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24:36, 행1:7)고 기록하고 있으나 이단은 구체적인 재림 날짜를 발표해 신자들의 긴박감을 고조하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다. 3세기에는 몬타누스가 그의 고향 Pepuja를 재림 장소로 예언하며 재림 소동을 벌인 일이 있었으며, 20세기 이후 재림 예언은 더욱 극성을 부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여호와의증인은 수차례에 걸쳐 시한부 종말론 남발하며 재림 날짜를 변경해 왔다.

교주 Russell은 아담과 하와의 창조를 B.C. 4,126년으로 잡은 뒤 그로부터 6000년 후인 1874년을 재림 날짜로 공포했으나 재림이 이뤄지지 않자 ‘하나님의 백성을 시험하는 기간’이라며 40년을 추가해 1914년을 재림의 해로 정했다. 이 역시 이뤄지지 않자 그의 뒤를 이은 Rutherford는 재림 날짜를 1925년으로 수정했다. 그 후에도 여호와의증인은 계속해서 그들의 계산을 수정해 재림 날짜를 변경해 왔다.

이러한 시한부 재림론 소동은 한국교회에서도 계속 일어났다. 1935년 만주 용정 중앙교회 목사 황국주는 “예수님의 목과 자기의 목이 바뀌었으므로 자기가 예수”라고 주장하며 전국을 누볐다. 박태선은 1955년 남산 천만집회를 통해 예수 재림이 임박했다고 신자들을 미혹해 경기도 소사에 신앙촌을 형성했으며, 문선명은 자신의 출생을 재림 예수와 연계시키며 자신을 통해 성약시대가 도래했다고 주장했다. 1992년 10월 28일을 휴거일로 선포했던 이장림을 비롯한 재림파들의 극성은 지금도 물 밑에서 지속되고 있다.

이단의 발생 및 형성은 복음이 전파된 지역이나 종족의 원시종교, 토착종교의 관습과 이교적 사상이 기독교 신앙에 영향을 미쳐 복음이 그 순수성을 잃고 변질되는 현상과 관계가 깊다. 한국의 샤머니즘은 외래종교(불교, 유교, 기독교)가 들어왔을 때 충돌없이 이들을 흡수하거나 변형시켰다. 그 결과 외래종교의 순수성은 퇴색되고, 샤머니즘적 요소가 이들 종교에 침투해 들어왔다는 것이 종교사학자들과 비종교사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한국의 샤머니즘은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민간신앙으로, 습관, 언어, 심성에 이르기까지 민족 생활의 저변에 자리하고 있다. 샤머니즘의 샤만은 ‘흥분하다’는 의미의 퉁그스어 ‘Saman’에서 유래했으며, 우랄 알타이어족에 속하는 만주어 ‘Samarambi’와 몽고어 ‘Smoro-moy’ 역시 이와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는 점에서 샤머니즘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한국 고대 사회에서 거행된 영고, 동예, 무천 등의 제천의식 역시 춤을 추고 노래하며 흥분 속에 주문을 외우며 길흉을 점치는 등 샤머니즘에 바탕을 둔다. 샤먼은 흥분의 극한상태, 몽롱한 반무의식 상태에서 환상을 보고 길흉을 말하고 비정상적인 세계를 충동적, 감정적으로 의식하는 것이다.

역사의 흐름과 더불어 외래종교를 흡수하고 혼합하며 민간신앙으로서 명맥을 이어 온 한국의 샤머니즘은 한국 민족의 감정과 사상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감정을 앞세워 극단적 흥분과 황홀한 반무의식 상태로 신비적인 것을 체험하며 영적 세계와 교통하는 것을 정상적인 종교현상으로 여기는 것 역시 샤머니즘의 자장 안에 든 한국교회의 위험한 한 단면이다. 한국 기독교는 샤머니즘적 요소가 기독교 안으로 스며 들어와 순전한 복음을 변질시키는 현상을 경계해야 한다.

이단들은 자신들을 선민이라 주장하며 배타적 구원을 이야기 한다. 한국 이단 종파에서도 이런 주장이 나타난다. 박태선은 ‘동방의 해 돋는 나라’(계7:2)와 ‘동방에서 사람을 일으키며’(사41:2)의 동방이 한국이라고 주장했다. 1960년대의 이단들과 불건전한 부흥사들은 단군의 단을 성경의 단 지파와 관련지어 우리 민족이 단 지파와 관련이 있다는 억설을 퍼뜨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과 달리 성경은 민족에 상관없이(롬10:12-13) 예수를 구주로 믿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고 선포하고 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