. 상처받은 교인들의 마음이 회복되지 않고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 치유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을 치유해 새 생명을 얻게 한다는,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관통하는 힐링 메시지를 전하는데 포커스를 둔다.
또한 기도에 대해서는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목회자에겐 성령의 은사 가운데 특히 영 분별의 은사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캐논)의 잣대에 비춰 기도를 통해 영 분별을 하고 말씀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강에서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가는 거죠.”
상담 분야에 있어선 오하이오 정신병원에서 1년간 임상 전공 과정을 거쳤으니, 가히 전문가 수준이다. 그는 이때 배운 경험을 살려 시카고에서 많은 한인 동포들을 상담하면서 그들과 아픔을 나누고 상처를 보듬어왔다. “목회자는 영적 리더이자 카운셀러입니다. 기도하면서 힐링하는 상담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죠.”
현재 토랜스제일장로교회에서의 인터림 기간 동안은 원하는 교인에 한해 심방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코이노니아(교제)에 대해서도 “예배 끝나면 바로 집으로 돌아가는게 아니라, 성도들이 한 자리에 모여 서로 대화 나누고 식사하면서 교제하는 게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지난해 10월 1일 부임하자마자 매일 새벽기도부터 시작해 수요예배, 금요 성경공부, 주일설교 1,2,3부, 경조사 예배까지 일주일에 적어도 10여 차례 설교를 소화해내며 쉴새없이 달려왔다.
“매달 첫째 주 토요일이면 목회자 미팅을 갖는다. 지난 석 달간을 되돌아보며 느낀 것은 안정이 돼가면서 회복단계에 이르렀구나 하는 겁니다. 지난 특별새벽기도 기간 중엔 매일 70~100여명의 교인들이 참석해 열심으로 기도했었죠. 이 기간 중 ‘배에서 생수가 흘러나리라’는 주제를 놓고 교인들과 함께 초대교회 성령의 역사에 대해 묵상했습니다. 말씀에 은혜받는 이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또 아침 일찍 교회에 와서 식사 준비하는 권사님들을 비롯해 뜨겁게 기도하는 교인들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이지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부임 당시만 해도 지난 5월 나눠진 이래 토랜스제일장로교회에 남아있는 1세 교인수는 고작 300명 정도였다. 그러다 차차 안정화되면서 지금은 1세와 2세, 3세 출석교인을 합하면 무려 9백여명에 이르니 상당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이제 임직자 공천을 마무리짓고 새 당회 출발을 남겨두고 있다. 이어 후임 목회자 청빙위원회를 조직해 본격적으로 청빙을 시작한다는 로드맵이다. 아울러 현재 진행중인 힐링 사역이 무르익게 되면, 금년 중반기 즈음엔 교회가 상당한 회복단계에 이를 것이라고 그는 내다봤다.
후임 목회자에 대해선 “앞서 말씀드린 대로 정말 하나님이 택하신 좋은 목회자, 예수님을 꼭 닮은 분이 오셨으면 한다”고 말한다. “목회자는 자고로 ‘빌립보서 2장 5-11절’ 이것만 하면 됩니다. 그럼 뒷일은 하나님이 다 책임져 주시고, 결국 그를 높이십니다. 거기까지 희생할 목회자가 오면 되요. 가만히 보면 희생 안 할려고 하니까 문제가 생기더라구요.”
교회가 겪은 두 번의 내홍으로 분가해 나간 주님세운교회와 샬롬교회와의 관계에 대해선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 자매이니 ‘큰 집’ ‘작은 집’이라 생각하고 서로 아름답고 화목한 역사를 이어갔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 땅의 모든 교회는 다 하나님 안에서 한 형제 자매죠. 어디서 만나도 서로 ‘허깅’하고 손잡고 그래야죠. 다들 어려운 시기를 거쳤는데…. 서로 사랑으로 하나 됨으로 예수 안 믿는 이들에게 말씀을 전하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교회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주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럴 때 많은 이들이 말씀으로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인터뷰 말미에서 그는 의료선교에 대한 비전에 대해서도 내비췄다. 의사인 막내 딸과 남편이 펜실베니아 소재 의료선교단체 ‘큐어’를 통해 에티오피아 등지에 나가 3년간 봉사하고 돌아왔는데, 이런 딸을 둔 덕에 아프리카가 그리 멀지않게 느껴진단다. 틈틈히 “아프리카 선교 구제헌금을 모아왔다”는 그를 보면서, 언젠가 아프리카로 훌쩍 떠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물론 지금 그에게 맡겨진 ‘교회 안정화’와 ‘후임 목회자 청빙’이라는 숙제를 마치고 나면 말이다.
▣ 이종민 목사는 누구?
초등학교 5학년이던 1953년 부흥회를 통해 예수님을 처음으로 체험한 뒤 미국장로교 남선교부가 세운 전주 신흥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함석헌 선생의 제자로 평양숭실학교 교사를 역임한 김창식 국어선생을 만나 성경공부와 함께 제자훈련 및 농촌 계몽운동을 위해 조직한’참흙 클럽’에 가입하면서 목회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후 한국신학대학에서 신학(B.Th.)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기독교윤리학으로 석사(Th.M.)를 마쳤으며, 1966년 철원 오성산 인근 개척교회에서 전도사로 처음 목회를 시작했다. 68년 이세은 사모와 결혼에 이어 71년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이어 일본 동경신학교에서 1년간 수학하다 오하이오의 와인브레너신학대학(Winebrenner Theological Seminary)로 유학해 목회학 석사(M.Div.)를 마쳤다. 이후 맥코믹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D.Min.) 학위를 받았다. 1977년 시카고 레익뷰한인장로교회를 개척했으며 모교인 맥코믹에서 객원교수로 가르쳤다. 소속 교단인 미국장로교(PCUSA)의 한인교회협의체인 NKPC에서 제36대 총회장을 역임했다.
지난 10월 사우스베이 대표적 한인교회인 토랜스제일장로교회 인터림 목회자로 이종민 목사가 부임했다. 이필재 목사가 떠난 뒤 두 번의 내홍을 겪었던 탓에 쉽사리 회복되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이는 이 교회에, 그가 부임한 지 이제 넉 달째로 접어들었다. 올해로 그의 나이 71세. 40년간 이민목회를 해온 선배의 눈에 비친 토랜스제일장로교회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제 어느 정도 안정화 궤도에 올랐다는 것. 교회를 찾아온 기자에게 건물 구석구석을 소개하면서 “이 교회도 하나님이 좋은 목회자 주실 거라 믿는다. 그럼 난, 아프리카로 선교 갈테야”라고 말하는 그의 얼굴엔 하루라도 빨리 교회가 예전 형상과 영광을 회복하길 염원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우선 그의 이력부터 살펴보자. 77년 시카고 나일스에 위치한 레익뷰한인장로교회를 개척해 31년간 시무하며 시카고의 가장 대표적인 교회로 성장시킨 그는, 2세 교회를 3곳이나 개척해 내보냈다. 그리고 나일스한국학교를 설립해 수많은 한인 2세를 키워냈다. 그러다 65세가 되던 지난 2008년 1월 돌연 담임직을 내려놓고 은퇴했다. 정년이 다 됐다는 이유였다. 그가 속한 PCUSA 교단법 상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더 목회할 수 있지만, 자신이 만들어 놓은 모든 것을 깨끗이 정리해 교회에 넘겨 주었다.
은퇴 당시 그는 “담임목회직이 공석된 교회에서 설교하면서 후임 청빙을 준비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인터림 목회자로 타지역에서 하나님의 종으로 사역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텍사스 어스틴한인교회 인터림 목회자로 1년, 2009년 7월부터 페오리아장로교회에서 3개월, 이어 미네소타참빛교회에서 6개월간 잇달아 인터림으로 시무했다. 그러다 지난해 8월 중순 교회 정상화를 위해 도와달라는 토랜스제일장로교회 청빙위원회의 요청을 받고 LA로 왔다. 오는 2013년 9월 말까지 1년간의 계약을 맺고서다. 부임 당시 한미노회 목회위원회에서 파송된 이귀호 장로가 당회장 역할을 감당해 오다 11월부터 한미노회 행정전권위원회(AC, Administrative Commission)로부터 당회장직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고 지금은 행정까지 병행하고 있다.
통상 ‘인터림(Interim)’이라고 하면 단어 그대로 ‘임시’ 역할이기에 자칫 ‘땜빵’에 지나지 않을거라는 시각도 있을 터. 하지만 이에 대해 그는 “교단 내 정식 인터림 목회제도가 있다”면서 “원칙적으로 ‘인터림 스페셜 트레이닝’을 받은 자에 한해서만 가능한 역할이 바로 인터림”이라고 설명한다. 현재 PCUSA 산하 9개 교단 신학교에서 2주 과정의 집중적인 훈련 코스를 제공하고 있다.
40년이 넘도록, 그것도 한 교회에서만 31년간 이민목회를 해온 베테랑에게 ‘더 이상 무슨 트레이닝이 필요하냐’ 싶다. 실제로 인터림으로 첫 부임한 텍사스 어스틴한인장로교회에서도 자격증 따위 묻지도 않고 받아줬었다. 하지만 해보니 ‘아무래도 받아야겠다’면서 필요성을 절감한 뒤 자진해 프린스톤신학대에 가서 교육을 받고 왔다. 3년 전의 일이다.
그에 따르면, 인터림 목회자에게 필요한 ‘역할’이 따로 있다. 일반 목회의 경우 설교와 양육, 심방, 행정 등이 주된 사역 내용이라면, 인터림 목회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역은 회복과 치유, 그리고 안정이다. 설교는 어떤 식으로 전해야 하는지, 회복은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하루 7-8시간씩 맹훈련을 거친다.
교회 정상화를 위해 인터림 목회자로서 그가 할 수 있는 건 크게 다음의 세 가지란다. 첫째는 기도요,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케리그마)이요, 셋째는 심방 곧 상담이다. 선포하는 메시지의 핵심은 ‘힐링’이다. 상처받은 교인들의 마음이 회복되지 않고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 치유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을 치유해 새 생명을 얻게 한다는,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관통하는 힐링 메시지를 전하는데 포커스를 둔다.
또한 기도에 대해서는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목회자에겐 성령의 은사 가운데 특히 영 분별의 은사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캐논)의 잣대에 비춰 기도를 통해 영 분별을 하고 말씀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강에서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가는 거죠.”
상담 분야에 있어선 오하이오 정신병원에서 1년간 임상 전공 과정을 거쳤으니, 가히 전문가 수준이다. 그는 이때 배운 경험을 살려 시카고에서 많은 한인 동포들을 상담하면서 그들과 아픔을 나누고 상처를 보듬어왔다. “목회자는 영적 리더이자 카운셀러입니다. 기도하면서 힐링하는 상담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죠.”
현재 토랜스제일장로교회에서의 인터림 기간 동안은 원하는 교인에 한해 심방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코이노니아(교제)에 대해서도 “예배 끝나면 바로 집으로 돌아가는게 아니라, 성도들이 한 자리에 모여 서로 대화 나누고 식사하면서 교제하는 게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지난해 10월 1일 부임하자마자 매일 새벽기도부터 시작해 수요예배, 금요 성경공부, 주일설교 1,2,3부, 경조사 예배까지 일주일에 적어도 10여 차례 설교를 소화해내며 쉴새없이 달려왔다.
“매달 첫째 주 토요일이면 목회자 미팅을 갖는다. 지난 석 달간을 되돌아보며 느낀 것은 안정이 돼가면서 회복단계에 이르렀구나 하는 겁니다. 지난 특별새벽기도 기간 중엔 매일 70~100여명의 교인들이 참석해 열심으로 기도했었죠. 이 기간 중 ‘배에서 생수가 흘러나리라’는 주제를 놓고 교인들과 함께 초대교회 성령의 역사에 대해 묵상했습니다. 말씀에 은혜받는 이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또 아침 일찍 교회에 와서 식사 준비하는 권사님들을 비롯해 뜨겁게 기도하는 교인들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이지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부임 당시만 해도 지난 5월 나눠진 이래 토랜스제일장로교회에 남아있는 1세 교인수는 고작 300명 정도였다. 그러다 차차 안정화되면서 지금은 1세와 2세, 3세 출석교인을 합하면 무려 9백여명에 이르니 상당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이제 임직자 공천을 마무리짓고 새 당회 출발을 남겨두고 있다. 이어 후임 목회자 청빙위원회를 조직해 본격적으로 청빙을 시작한다는 로드맵이다. 아울러 현재 진행중인 힐링 사역이 무르익게 되면, 금년 중반기 즈음엔 교회가 상당한 회복단계에 이를 것이라고 그는 내다봤다.
후임 목회자에 대해선 “앞서 말씀드린 대로 정말 하나님이 택하신 좋은 목회자, 예수님을 꼭 닮은 분이 오셨으면 한다”고 말한다. “목회자는 자고로 ‘빌립보서 2장 5-11절’ 이것만 하면 됩니다. 그럼 뒷일은 하나님이 다 책임져 주시고, 결국 그를 높이십니다. 거기까지 희생할 목회자가 오면 되요. 가만히 보면 희생 안 할려고 하니까 문제가 생기더라구요.”
교회가 겪은 두 번의 내홍으로 분가해 나간 주님세운교회와 샬롬교회와의 관계에 대해선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 자매이니 ‘큰 집’ ‘작은 집’이라 생각하고 서로 아름답고 화목한 역사를 이어갔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 땅의 모든 교회는 다 하나님 안에서 한 형제 자매죠. 어디서 만나도 서로 ‘허깅’하고 손잡고 그래야죠. 다들 어려운 시기를 거쳤는데…. 서로 사랑으로 하나 됨으로 예수 안 믿는 이들에게 말씀을 전하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교회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주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럴 때 많은 이들이 말씀으로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인터뷰 말미에서 그는 의료선교에 대한 비전에 대해서도 내비췄다. 의사인 막내 딸과 남편이 펜실베니아 소재 의료선교단체 ‘큐어’를 통해 에티오피아 등지에 나가 3년간 봉사하고 돌아왔는데, 이런 딸을 둔 덕에 아프리카가 그리 멀지않게 느껴진단다. 틈틈히 “아프리카 선교 구제헌금을 모아왔다”는 그를 보면서, 언젠가 아프리카로 훌쩍 떠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물론 지금 그에게 맡겨진 ‘교회 안정화’와 ‘후임 목회자 청빙’이라는 숙제를 마치고 나면 말이다.
▣ 이종민 목사는 누구?
초등학교 5학년이던 1953년 부흥회를 통해 예수님을 처음으로 체험한 뒤 미국장로교 남선교부가 세운 전주 신흥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함석헌 선생의 제자로 평양숭실학교 교사를 역임한 김창식 국어선생을 만나 성경공부와 함께 제자훈련 및 농촌 계몽운동을 위해 조직한’참흙 클럽’에 가입하면서 목회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후 한국신학대학에서 신학(B.Th.)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기독교윤리학으로 석사(Th.M.)를 마쳤으며, 1966년 철원 오성산 인근 개척교회에서 전도사로 처음 목회를 시작했다. 68년 이세은 사모와 결혼에 이어 71년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이어 일본 동경신학교에서 1년간 수학하다 오하이오의 와인브레너신학대학(Winebrenner Theological Seminary)로 유학해 목회학 석사(M.Div.)를 마쳤다. 이후 맥코믹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D.Min.) 학위를 받았다. 1977년 시카고 레익뷰한인장로교회를 개척했으며 모교인 맥코믹에서 객원교수로 가르쳤다. 소속 교단인 미국장로교(PCUSA)의 한인교회협의체인 NKPC에서 제36대 총회장을 역임했다.
© 2020 Christianitydaily.com All rights reserved. Do not reproduce without permi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