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12제자 가운데 사도 요한이 있다. 본래 '우뢰의 아들' 이라는 별명을 가질만큼 거칠고, 우악스러운 사나이다. 그런데 예수를 만나 제자가 된 후 그분 곁에서 가르침을 받으며 배우는 동안 인생이 바뀌었다. 그래서 '사랑의 사도'가 되었다. 그랬다, 요한은 예수의 사랑에 무한한 감동을 받으며 보고 배웠다. 그래서 사랑을 실천했고 기록으로도 남겼다. 그것이 사랑의 서신 요한 1,2,3서다.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라고 한다. 이것은 신자나 불신자를 가릴것 없이 다 인정하는 말이다. 그런데 오늘날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자처하는 그리스도인의 공동체 안에 과연 사랑이 있는가? 예수 같은 사랑, 예수 닮은 사랑, 예수의 아가페 그 사랑이 있을까?

"세상 모두 사랑 없어 냉냉함을 아느냐 곳곳마다 사랑 없어 탄식 소리 뿐이라. 곳곳마다 번민함은 사랑 없는 연고요, 측은하게 손을 펴고 사랑 받기 원하네 사랑 없는 까닭에 사랑 없는 까닭에 사랑 없는 까닭에 저들 실망하도다."

이것은 세상에서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교인들이 부르는 찬송가 아닌가?
사랑 없어 냉냉하고, 사랑 없어 탄식이며, 사랑 없어 번민이다.

알아야 겠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 사랑의 극치는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신 일이다. 그리고 허물과 죄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시고, 죽으시고 보혈 흘려주심으로 그 공로로 구원 받았다. 죽을 수 밖에 없었는데 살려 주셨다. 죽을 목숨이 지금 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덤으로 살고 있는 신세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가 그렇게 많고 핑계가 많은지 모르겠다. 우리 모두는 바울 사도의 고백처럼 '빚을 진 자' 이다.
빚을 갚아야 하지 않겠는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시면서 어머니를 보시고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 입니다 ...' 하시고 곁에 있는 제자에게 '자,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라고 하셨다. 그 때부터 그분을 자기 집으로 모셨다. 이 제자가 누구인가 사랑의 사도 요한이다. 예수님은 사랑의 제자에게 마지막 일을 맡기신다. 사랑의 사람을 가장 신뢰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