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일원에 유일한 클래식 전문방송인 90.9를 늘 틀어놓고 주행하기를 즐기다 요즘은 XM이 장착된 차를 새로 구입하였기 때문에 어디서든 구애받지않고 위성이 보내주는 맑고 깨끗한 음질의 방송을 세개나 번갈아 들을수 있어 행복하다. Metropolitan Opera Radio, Sinus Xm Pops, Symphony Hall 등이다. 그런데 90.9나 XM이나 한국출신의 세계적 연주자인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사라장 그리고 최근 지휘자로도 데뷔한 첼리스트 장한나의 연주를 들려주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들은 한국이 낳은 걸출한 기악의 '앙팡테리블' 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나는 이들의 연주가 흘러나오면 자연적으로 볼륨을 높여서 감상하고는 한다.

정경화(鄭京和)는 194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3살 때 피아노를 처음 배우기 시작했지만, 5살 무렵에 바이올린으로 옮겼다. 9살 때 콩쿨에서 우승해 서울시립 교향악단과 멘델스존 협주곡을 연주했다. 13세가 되던 1961년에 미국 줄리어드 음악학교에 전액 장학생으로 들어갔다. 1967년에 레벤트리트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동문인 핀커스 주커만과 공동 우승을 하였고 1970년에는 앙드레 프레빈이 지휘한 런던 교향악단과 차이코프스키 협주곡을 협연한 런던 데뷔 무대는 세계에 이름을 알리는 무대였다. 그녀는 동양인 클래식 음악가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거의 최초의 인물인 셈이다. 정경화의 연주는 한마디로 최고이다. 안네 소피 무터와 쌍벽을 이루는 대단한 실력이어서 현재까지 세계 1급의 연주자로 명성을 지키고 있다. 동생 정명훈과 같이 어머니 고(故) 이원숙 여사의 지대한 후원으로 오늘의 정경화가 된 것이다.

한국이 낳은 또 한명의 걸출한 여류 바이올린니스트 사라장의 한국명은 장영주(張永主)이다. 미국 펜실베니아의 필라델피아에서 출생한 그녀의 아버지 역시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음악 교사이며 어머니는 작곡가였다. 1979년 미국에 이민하여 자녀들을 훌륭하게 키워내기 위해 정작 그들은 음악가로서의 꿈을 접었던 것이다. 사라는 6세가 되던 1987년, 막스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 사단조로 오디션을 치르고 줄리어드 학교에 합격한 천재소녀였다. 음악뿐 아니라 일반 전 과목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지않으면 견딜수 없어하는 무서운 소녀였는데 강호동의 무릎팍 도사에 출연하여 모국어를 구사하는 것을 보면 과연 전천후형 천재임을 실감케하였다. 8세 때 주빈 메타가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리카르도 무티가 지휘하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협연하였고, 1991년 10세가 되던 해는 EMI 클래식스 레이블로 데뷔 앨범을 녹음할 정도였으니 경화보다 그 발전 속도가 빨랐던 것이다. 한 해 150회 이상의 연주회를 갖는 연주자로서 2002년에는 평양에서도 연주하였다

장한나는 사라와 달리 한국에서 태여났다. 3살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6살때 첼로를 배우기 시작했다. 얼마나 빠르게 성장하였던지 그녀의 부모는 오직 한나가 줄리아드 음대 예비반에 특별장학생으로 입학할 수 있도록 미국으로 이주했다. 당시 한나는 11세였다. 부모의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는것처럼 그 해에 장한나는 제5회 로스트로포비치 첼로 경연 대회를 참가,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이 대회에서 한나와 로스트로포비치는 사제 관계를 맺었다. 한나는 사라 못지않는 근성으로 거침없이 세계 첼로계를 정복해 나간다. 대만계 세계적 첼리스트 요요마의 뒤를 잇는 앙팡테리블이었던 것이다.

최근 한류 바람을 주도하고 있는 아이돌스타 들의 활약은 눈부시며 그들이 국익 창출을 위해 쏟아 붓는 유무형의 자산들은 가히 천문학적 숫자라고 한다. 계속 이런 재능있는 젊은이들이 쏟아져 나오기를 바라지만 클래식계에도 경화, 사라, 한나와 같은 앙팡테리블들이 계속 이어져서 세계음악 애호가들을 즐겁게 해주기를 소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