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퍼난도밸리에 위치한 밴나이스연합감리교회가 창립 100주년을 맞아 얼마 전 성대히 기념예배를 드렸다. 이 교회는 1911년 30여명의 감리교 성도들에 의해 설립돼, 1912년 연회로부터 감리교회로 승인받고 C.C. Harzler 목사가 초대 목사로 파송됐다. 백인교회인 이 교회에 한인회중이 들어선 것은 올해로 26년째로 이제는 두 회중이 하나가 됐다.
100년의 전통과 유서를 가진 교회의 담임 오경환 목사는 “지난 100년의 믿음의 역사를 이어가는 성도들이 되었다는 것이 큰 축복”이라며, “앞으로의 100년의 역사가 또 어떻게 변화될지 아무도 모르지만, 하나님의 교회는 계속해서 그 역사를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교회에서 운영하는 주일 한국학교에서는 미국인 교우들이 한글을 배우고 있다. 또 지역사회를 위해 무료음악학교를 개설해 기타, 키보드, 드럼을 가르치고, 재봉학교에서 재봉, 뜨개질, 수선을 가르치면서 봉사에 열심을 내고 있다. 미국인과 한국인을 동시에 목회하고 있는 오경환 목사를 만나 교단과 교회와 관련, 이야기를 들어봤다. 오경환 목사는 감리교신학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서는 클레어몬트신학교에서 M.Div.를 졸업했다. 현재 미국연합감리교회의 정회원 목사로, 교단 안수위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한인연합감리교회의 코커스 회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감리교회라는 이름의 유래는 무엇인가.
요한 웨슬리와 찰스 웨슬리, 옥스퍼드대학교에 다니던 젊은이들이 지적, 영적으로 자신의 신앙을 발전시키고 좀 더 나은 기독교인이 되기 위해 1729년부터 모인 모임이 있었다. 신앙적 책임을 지키는 방식과 행동지침이 매우 조직적이고, 그 방법을 잘 지킨다는 의미에서 ‘Methodist’라고 사람들이 부른 데서 기원한다. 연합감리교회의 ‘연합(United)’이란 단어는 1968년에 감리교회와 복음주의연합형제교회가 합치면서 추가됐다. 최초의 교회는 1766년에 설립됐으므로 역사는 약 246년이 됐다.
-연합감리교회를 소개한다면.
연합감리교회는 우리나라 개신교 최초의 선교사인 아펜젤러 목사를 파송한 교단이다. 아펜젤러 목사는 1885년 조선에 선교사로 입국해서 정동제일교회를 설립하고 내리교회 창립을 주도해 배재학당을 설립했다. 내가 감리교 목사가 될 수 있었던 동기도 어쩌면 배재고등학교를 졸업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 의미에서 연합감리교회는 한국감리교회의 모교단이라고 할 수 있다. 한인연합감리교회는 남가주에 43개의 교회가 있고, 전국적으로 약 300개의 한인교회가 있다. 미국 내 전체 감리교인은 약 80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미국 내 주요 교단 중에 세 번째로 큰 교단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에는 59개의 연회가 있고, 50명의 감독이 있다.
이번에 남가주에 새로 미네르바 칼케뇨 감독이 왔다. 히스패닉계 2세 여성감독이다. 두 번 연속 여성감독을 모시게 됐다. 연합감리교회는 남녀평등이 다른 어떤 교단보다 탁월하다고 생각된다. 여성목회자들이 전체 목회자 1/3이 되고, 점차 그 비율이 증가하고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여성으로 목회자가 되고 싶은 분들은 연합감리교회를 추천하고 싶다. 지금 남가주에서 영어권을 목회하는 한인 목회자들 중 2/3가 여성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
-교회가 창립된지 100년이 됐다. 백인교회와 합병한지는 얼마나 되었는가?
미국의 교회들을 보면 100주년이 넘는 교회가 많다. 동부에 가보면 200년된 교회도 많이 있다. ‘200주년 축하 예배를 드립니다’라는 공고가 뜨기도 한다. 연합감리교 안에 100주년 된 교회가 많다. 순수하게 한인교회로서 100년이 넘은 교회는 LA연합감리교회가 있다. 최초의 한인 연합감리교회인 하와이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는 110년이 넘었을 것이다.
한인교회가 이곳에서 예배를 드린 지는 26년이 됐다. 미국회중과 통합은 2005년에 했다. 이곳 지역 커뮤니티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원래 백인들이 많았는데 히스패닉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백인들이 다른 곳으로 많이 이주했다. 그러면서 교인들이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백인들의 삶의 터전이 변화되면서 커뮤니티 변화가 동시에 일어나게 됐다. 지금은 이 지역 구성원 90%가 히스패닉이다. 26년 전에 온 한인 회중들은 큰 변화 없이 이 교회를 지키고 있다.
백인들 중 나이 드신 분들 20여명과 영어권 20여명이 있다. 매주 출석이 40-45명 정도 된다. 피부색은 다르더라도 같은 연합감리교인이기 때문에 주인의식을 갖고 이 교회를 지켜나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무엇보다 한인 목회자가 담임목사가 되었기 때문에 이 교회의 모든 부분을 한인들이 이끌게 된 것이다. 두 교회가 한 교회가 되면서 밴나이스연합감리교회가 됐다. 연합감리교회에서의 통합은 두 교회가 한 교회가 된다는 의미가 있다. 이것을 One Church Two Congregations가 되었다고 한다. 한 교회에서 두가지 언어로 예배를 드린다는 뜻이다. 교회 주인이 한인이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지금은 한인교회가 모든 행정과 재정을 책임지는 교회가 되었을 뿐이다.
-부임한 지는 얼마나 됐나?
2년 반이 됐다. 그 전에 라팔마연합감리교회에서 담임목회를 했다. 그곳도 합병한 교회였다.
-연합감리교는 담임 목회자를 파송하는 제도인데, 파송은 어떻게 이뤄지나.
감독의 권한으로 파송된다. 연합감리교 목사가 되는 것이 쉽지 않은데, 정회원 목사가 되면 감독의 파송제도에 순종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전에 라팔마연합감리교회에서 11년 있었다. 보통 미국 목회자는 4년에서 7년에 한번씩 옮긴다. 한국 목회자들은 보통 안 옮기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 밴나이스연합감리교회가 가진 특성은 미국교회까지 담임해야 하는 것이다.
-차세대들이 교회를 떠나는 실정이다. 한국교회도 문을 닫고 있는 유럽교회나 미국교회를 닮고 있다는 걱정스런 이야기들이 많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목회자들이 같은 걱정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차세대들이 목회와 신학에 관심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청년사역자를 뽑기가 너무 힘든 실정이다. 청년사역자가 1.5세나 2세라야 하는데, 많은 교회들이 구인을 못해서 굉장히 힘들어한다.
이유를 한마디로 말하면 영성에 대한 관심이 부족해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많은 분들이 교회의 세속화를 걱정하고 있다. 교회 세속화는 설교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본다. 예배 요소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설교다. 설교는 인생의 방향을 제시해 준다. 그러나 영성이 빠진다면 결국 세속화되는 것이다. 세상에 유익한 강연이 돼 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됐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목마름을 해결할 수 없게 된다. 사람들이 교회 나가는 이유는 영적 목마름 때문이다. 강단에서의 메시지가 과연 그 영혼을 충족시켜주었는가? 메시지가 미묘해서 단지 듣기 좋은 메시지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교회를 잘 나가다가 회의를 느끼고 이것이 쌓여져서 교회를 등지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속고 있지 않는지 살펴봐야 한다. 대형교회라 해서 영성이 있는 교회인가. 그것은 아니다. 듣기 좋은 말로 혹은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혹은 자기 만족으로 교회를 다닐 수 있는 것이다. 대형교회를 보면 한 주에 수십명씩 들어오고 수십명씩 빠진다. 익명의 성도들은 중심으로 들어가기가 굉장히 힘들다. 그 교회 토박이들 때문이다. 그들이 열심히 참석도 하고 선교도 하지만 그 교회를 움직이는 것은 5%의 구성원이다. 어디서 온지 모르는 사람에게 절대 기득권을 주지 않는다.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말씀 속에서 영성을 취해 이 땅에서 살도록 할까”라는 물음이다. 어떤 분들은 그런 이야기까지 한다. “더 이상 은사시대는 끝났다. 옛날에나 방언했지. 신유나 성령은사는 다 끝난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지금은 말씀의 시대라고 말한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이해력을 뛰어넘는 것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신앙은 신비스러운 것이고, 보이지 않는 것의 실체를 보는 것인데 성령 은사를 부정한다면 껍데기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성경에 나와 있는 은사,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예언, 방언, 신유의 은사가 각 교회에서 활발하게 일어날 때 교회는 다시 살아나고 부흥할 것이다.
-감리교회 예배 분위기를 말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연합감리교하면 진보적이고 학구적이라고 한다. 연합감리교에서 목사를 세울 때 인정하는 남가주 내의 신학교는 클레어몬트신학교와 풀러신학교다. 그런 학구적 신학의 사조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교단의 근본 뿌리인 요한 웨슬리 목사는 영성운동가였다. 그래서 웨슬리 목사가 설교할 때 많은 사람들이 뒤로 넘어지곤 했다. 강력한 영적 파워가 있었던 분이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인가부터 많은 감리교 목회자들이 학구적인 부분을 강조하는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사조가 한국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미국 신학의 영향이 한국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우리는 웨슬리 목사의 영성적 신앙을 부흥시키고자 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100년의 전통과 유서를 가진 교회의 담임 오경환 목사는 “지난 100년의 믿음의 역사를 이어가는 성도들이 되었다는 것이 큰 축복”이라며, “앞으로의 100년의 역사가 또 어떻게 변화될지 아무도 모르지만, 하나님의 교회는 계속해서 그 역사를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교회에서 운영하는 주일 한국학교에서는 미국인 교우들이 한글을 배우고 있다. 또 지역사회를 위해 무료음악학교를 개설해 기타, 키보드, 드럼을 가르치고, 재봉학교에서 재봉, 뜨개질, 수선을 가르치면서 봉사에 열심을 내고 있다. 미국인과 한국인을 동시에 목회하고 있는 오경환 목사를 만나 교단과 교회와 관련, 이야기를 들어봤다. 오경환 목사는 감리교신학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서는 클레어몬트신학교에서 M.Div.를 졸업했다. 현재 미국연합감리교회의 정회원 목사로, 교단 안수위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한인연합감리교회의 코커스 회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감리교회라는 이름의 유래는 무엇인가.
요한 웨슬리와 찰스 웨슬리, 옥스퍼드대학교에 다니던 젊은이들이 지적, 영적으로 자신의 신앙을 발전시키고 좀 더 나은 기독교인이 되기 위해 1729년부터 모인 모임이 있었다. 신앙적 책임을 지키는 방식과 행동지침이 매우 조직적이고, 그 방법을 잘 지킨다는 의미에서 ‘Methodist’라고 사람들이 부른 데서 기원한다. 연합감리교회의 ‘연합(United)’이란 단어는 1968년에 감리교회와 복음주의연합형제교회가 합치면서 추가됐다. 최초의 교회는 1766년에 설립됐으므로 역사는 약 246년이 됐다.
-연합감리교회를 소개한다면.
연합감리교회는 우리나라 개신교 최초의 선교사인 아펜젤러 목사를 파송한 교단이다. 아펜젤러 목사는 1885년 조선에 선교사로 입국해서 정동제일교회를 설립하고 내리교회 창립을 주도해 배재학당을 설립했다. 내가 감리교 목사가 될 수 있었던 동기도 어쩌면 배재고등학교를 졸업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 의미에서 연합감리교회는 한국감리교회의 모교단이라고 할 수 있다. 한인연합감리교회는 남가주에 43개의 교회가 있고, 전국적으로 약 300개의 한인교회가 있다. 미국 내 전체 감리교인은 약 80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미국 내 주요 교단 중에 세 번째로 큰 교단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에는 59개의 연회가 있고, 50명의 감독이 있다.
이번에 남가주에 새로 미네르바 칼케뇨 감독이 왔다. 히스패닉계 2세 여성감독이다. 두 번 연속 여성감독을 모시게 됐다. 연합감리교회는 남녀평등이 다른 어떤 교단보다 탁월하다고 생각된다. 여성목회자들이 전체 목회자 1/3이 되고, 점차 그 비율이 증가하고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여성으로 목회자가 되고 싶은 분들은 연합감리교회를 추천하고 싶다. 지금 남가주에서 영어권을 목회하는 한인 목회자들 중 2/3가 여성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
-교회가 창립된지 100년이 됐다. 백인교회와 합병한지는 얼마나 되었는가?
미국의 교회들을 보면 100주년이 넘는 교회가 많다. 동부에 가보면 200년된 교회도 많이 있다. ‘200주년 축하 예배를 드립니다’라는 공고가 뜨기도 한다. 연합감리교 안에 100주년 된 교회가 많다. 순수하게 한인교회로서 100년이 넘은 교회는 LA연합감리교회가 있다. 최초의 한인 연합감리교회인 하와이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는 110년이 넘었을 것이다.
한인교회가 이곳에서 예배를 드린 지는 26년이 됐다. 미국회중과 통합은 2005년에 했다. 이곳 지역 커뮤니티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원래 백인들이 많았는데 히스패닉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백인들이 다른 곳으로 많이 이주했다. 그러면서 교인들이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백인들의 삶의 터전이 변화되면서 커뮤니티 변화가 동시에 일어나게 됐다. 지금은 이 지역 구성원 90%가 히스패닉이다. 26년 전에 온 한인 회중들은 큰 변화 없이 이 교회를 지키고 있다.
백인들 중 나이 드신 분들 20여명과 영어권 20여명이 있다. 매주 출석이 40-45명 정도 된다. 피부색은 다르더라도 같은 연합감리교인이기 때문에 주인의식을 갖고 이 교회를 지켜나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무엇보다 한인 목회자가 담임목사가 되었기 때문에 이 교회의 모든 부분을 한인들이 이끌게 된 것이다. 두 교회가 한 교회가 되면서 밴나이스연합감리교회가 됐다. 연합감리교회에서의 통합은 두 교회가 한 교회가 된다는 의미가 있다. 이것을 One Church Two Congregations가 되었다고 한다. 한 교회에서 두가지 언어로 예배를 드린다는 뜻이다. 교회 주인이 한인이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지금은 한인교회가 모든 행정과 재정을 책임지는 교회가 되었을 뿐이다.
-부임한 지는 얼마나 됐나?
2년 반이 됐다. 그 전에 라팔마연합감리교회에서 담임목회를 했다. 그곳도 합병한 교회였다.
-연합감리교는 담임 목회자를 파송하는 제도인데, 파송은 어떻게 이뤄지나.
감독의 권한으로 파송된다. 연합감리교 목사가 되는 것이 쉽지 않은데, 정회원 목사가 되면 감독의 파송제도에 순종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전에 라팔마연합감리교회에서 11년 있었다. 보통 미국 목회자는 4년에서 7년에 한번씩 옮긴다. 한국 목회자들은 보통 안 옮기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 밴나이스연합감리교회가 가진 특성은 미국교회까지 담임해야 하는 것이다.
-차세대들이 교회를 떠나는 실정이다. 한국교회도 문을 닫고 있는 유럽교회나 미국교회를 닮고 있다는 걱정스런 이야기들이 많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목회자들이 같은 걱정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차세대들이 목회와 신학에 관심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청년사역자를 뽑기가 너무 힘든 실정이다. 청년사역자가 1.5세나 2세라야 하는데, 많은 교회들이 구인을 못해서 굉장히 힘들어한다.
이유를 한마디로 말하면 영성에 대한 관심이 부족해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많은 분들이 교회의 세속화를 걱정하고 있다. 교회 세속화는 설교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본다. 예배 요소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설교다. 설교는 인생의 방향을 제시해 준다. 그러나 영성이 빠진다면 결국 세속화되는 것이다. 세상에 유익한 강연이 돼 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됐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목마름을 해결할 수 없게 된다. 사람들이 교회 나가는 이유는 영적 목마름 때문이다. 강단에서의 메시지가 과연 그 영혼을 충족시켜주었는가? 메시지가 미묘해서 단지 듣기 좋은 메시지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교회를 잘 나가다가 회의를 느끼고 이것이 쌓여져서 교회를 등지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속고 있지 않는지 살펴봐야 한다. 대형교회라 해서 영성이 있는 교회인가. 그것은 아니다. 듣기 좋은 말로 혹은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혹은 자기 만족으로 교회를 다닐 수 있는 것이다. 대형교회를 보면 한 주에 수십명씩 들어오고 수십명씩 빠진다. 익명의 성도들은 중심으로 들어가기가 굉장히 힘들다. 그 교회 토박이들 때문이다. 그들이 열심히 참석도 하고 선교도 하지만 그 교회를 움직이는 것은 5%의 구성원이다. 어디서 온지 모르는 사람에게 절대 기득권을 주지 않는다.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말씀 속에서 영성을 취해 이 땅에서 살도록 할까”라는 물음이다. 어떤 분들은 그런 이야기까지 한다. “더 이상 은사시대는 끝났다. 옛날에나 방언했지. 신유나 성령은사는 다 끝난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지금은 말씀의 시대라고 말한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이해력을 뛰어넘는 것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신앙은 신비스러운 것이고, 보이지 않는 것의 실체를 보는 것인데 성령 은사를 부정한다면 껍데기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성경에 나와 있는 은사,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예언, 방언, 신유의 은사가 각 교회에서 활발하게 일어날 때 교회는 다시 살아나고 부흥할 것이다.
-감리교회 예배 분위기를 말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연합감리교하면 진보적이고 학구적이라고 한다. 연합감리교에서 목사를 세울 때 인정하는 남가주 내의 신학교는 클레어몬트신학교와 풀러신학교다. 그런 학구적 신학의 사조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교단의 근본 뿌리인 요한 웨슬리 목사는 영성운동가였다. 그래서 웨슬리 목사가 설교할 때 많은 사람들이 뒤로 넘어지곤 했다. 강력한 영적 파워가 있었던 분이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인가부터 많은 감리교 목회자들이 학구적인 부분을 강조하는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사조가 한국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미국 신학의 영향이 한국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우리는 웨슬리 목사의 영성적 신앙을 부흥시키고자 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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