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현교회 설립자 김창인 원로목사가 2일 새벽 3시 50분 향년 96세로 소천했다. 빈소는 서울 아산병원 25호실에 마련됐으며, 교계인사와 지인 및 제자들의 방문이 이어졌다.

김창인 목사는 1917년 평안북도 의주에서 출생했다.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후 신의주제일교회를 담임했으며, 신사참배에 반대하다가 투옥되기도 했었다. 1948년 남한으로 내려와 1953년 서울 충무로에 충현교회를 개척했다. 1984년 역삼동으로 이전한 충현교회는 폭발적인 부흥을 거듭, 전성기 때는 교인 수가 4만여명에 이르렀다. 특히 충현교회는 김영삼 장로가 대통령이 되면서 더욱 유명해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김 목사는 1987년 은퇴 후 후임목사로 세운 아들과 교회 운영 방향을 놓고 여러 가지 갈등을 빚기도 했다. 지난 6월에는 공개적으로 아들을 비판하며 그를 후임으로 세운 것을 참회하기도 했다.

▲故 김창인 목사 영정. ⓒ신태진 기자

고인의 제자인 김동열 목사(부산예문교회)는 “나라의 별이 떨어졌다. 김창인 목사님은 복음으로 민족의 어두움을 밝혔던 분이다. 신앙 30년 넘게 하신 분들은 모두 김 목사님께 은혜를 받았을 것이다. 설교에는 죄에 대한 통렬한 꾸짖음과 함께 소외된 이웃에 대한 사랑이 깃들어 있었다. 목사님은 평생 성경을 묵상하셨고, 마지막 때에는 ‘천국이 보인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었다”고 회상했다.

부인인 박명식 사모는 “마지막 때에 ‘예수님 보인다, 천국이 보인다’며 기뻐하셨었다. 깨끗한 분이셨고 ‘사랑으로 하나되라’고 전하며 한국교회와 충현교회를 많이 걱정하셨었다. 한국교회 화합과 북한선교에 많이 힘쓰셨다. 가난한 학생들에게 학비도 많이 지원해줬었다. 충현교회 건축할 때 헌금도 가장 많이 내셨었는데, 욕심이 없고 깨끗했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

빈소를 지키던 막내 사위 김인철 씨도 “말년에 교회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으셔서 안타까웠었다. 하지만 예수님만 묵상하며 평안히 소천하셨다. 믿는 성도로서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라고 밝혔다.

입관예배는 4일(목) 오후 5시, 발인예배는 6일(토) 오전 9시로 예정돼 있다. 총회측 인사들은 조문 후 ‘총회에서 입관예배와 발인예배를 주관하며 위로예배는 상시 열겠다’고 밝혔다. 장례는 5일간 예장 합동 총회장으로 치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