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한인타운에서 북동쪽으로 약 20분 거리에 위치해 있는 나성언약교회. 미국교단인 복음언약교단에 소속해 있는 이 교회는, 올해로 벌써 창립 47년을 맞았으니 제법 나이가 많다. 정확히 말하자면 1965년 9월 19일 제1대 김학철 목사에 의해 세워졌고, 현재는 이순환 목사가 제4대 담임으로 부임해 3년째 시무하고 있다.

그런데 이 교회, 반세기 가까운 역사 치고는 성도 수가 그리 많지 않다. 아이들까지 합해 70여명이니. 이 땅에 이민자의 교회로 살아남기까지 그간 왜 어려움이 없었겠냐마는, 50여년 된 교회라고 하기엔 딱 봐도 사연이 있어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3대 목사가 이단적 신학 사상에 심취해 있던 탓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었다고. 10개월의 짧은 재임 기간이었지만 당시 목회자와 교인간 마찰은 피할 수 없었고, 급기야 교인과 교인간의 다툼으로까지 번졌다. 결국 그 사이에서 상처를 받은 대다수 교인들이 교회를 떠난 것. 어찌 됐건, 당사자 목회자는 교단으로부터 제명되기에 이르렀고, 교회가 거의 초토화 지경에 이르렀음은 불 보듯 뻔하다.

이러한 시련 가운데서도 억척같이 살아남은 성도들의 심정은 오죽할까. 제로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후임자 이순환 목사의 부담도 만만치 않았을 터. 여기서 먼저 이 목사의 약력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이렇다. 91년 한국서 장로회신학대학원 M.Div. 과정을 졸업했고, 93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 목회 연수는 신학생 시절 전도사 때부터 따지자면 딱 26년이고, 7년 전 도미 후 LA 한인타운에서 한 차례 교회를 개척한 바 있다.

“처음에 여기(나성언약교회) 왔을 때가 기억나요. 교회 건물은 반듯한데 저희 식구들 4명을 합해 예배 드리는 성도가 22명이 전부였어요. 비록 역사는 오래 됐지만, 처음 개척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다행인 것은, 건물을 소유하고 있어서 어렵게 모아진 헌금을 렌트비로 내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위해 전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는 거죠.”

성도 수로 보면 개척하는 것이나 진배없지만, 외형적인 면에 있어선 큰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니 그만큼 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었다. 이 목사 부임 후 이제 3년. 성도 수는 70여명으로 늘었으니, 예전의 상처가 아물고 안정을 찾은 셈이다. 철저히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그가 내건 슬로건이었다. 부임하자마자 말씀사경회를 밥 먹듯 했다. “그저 성경 읽으면서 은혜 받는거죠.” 교인 한 명 한 명의 가슴 속에 패인 상처가 말씀으로 치유되기 시작해 교제가 넘치기 시작했고, 이젠 교회 문턱을 넘어 주변 이웃에까지 사랑이 전해지는 일만 남았다.

“전 목회할 때, 목사와 성도 간에 코드가 맞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제가 추구하는 목회의 핵심은 ‘말씀 중심’인데, 그래서인지 저희 교회 성도들 대부분이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이 남달라요. 신앙을 개인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기보다,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말씀대로 살아가려는 성도들이 있으니 행복하죠.”

그가 목사가 된 건, 어머니의 영향이 크다. 신앙심이 깊었던 어머니는 아들을 보면 늘 “순환아, 넌 크면 꼭 목사가 돼야 한단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임신했을 때부터 태어나면 아이를 평생 주의 종으로 살도록 하겠노라고 서원기도를 드렸다. 위로 줄줄이 누나들 사이에서 막내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목사가 되는 게 당연한 줄로 생각했다. 워낙에 내성적인 성격 탓에 초등학생 시절 선생님이 뭐 하나 물어보면 부끄러워서 말도 제대로 못하는 수줍음이 많은 아이었다. 그런 그를 볼 때마다 어머니는 “쯧쯧쯧, 저래 가지고 커서 목사 되면 말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런지” 하며 걱정을 달고 사셨다.

하지만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모친의 기도가 하늘에 상달됐는지 결국 그는 신대원에 진학했고 소원대로 목사가 됐다. 이후에도 어머니는 97년 하늘나라로 가시기 전까지 줄곧 그의 든든한 영적 후원자가 돼 주셨다. “살아계실 땐 미처 몰랐는데… 떠나시고 나니까 빈 자리가 너무도 크게 다가오더라구요. 기도로 후원해 주시는 어머니가 있다는 건 목회자에게 있어서 엄청난 재산이죠.”

“사실 제가 성격이 이래서 목회를 못할 사람인데…. 어머니가 목숨 걸고 기도하셨던 모양이에요. 지금도 굉장히 내성적인데, 설교할 때만큼은 담대해져요. 성령께서 은혜를 주시는 거라고 생각해요. 제 아내는, 농담 삼아 저더러 ‘강단용’이라고 말해요. 평상시엔 수줍음을 타서 사람들 만나 얘기도 잘 못하는데 강단에서만큼은 웬일인지 담대하거든요(웃음).”

이 목사는 앞으로의 목회 인생을 이곳 나성언약교회에서 마감할 계획이다. “교회를 크게 키우고 싶은 욕심은 없어요. 그저 하나님이 제게 맡겨 주신 양무리 30명이든 50명이든 그들에게 말씀의 꼴을 잘 먹여 그들의 가정이 말씀의 바탕 위에 온전하게 세워지는 게 큰 목표라면 목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