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지휘자 가운데 피아노 전공자들이 많다. 번스타인, 바랜보임등인데 앙드레 프래빈(Andre Previn)도 피아노 연주자로서 손색이 없는 대 지휘자이다. 얼마나 피아노를 잘 쳤는지 10대 때 베벌리힐스에서 열린 프랭크 시나트라의 파티에서 피아노를 연주했고, 고교 졸업과 동시에 MGM 스튜디오로 직행해서 작곡•지휘•편곡을 도맡으며 '할리우드의 신동(神童)'으로 명성을 떨쳤다. 그리고 그의 다섯번째 부인이었던 바이올린니스트 안네 소피 무터의 피아노 반주를 도맡아 할 정도였다.

그는 독일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나 1938년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이민 로스앤젤레스에 정착하였다. 1948년 할리우드에서 영화음악을 작곡하며 경력을 쌓기 시작했으며, 본격적인 지휘자로서는, 1967년 휴스턴 교향악단 상임지휘자가 되면서였다. 그 이후 런던 교향악단, 피츠버그 교향악단,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오슬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 세계 주요 관현악단을 지휘하였다. 그도 마리오 란자처럼 클래식과 포퓰러 뮤직을 오가는 엔터테이너로서 약관 19세 때 첫 번째 영화음악인 '해가 떠오를 때(When the Sun Comes Up)'를 작곡하였고, 이어 '마이 페어 레이디(My Fair Lady)'와 '키스 미 케이트(Kiss Me Kate)' 등 50여편의 영화음악을 작곡하므로 영화음악 분야에서 4차례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는 대 기록을 세웠던 것이다. 그는 대중 음악에만 심취했던 것이 아니라 69세 때인 1998년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오페라로 써서 초연했을 정도로 클래식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러나 그의 가정생활은 순탄치 않아 다섯 차례나 이혼을 경험하였다. 그의 부인중에는 유명 여배우 미아 패로우도 있었는데 그녀와의 결혼은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미아 패로우와의 사이에 한국 출신의 순이 프래빈을 입양했으며, 순이 프레빈은 후에 영화감독 우디 앨런과 결혼하여 세간의 가십거리를 제공하였다. 그의 다섯번째 부인은 유명 바이올리니스트 안네 소피 무터인데 이 세기적인 결혼도 몇 년 못가 이혼으로 끝 맺었다. 그러나 아직도 무터의 연주회에 반주로 협력하는 등 음악에 대한 열정은 식을 줄을 모른다.

동시대에 또다른 유태계 거장 마에스트로인 로린 마젤(Lorin Varencove Maazel )은 프랑스 파리 근교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성장하였다. 그의 조부가 메트로폴리탄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연주자인 음악적인 가정에서 자랐으며, 7세 때에 첫 지휘 수업을 받고 8세에 데뷔한 신동이었다. 11세 때에는 라디오 방송에 특별출연하여 NBC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기도 했다. 12세 때에는 일류 오케스트라의 지휘를 위해 미국을 여행하였다. 15세 때에는 바이올린으로 데뷔하기도 하였다. 그가 앙드레 프래빈보다 우리에게 친숙하게 다가오는 것은 한국이 배출한 걸출한 첼리스트 장한나의 스승이라는 것과 2004년, 2006년, 2008년, 2010년등 4번이나 한국을 방문, 클래식 애호가들을 위해 연주하였다는 것이다. 특히 2008년 2월 26일 최초로 평양을 방문하여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기도 했으며 2010년에는 그의 제자 장한나가 분당야외공연장에서 지휘자로 데뷔하는 공연장에 멘토로 참석 격려하고 일방 상암경기장에서 열린 오페라 투란도트의 지휘를 맡아 한국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이다. 그는 "신동은 조로한다는 말은 내게는 맞지 않는다"고 노익장을 자랑하면서 자기에게는 은퇴란 말은 없다고 기염을 토한다. 프레빈이나 마젤이 유태계 미국인이라는 공통점외에 80고령을 넘기면서까지 정력적으로 지휘봉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한 분야에서 이토록 큰 공헌도를 가지고 일 할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그들처럼 노추를 보이지 않고 죽을때까지 은사를 발휘 할 수 있도록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