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산딸기 한 움큼을 따서 아내에게 주었다. 아내는 그 때 일을 생각하며 너무 좋아했다. 매년 나는 이맘때면 마치 우리의 사랑의 언약을 다시 새롭게 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주 각별한 정성을 모아 산딸기를 따서 아내에게 바친다.

우리는 '88 서울 올림픽을 얼마 앞둔 초여름에 결혼을 하였다. 결혼하는데 있어서 우리는 아무 조건도 없이 "그저 서로 기쁨과 고생을 함께 나눌 마음만 있으면 된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신혼여행도 특별한 여정 없이 발길 닿는 대로, '오늘은 태백산 만경대, 내일은 설악산 대청봉' 등 한국 명산들을 두루 찾아, 수없이 오르내리며 13박 14일을 보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둘이 좋아서 그렇게 다녔는데, 신부 댁에서는 연락도 없이 오랜 날들을 돌아오지 않으니까 걱정을 엄청나게 많이 했던 모양이다. 막 결혼한 신부에게 편안하고 달콤한 허니문이 되도록 해주지는 않고, 일방적으로 [우리의 가는 길은 쉽고 편한 길이 아닐 것이기 때문에 신부가 결혼 초장부터 그러한 삶을 각오해야 한다]라는 못되고 황당한 고집이 있었는가 보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그 때의 신부에게 미안스러운지…… 그래도 신부는 참 순진하게도 마냥 좋아하면서, 이 산과 저 산 그리고 길이 나지 않은 들판을 헤치며 신나서 함께 다녔던 것 같다.

한번은 태백산 만경대를 올랐는데, 그 여름에 산을 찾는 이가 별로 없어서 길이 잘 나 있지 않았다. 그래서 태백산을 이리저리 온종일 헤매고 또 헤매게 되었다. 그 때 깊은 산중에 길도 없이 헤맬 때, 갑자기 얼마 전 언론을 통해서 알려진 "태백산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다. 그때 신부의 얼굴에 얼마나 긴장과 두려움의 그늘이 스치고 지나갔는지 모른다. 그 때 나는 "지금 호랑이가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그까짓 것 내가 확 때려잡을 수 있다"고 두 팔을 펼쳐 보이며 "아무 염려 없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순진한 신부는 그렇게 믿었다. 예나 지금이나 “신부를 어떤 어려움과 위험 가운데서도 생명 내걸고 지키겠다”면, 신부는 그냥 순진하게 믿고 따라 오는가 보다.

그때 우리에게는 물도 음식도 없었다. 유일하게 먹을 것이라고는 메고 간 신부의 Backpack속에 시어머니가 폐백 인사를 받으면서 "아들과 딸 잘 낳고 행복하게 살아라"라고 하면서 던져준 밤 몇 조각과 대추가 마침 있어서, 어머니의 자애로운 마음을 느끼며 겨우 허기를 면할 수 있었다. 그러고도 온종일 산비탈을 헤맸었는데, 아주 허기지고 탈진된 상태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양지바른 산기슭에 이르렀는데 싱그러운 초록 풀잎 사이에 빨갛게 익은 산딸기 밭을 만난 것이다. '와아, 얼마나 아름답고 신나고 좋았던가! 초록 풀잎 사이의 빨간 산딸기가…' 그 때 나는 부지런히 풀잎 사이를 헤치면서 산딸기를 한 움큼 따주었다. 그냥 한 알 한 알 먹으면 별로니까, 한 움큼씩 먹으라고 권했었다.

아내는 지금도 언젠가 한국에 가면 신혼여행 때 갔던 그 산자락과 들을 다시 가고 싶다고 말하곤 한다. 결혼 생활이란 성장 배경도 모습도, 성격과 취미도 전혀 다른 남녀가 함께 한 몸을 이루며 살아가는 모험의 과정이자, 열정과 헌신과 지혜를 쏟아 부어야 할 고도의 예술이 아닐까? 좋을 때도 많지만, 갈등과 힘든 위기도 많이 찾아온다. 그럴 때마다 지난날의 아름다운 좋은 추억들이 가슴에 새겨져 있다면, 때때로 찾아오는 위기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

매년 초여름이 되면 싱싱한 풀잎 사이에 알알이 빨갛게 맺혀 있는 산딸기를 보면, 그 때 일을 생각하면서, 빨갛게 익은 산딸기 한 움큼을 나의 신부에게 바친다. 특별하고 신성한 Ceremony라도 치루는 양…!

내년이면 이제 결혼 25주년이 된다. 내년에도 이맘때면, 신부에게 빨갛게 익은 산딸기 한 움큼을 어느 산자락과 들판을 함께 거닐며 따주어야겠다.

김병은 목사(한사랑장로교회/하워드한인교회 담임), 410-852-0999, bekim111@yah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