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시다가 태어날 때부터 소경된 한 거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저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누구의 죄 때문인가요? 부모의 죄 때문인가요? 아니면, 자기의 죄 때문인가요?”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소경이 된 것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단지 그를 통해서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계획이 있기 때문이다.”

그가 소경이 된 것은 하나님의 무능이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서 이루고자 하시는 의도된 목적과 계획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과연 그 소경을 통해 무엇을 하시고자 했던 것일까요?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고귀한 한 사람의 운명을 소경으로 만들면서까지 하나님이 당신의 계획을 준비하신다는 사실이 너무 가혹하고 비정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의문은 저에게 하나님의 신정론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게 했습니다.

매일 아침 막내 아들을 차에 태워 학교에 바래다 줄 때, 학교에서 어김없이 만나는 아주 작은 키의 백인 아가씨가 있습니다. 단번에 다운증후군을 가진 자매라는 것을 그녀의 얼굴을 통해 간파할 수 있습니다.

매일 아침 우리가 탄 차는 마치 습관처럼 , 빨간 신호등 앞에서 그녀를 만납니다. 비록 왜소한 체구이지만 가방을 들고 당차게 교차로를 건너오는 그녀의 씩씩한 모습은 지금 막 전쟁에서 돌아온 개선장군을 연상시킵니다.

만성 피로에 찌든 저는 그 아가씨를 보면서 비로소 “활기찬 아침”이 시작되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빨간불에 서서 그 당찬 아가씨가 행진해 오는 모습을 창 밖으로 내다보던 아들놈이 저에게 한마디 던집니다. “아빠 , 저 사람 참 훌륭하지 않아요?”
게으름 쪽으로는 하버드대학교 수석 입학감인 아들 녀석의 눈에 훌륭하게 비쳤다면, 그 사람은 정말 훌륭한 사람이 맞습니다.

“아빠는 저 아가씨를 보면 항상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도전을 받는다!”저의 답변에 놈이 맞장구를 칩니다. “나도!”

성실함이 묻어나는 빈틈없는 그녀의 강렬한 포스는 어리버리한 우리 두 부자를 항상 압도했습니다.

가끔, 왜 주님이 저렇게 멋진 아가씨에게 치명적인 장애를 주셨는지 의문을 던져 본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 , 무슨 정치를 그 따위로 하십니까?” 하지만 , 평범한 일상 속에서 매일 그녀와 조우하다 보니, 어느 날 문득, 주님이 그녀를 우리의 곁에 두신 것은 우리에게 큰 축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상의 생활이 주는 무력감과 권태로움 속에서 모든 것을 당연하게만 받아들이는 우리들의 메마른 영혼을 깨우려는 주님의 특별한 배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그녀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이 땅에 파송하신 ‘영혼의 선교사’입니다. 그녀같은 사람들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부족함과 교만함을 바로 잡게 됩니다.

장애를 안고도 꿋꿋하게 살아가시는 분들을 보면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그분들을 지켜드려야 합니다. 겨울의 문턱에서 그분들을 통해 삶의 작은 지혜를 깨닫게 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