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이면 동분 서주 가장 바쁜 하루를 보내는 조승규 목사(76세)는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시에 위치한 네팔교회와 부탄교회의 담임이다.

▲조승규 목사, 조용례 사모.
1999년 조금 늦은 나이인 64세에 목사 안수를 받긴 했지만 그는 평범한 한인 목회자였다. 모(母) 교회인 워싱턴지구촌교회에서 파송받아 볼티모어지구촌교회 개척 목회자가 됐고 약 50명으로 성장했지만 이후 사역에 한계를 느끼고 젊은 목회자 청빙을 부탁한 후 선교사로 재파송 받았다. 네팔교회는 볼티모어 지구촌교회 사역을 2년 째 감당하던 때, 한 식당에서 만난 네팔 자매에게 복음을 전해 예수님을 영접하게 한 것이 계기가 됐다.

“저는 그 나라 말을 하지도 못하고, 영어를 잘 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런 저도 하는데 누군가 마음만 먹고 도전한다면 가능하다는 이야깁니다. 한인커뮤니티에는 목회자들이 많지만 조금만 돌아봐도 지도자가 없어 방황하고 복음을 알지 못하는 민족이 미국에도 넘쳐납니다.”

조 목사가 6년 전 세운 네팔교회는 미남침례교단(SBC) 내에서 최초로 세워진 네팔교회라는 기록을 남겼다. 네팔교회는 식당에서 만나 전도한 네팔 자매 내외와 성경공부를 하는 작은 가정교회 모임에서 발전해 친구들이 찾아오고 그들을 전도하면서 1년 만에 침례교연맹(Baptist Association) 사무실을 사용하다, 곧 미국교회를 빌려 정식 교회를 세웠다.

네팔은 약 3천만 인구에 80%가 다신을 믿는 힌두교를, 11%가 이슬람, 5~6%가 불교, 나머지는 타종교를 믿는다. 기독교는 거의 없어, 미국에 들어온 이민자, 유학생들도 복음을 들어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경우가 수두룩 하다. 회계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조 목사는 공짜로 세금 보고를 해주거나 세미나를 여는 등 생활 정보를 제공하면서 네팔인들을 모으고 오는 사람마다 99%가 예수를 영접하는 열매를 낳고 있다고 했다.

조 목사가 개척한 부탄침례교회는 네팔 경계선에 진쳤던 부탄 난민들이 볼티모어에 700명 가량 거주한다는 소식을 들은 후 시작됐다. 부탄 난민의 유래는 약 100년 전 아메리칸 드림 처럼 '부탄 드림'을 안고 이민 간 네팔인들이 부탄 국교인 불교를 믿지 않고 힌두교와 그 전통을 유지한다는 이유로 시민권 박탈을 겪은 후 일어났다. 쫓겨난 부탄 이민자들이 자국인 네팔로 돌아갔으나 받아주지 않아 난민 캠프에 정착하게 된 것이다. 약 10만에 달하는 부탄 난민들은 최근 유엔의 조치에 따라 미국을 비롯 덴마크, 호주 등 선진국 망명이 추진되고 있으며 미국에는 총 6만명이 배치받았다.

이 소식을 들은 조 목사는 2008년 네팔교회에 부탄인들을 초청해 첫 예배를 드린 후 이듬해인 2009년 부탄침례교회를 개척, 설립했다. 현재는 약 100명이 출석하며 매 주일 예배는 뜨거운 예배와 간증이 한 시간 가량 진행된 후 맨 마지막에 영어로 설교하면 동시통역을 해주는 식으로 약 2시간 동안 진행된다.

“가난하고 고통과 버림의 아픔이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뜨겁게 울며 매달립니다.” 그는 매 예배 때마다 성령의 임재를 크게 느끼고 있다고 간증한다.

4년 전부터 일년에 꼭 한번씩은 다녀오는 네팔 현지에는 벌써 3개의 가정교회가 생겼다. 1군데는 처음 전도했던 네팔 내외가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 돌아가 세웠고, 나머지 2개는 조 목사 부부가 직접 복음을 전해 리더를 세운 곳이다. 외부인 통제가 철저하게 이뤄지는 부탄 난민 캠프에 들어가는 것은 목숨이 위태로운 어려운 일이지만 매년 들어가 미국에 정착한 친척들의 소식과 복음을 함께 전달한다.

“선물을 갖고 난민캠프를 찾아가면 순식간에 사람들이 빙 둘러쌉니다. 먼저 미국에 들어간 친척들의 생활과 미국에 대해 궁금한 여러가지 질문에 답해주면서 미국 생활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심지요. 그런 후에 복음을 전하는 데 보통 모인 수의 3분의 2가 영접을 하겠다고 손을 듭니다. 영접 기도를 해 준 후에 그 중에 일주일에 한번씩 성경 구절을 읽고 집에서 모임을 가질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합니다. 가정교회 리더를 뽑는 거지요. 그러면 평균 2명 정도가 손을 듭니다. 저는 이들과 약속해요. 지금부터 가정교회를 시작하고 나중에 미국와서 교회를 개척하라고, 내가 적극 도와주겠다고요. 이런 이들이 미국에 도착해 전화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조 목사는 35세에 미국에서 회계사(CPA) 자격증을 따서 잘 살아보자는 생각으로 도미했다. 이미 한국 회계사 자격증이 있었던 그였지만 자꾸만 시험에 낙방했고 직장도 구하기 어려워지자 스트레스로 육체적, 정신적 쇠약을 겪기도 했으며 깨질 듯 아픈 두통을 호소했다. 직장도 가정도 심지어 자신의 생명도 유지할 수 없을 것 같던 한계 상황에 부딪혔을 때 그는 비로소 성경을 읽기 시작했고 주님의 용서를 깨달았다. 하루는 주님의 용서를 두고 감사 기도를 하는데 마음 속에 불이 임했고 깨질 듯 아프던 머리가 거짓말처럼 치유받았다.

“복음을 알면 성령의 진리,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 잘 믿는 사람 만 가는 게 아니라 예수님을 믿으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공평한 하나님의 선물, 세상에 그런 좋은 선물이 어디있겠습니까? 누가 이야기 해야 하는데, 전하는 자가 없이 어떻게 듣겠습니까?”

조 목사는 인터뷰에 응하는 내내 “전하는 자가 없이 어떻게 듣겠나, 하나님의 선물인 복음을 우리만 알고 있으면 안된다”는 말을 거듭했다.

“하나님의 일이 신묘막측하지요. 그 나라 말도 못하고 영어도 잘 못하는 데, 내가 할 수 있다면 누군가도 마음만 먹고 도전한다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타 민족을 직접 선교할 수 없다면 특정 민족을 정해 교회 건물을 빌려주는 것도 한인교회가 할 수 있는 중요한 선교입니다.”

조 목사의 꿈은 힘 닿는데까지 네팔, 부탄 민족을 섬기면서 그들이 자체적으로 이끄는 개척교회가 미국, 네팔, 부탄 난민 캠프에 되도록 많이 세워지는 것이다.

복음을 향한 열정 탓일까? 80세가 다 되어간다는 것을 믿을 수 없을 만큼 인터뷰에 응하는 조 목사의 목소리에는 힘이 넘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