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흔히 교육을 보는 것에 비유할 때가 많습니다. ‘보는 만큼 배운다’는 말이 그런 의미인듯합니다. 고국 속담에는 ‘말(馬)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을 현대적으로 생각해 보면 부모는 못 입고 못써도, 자식 낳아서 기를 쓰고 미국에 유학 보내려는 마음이 같은 것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유는 하나입니다. 보무보다 더 많이 보고 배우라는 것입니다. 좁은 땅, 늘 보고 자란 곳에서 틀을 벗어나 새로운 넓은 곳에서 많은 사람과 문명들을 보고 경험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간과하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보여지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보고자 하는 것을 본다는 사실입니다. 어려운 이야기 같습니다만 실제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 볼거리들이 있습니까? 그러나 우리의 기억 속에 있는 것은 관심을 둔 것들만 남더라는 것입니다.

보고자 하는 마음을 성경에서는 ‘깊이 생각하는 것’(히3:1)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내 마음속에 ‘깊이 생각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바라보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한번은 어느 교회에 나이 많은 권사님이 믿지 않는 딸을 전도했습니다. 수년을 전도해서 예배에 참석한 첫날 권사님은 저녁에 딸과의 대화에서 물었습니다. “오늘 교회가 보니, 어땠니?” 그러자 딸이 대답하길 “앞으로 절대 교회 가자 하지 마세요. 교회가 그게 뭐예요? 남 욕하고, 서로 눈치보고… 뭐하러 그런 곳엘 가요?” 딸은 말을 이으며 화를 내더라는 겁니다. 이 모습을 본 권사님 대답이 아주 진리입니다.

“애야, 나는 수 십 년을 교회를 다녀도 예수님만 보이던데 너는 딱 하루 교회를 갔는데 험한 모습을 많이도 봤구나!”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내가 무엇을 깊이 생각하고 있는가에 따라서 보이는 게 다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마음에는 어떤 상황이든지 아름답고 선한 것들, 긍정적인 것들을 보기로 생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깊이 생각할 때 가능해집니다. 다른 것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세상 것들은 생각하고 보는 것마다 비교되기 때문이고, 비교되면 서로 평가하고 모자라면 밀어내기 때문입니다. 끊임없이 더 좋은 것을 향해 아쉬워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보고 있으십니까? 그 환경, 그 사물 속에서 아름답고 긍정적인 것들을 보고 있습니까?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깊이 생각하는 것이 보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kisung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히3:1
Sep 9.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