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버지니아주로 온 탈북자 A씨는 최근(9월) 북한에 14살 난 아들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마음이 급해졌다.

10년 전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식량을 구하러 중국에 건너갔다가 강제 북송된 그는 구사일생 탈출에는 성공했지만, 그토록 살리고 싶었던 아들을 구하지는 못했다. 한국에 온 후로 각방으로 아들과 노모의 탈출 방법을 강구했으나, 북한 당국이 눈치를 채고 그의 가족을 깊은 시골로 강제 이주 시켜 소식이 끊어졌다가 최근 소식을 들은 것이다.

가족이 살고 있는 지역을 알아낸 A씨는 아들이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지 못해 등이 굽고 배가 볼록 튀어나온 영양실조 증상을 호소한다는 것과 14살이지만 8살 정도의 체격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매우 허약한 아들을 하루 빨리 구해내기 위해 브로커 비용을 포함, 약 1만2천불의 비용이 필요하며, 한인들의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현재 4천불이 모금됐으며, 8천불이 더 필요한 상황이다.)

홍수가 나 심각한 식량난을 호소하고 있는 북한의 실정 상, 탈북자 A씨는 이번 겨울 내로 아들을 구출해 올 수 있길 바라고 있다.

자세한 A 씨의 신상은 아들을 중국으로 무사히 이동 시킬 때까지 공개가 불가하나 도움을 줄 수 있는 한인들은 조진혜 씨(탈북자, jinhyenkus@gmail.com)에게 연락하면 A씨와의 만남을 가질 수 있다.

다음은 A씨의 사연이다.

2002년 당시 정권에 충성을 맹세한 노동당 당원이던 A씨는 굶어죽는 아들을 마냥 지켜볼 수 없어 식량 구입을 위해 두만강을 건넜다. 예상과는 달리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고, 돌아갈 여비도 없어서 중국 림창에서 통나무 실어나르는 일자리를 구해 보통 중국인의 월급 4분의 1을 받으며 5개월을 일했다. 여비를 마련해 국경 지역으로 택시를 타고 가는 길에 중국 경찰 검문에 걸려 체포, 강제 북송됐다.

모진 구타를 당했고, 강제 북송 돼 감옥생활을 하던 A 씨는 이러다가는 굶어 죽을 것 같다는 생각 하나로 걷기도 힘든 몸을 끌고 탈출에 성공했다. ‘중국에서는 아무리 돈을 벌어도 자식을 살릴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한 후 밤에는 얼어죽을 만큼 춥고 낮에는 한증탕 같은 사막을 걸어 몽골 국경을 지나 한국에 도착했다.

한국에 도착하자 마자 아들을 데려오려고 시도했지만, 눈치를 차린 북한 정부는 70세 넘은 노모와 어린 아들을 깊은 시골로 추방 보내 버렸다. 몇년 동안 찾고 찾아 드디어 올해 9월 아들이 어디서 살고 있는 지를 알아낸 A씨는 동료 탈북자인 조진혜 씨에게 연락해 도움을 요청했다.

나이가 많으신 어머니는 두만강을 건너다 죽은 줄만 알았던 아들이 살아있다는 소식 그리고 손자를 살릴 수 있다는 희망으로 어쩔 줄 모르는 기쁨을 나타내시지만, 쉽게 돈을 보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닌 A씨는 기쁨과 함께 두려움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미국에 정착하기도 버거운 월급으로 아들을 데려오는 데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한 A 씨는 지역 한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지금 북한은 심한 홍수로 인해 철도가 다 밀려 내려가 이동이 힘든 상황이라 북한측 브로커들은 거액을 요구하고 있다. 허약으로 걸을 수 없는 어머니는 손자만 데려가라고 하시기에 생활하실 수 있는 비용을 어머니에게 드리고 아들을 데려오려고 생각하고 있다.

아들을 구출해 내기 위해 필요한 비용은, 북한 측 브로커의 핸드폰 비용 100불, 아들을 집에서 북한 국경까지 데려오는 비용 1,800불, 국경경비대에게 두만강 건너는 비용 3,000불, 중국 국경에서 안전지역까지 이동 비용 1,500불, 허약 퇴치 및 위염, 피부염 등 병원 치료비 1,000불(추정), 한국 대사관 입국(브로커) 비용 2,000불이다.

한때 강제북송을 당했고 미주 한인들의 도움을 통해 풀려났던 조진혜 씨는 “사랑하는 아들을 살려달라는 한 아버지의 안타까운 사연을 들으며 굶어 죽은 두 동생이 있었고 자식을 살리려다 감옥에서 돌아가신 아버지가 계셨던 저이기에 더 마음 아팠다. 거액이 드는 일이지만 기도하며 이 가족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고 전했다.

도움을 줄 수 있는 한인들은 425-329-9393 혹은 jinhyenkus@gmail.com으로 연락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