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저지교협(회장 유재도 목사)이 주최하는 뉴저지 지역 최대 집회인 2012 호산나전도대회가 15일 뉴저지필그림교회(담임 양춘길 목사)에서 개막됐다.
‘회복과 비전’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올해 호산나대회에는 장순직 목사(원주드림교회)가 강사로 초청돼 뉴저지 지역 성도들에게 새로운 비전을 심어주게 된다. 강사 장순직 목사는 합동총회 부흥사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에도 민족복음화운동본부 상임회장, 한기부 실무회장을 맡고 있다.
장순직 목사는 첫날 성도들에게 ‘성공을 장악하라’(눅5:1-11)는 제목의 설교를 통해 신앙의 핵심을 잃어버리고 세속화되고 있는 이민교회의 현실을 꼬집으면서 완전한 내려놓음을 통한 헌신을 당부했다.
현재 시골교회 목회자로서 한국 내에서도 촉망받고 있는 강사목사로 활동하고 있는 장순직 목사는 시종 유쾌한 분위기 가운데서도 뼈있는 말씀으로 성도들의 마음을 새롭게 했다. 다음은 장순직 목사 설교 주요 내용.
‘성공을 장악하라’(눅5:1-11)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여러분의 신앙의 패러다임이 변화되기 바란다. 총 7가지 키워드를 주심으로 말씀을 전하고자 한다. 신앙의 7가지 단계를 구분해 봤다.
1. 소중한 것을 내가 드리는 단계
우리 신앙에 있어서 딜레마가 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말을 하지만 정말 내게 아까운 것을 하나님께 드린 경험이 없다. 우리는 대충 부담없이 체면치레로 오늘 내 이름값을 하느라고 그리고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묻어서 묻어서 여기까지왔다. 정말 피눈물을 쏟을만큼 아까운 것을 드린 경험이 없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드려야 하는데, 내게 있는 모든 것을 드린다고 하면서 지갑 속에 1달러를 찾고 없으면 다음에 5달러를 찾고 100달러만 있으면 깜짝 놀란다. 대충 예배시간도 때우고 지나간다.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해서 상처를 입을지도 모르겠지만 한국교회를 망치는 원인이 대형교회다. 저는 대형교회 하나보다는 500명 정도 되는 교회 1백개가 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분은 생각해야 한다. 그 1만명 모인 성도들의 분포도를 보면 기둥 뒤에서 부담없이 예배 드리고 부담없이 천국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여러분이 부담없이 예수님을 믿고 부담없이 천국갈 것이라면 아예 천국 가는 것을 포기하시기 바란다.
여러분 어떻게 부담없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미국교회를 보니까 너무 안타까워서 이 말씀을 드린다. 미국 이민교회의 문제는 온데간데 배우지 못한 신앙이 계속 이어지면서 2세와 그 다음 세대까지 흘러가고 있다. 귀한 것을 드릴 생각이 없고 그럴 부담도 없다. 그래서 부담없이 천국에 갈려고 하는 이민교회의 특징이 아닌가. 너무 혹평을 했는가. 그렇다면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정말 주님 앞에 드리고 아까워 할 정도로 귀한 것을 드린 적이 있는가.
2. 진정한 누림은 드림으로부터 시작
한국의 100만원짜리 전세에 돌아 누우면 벽이 나오는 곳에 식구들이 살았는데, 신학교 공부할 때였다. 그 전세방을 빼서 하나님께 드렸다. 그 때 너무도 행복했다. 그리고 하나님이 23평형 아파트를 선물로 주셨다. 한국에 살면서 ‘방빼’라는 소리가 너무 서러웠다. 돈을 내지 못해서 가난한 신학생을 만난 아내는 이 서러움 속에 쫓겨나서 싼 방 부담없는 방으로 찾아 찾아 갔던 곳이 100만원짜리 전세였다. 그런데 이것마저 빼서 하나님께 드렸더니 23평 아파트를 주셨다. 아내가 너무 감격해서 잠을 못잘 정도였다. 이제 연탄불을 갈지 않아도 되느냐고 물어봤다. 그렇게 23평형 아파트의 감격에 푹 빠져 있던 때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했을 때 하나님이 물어보셨다. ‘너는 그렇게 23평형 아파트가 좋으냐’ 거기에 저는 너무도 좋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너는 23평형 아파트를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은 것이 아니냐고 하셨다. 그 때 정신이 번쩍들었다.
강원도 첩첩산중에 목회를 시작할 때 전체 교인은 7명이었다. 거의 노인대학이었다. 그리고 성도들은 후보생이었다. 오늘 내일 요단강 건너려는 후보생이었다. 그런 척박한 환경 속에 23평형 아파트가 주어졌을 때 너무도 의지가 되고 든든했다. 그 전까지는 우리는 늘 그 척박한 목회지에서 까마귀가 먹을 것을 가져다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기다렸다.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됐다. 그런데 23평형 아파트가 생기고 나서 하나님을 향한 의존도가 점점 손상이 온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의 음성을 듣고 아내에게 아파트를 하나님께 드리자고 했다. 그런데 늘 하나님께 봉헌하자고 할 때 선뜻 그렇게 하자고 했던 아내가 예상과 달리 눈을 한번 흘리는 듯 하더니 두 눈에 눈물이 폭포수같이 흘러내렸다. 저는 그래서 아내에게 어차피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라고 했는데 아내는 그것은 알지만 안타깝다면서 계속 울었다. 마음이 약해져서 그냥 없던 일로 하고 넘겼다.
그 후 시간이 흘렀다. 교회에 갔더니 봉투가 놓였는데 아내가 봉헌한다는 것이다. 무엇인가 했더니 23평형 아파트 권리증이 들어있었다. 이것이 집문서다. 그 예배를 드리던 날 아내는 뒤돌아서 끝까지 어깨를 떨었다. 계속 울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날 이후 마음이 그렇게 편했다고 한다.
우리는 자꾸 끌어안으려고 한다. 적당한 때에 놓아야할 줄을 알아야 하는데 무엇인가 더 많이 더 크게 더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 괜찮다고 평가될 만큼 키우기를 원한다. 여러분 모두 소중한 그 무엇인가를 하나님께 내려놓는 사람들이 되기 바란다. 2번째 키워드는 진정한 누림은 드림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3. 은혜 거리를 유지하는 단계
필그림교회는 이민교회 중에서는 큰 교회다. 그런데 대부분의 이민교회들은 100명 미만 겨우 렌트비를 살고 사는 곳들이 너무도 많다. 작은 곳에서 서로 부딪히다보니 서로 알 것 모를 것을 다 알고 있다. 너무 가깝다보니까 안전거리가 없다. 차와 차 사이에 목회자와 성도 사이에 안전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아시는가. 예수님 시대때도 안전거리가 있어야 했다. 청중들에게 주님은 육성으로 복음을 전하셨다. 예수님은 해풍을 이용해서 멀리 전하려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육지에서 조금 배를 끌고 나와야 하셨다는 것이다. 이것을 은혜 거리라고 생각한다. 제가 여의도순복음교회 교역자들을 대상으로 했던 교육을 지금 여기서 하고 있다. 여러분 중에 돈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저도 물론 좋아한다. 안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돈을 어느 정도 거리에 두고 봐야지 돈도 보이고 형제도, 성도도 보이는 것인데 돈을 눈 앞에 가져다보니 돈 밖에 안보이는 것이다. 돈에 눈이 먼 것이다.
청각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것도 너무 멀면 들리지 않는다. 적당하게 봐야 잘 보이고 적당한 거리에서 들어야 잘 들린다. 성도들에게 부탁한다. 적당한 은혜의 거리를 갖기 바란다. 교회에 사람이 적다고 너무 가깝게 들어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교회에 여학생과 남학생이 교제를 하려고 했는데 어느 날 둘이 한참 가까워지려는 것 같더니 얼마 안가서 깨졌다고 한다. 정식으로 교제하자고 여학생이 이야기를 하러 둘이 벤치에 앉았는데 너무 가까이 있어서 여학생 콧속에 코딱지를 봤다고 한다. 그날로 남학생은 도망쳐 나왔다고 한다.
여러분 은혜 거리는 정말 필요한 것이다. 안전거리가 되는 것이다. 교회가 건강해지려면 가장 은혜스러워지는 자리가 있고 거리가 있다. 너무 가까이 있으니 고막만 아프고 소리가 안들린다. 그런데 너무 멀리 있으니 소리가 안들리고 입모양만 보인다. 은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이것이 두 번째 키워드다.
3. 의식전환의 단계-자기 중심적 경험, 자기 고정관념을 버리라
이민교회 안에 큰 딜레마가 있다. 전도를 하는데 너무 적은 바닥에서 뻔한 한국인들 틈에서 전도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어려울 수 있지만 늘 이 생각을 갖는다면 언제까지고 변할 수 없다. 제가 농촌목회를 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다 말렸다. 어장도 황금어장인 서울을 놔두고 지방으로 가는 저를 쪼다라고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내려가기로 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제일 겁주는 것은 ‘애들 교육은’이었다. 미국은 아닐지언정 서울도 아닌 유치원도 없는 강원도 농촌으로 간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저는 제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한 7년동안 배고프고 외로웠다. 사람은 오지 않고 각설이가 오거나 멧돼지나 나타났다. 새벽기도를 가면 아무도 없고 산에서 뱀이 내려와 기어다닐 때도 있었다. 7년을 그렇게 어렵고 힘들고 고단하게 목회를 했다 입을 것, 먹을 것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날 소음이 들리고 굉음이 들려서 문을 열고 봤더니 이 작은 동네에 사람은 없고 산짐승만 왔다갔다 하는 이 곳에 아파트가 들어왔다. 뒤에는 뒷파트, 앞에는 아파트 옆에는 옆파트다. 교인들이 몰려들어오는데 저는 30명만 되면 목회 소원이 없다고 생각했다. 50명이면 정말 원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30명 금방 돌파되고, 50명을 넘어 100명, 200명 500명을 넘었다. 사모가 목회자 사모들과 모임을 할 때 강원도에서 왔다고 하면 개장수 트럭에 실린 개를 불쌍하게 쳐다보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리고 밥을 많이 먹으라고 권한다. 그런데 그런 때를 지나 보니 그렇게 촌스럽던 강원도의 농촌의 목회자가 강사 섭외 1순위가 됐다. 웃자고 하는 이야기를 이해하고 들으시기 바란다.
어려운 농촌목회의 현장에서 그곳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장소라면 목회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목회를 했는데 제 그 판단이 옳았다는 것을 느낀다.
미국은 기회의 땅이다. 한국도 여러분만큼 일하고 열심히 살면 성공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이다. 그런데 먹고 살기 위해서만 일하지는 말기 바란다. 제 아들은 농촌에서 자랐지만 지금은 유학 중에 있다. 영어도 너무 잘하고 한국어도 저만큼이나 잘한다. 우리 모두의 의식이 전환되지 않는다면 교회의 미래는 장담하지 못한다. 날이 샜어도 고기는 잡을 수 있다.
4. 말씀에 의지하는 단계-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이다.
이번 성회에 모두 성령이 충만하기를 바란다. 이 미국 기회의 땅에 여러분이 살고 있는데 미국에서 힘겹게 얻어낸 영주권 시민권, 아니면 유창한 영어실력을 의지하는가? 제자들은 오직 말씀에 의지했을 때 성공할 수 있었다. 여러분도 내려놓고 가난해져야 한다. 말씀을 따라가고 말씀이 멈추는 곳에서는 여러분도 멈춰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오버액션을 한다. 말씀없이도 곧잘 간다. 성경이 뭐라고 말씀하시는지만 생각하기 바란다. 정말 영혼을 살리는 일에 있어서만큼은 내가 프로가 돼야 하는데 직장에서 인정받는 것에는 목숨을 바치면서 말씀을 의지하는데에는 초보가 되는 슬픈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저는 가끔 성도들의 학력을 보고 깜짝깜짝 놀란다. ‘나는 이대 나온 여자야’라는 말이 있듯이 정말 깜짝 놀랄 정도의 학력을 가진 이들이 있다. 그런데 저는 학력을 내세울 것도 없고 그냥 무릎꿇고 울고 하나님께 매달렸는데, 어느날 보니 그 고학력자들을 가르치는 선생이 돼 있었다. 겨우겨우 힘들게 공부해서 목회학석사 하나 받은 것이 저의 학력이 전부다. 그런데 강원도 목회, 첩첩산중의 환경이 나를 말씀에만 의지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저보다 더 책가방 끈이 긴 분들 앞에서 가르치는 위치에 서게됐다.
5. 협력하는 단계
여러분 명심하시기 바란다. 목사님과 장로님의 관계는 협력의 관계가 돼야 한다. 만일 베드로 사도가 혼자 그 그물을 던지고자 독식하고자 힘을 쓰고 그물을 쓰다가 그물코가 찢어졌다면 그물은 그물대로 망가지고 물고기도 다 빠져 나갔을 것이다. 그 때 필요한 것이 협력이다. 여러분 모두는 돌아가시게 되면 교회의 모든 분들과 협력하시기 바란다. 개성 강한 이민교회 성도들이다. 개성이 너무 강해서 날마다 싸운다. 상충한다. 힘을 쓰면 쓸 수록 깨지고 다투는 것이 상충이다. 목사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 장로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다. 힘은 영혼을 살리는데 써야 한다. 그런데 자꾸만 교회에서 상충하는데 힘을 쓴다. 툭하면 갈라졌다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이민교회에 사임했다는 목회자가 너무 많다. 집회 예약이 돼 있어서 비행기를 타고 갈려다보면 사임했다는 목회자가 있다. 상승은 서로 협동하면 할수록 살아나는 힘이다. 베드로가 정말 추구했던 힘은 상승이다. 여기에 시너지가 있다. 여기는 정말 똑똑하고 공부 잘하고 남들 보다 먼저 와서 시민권을 얻은 이민교회 성도들이 있는 곳이다. 여러분의 그 재능을 목회자와 함께 협력하고 교회에 상승을 가져다 줄 수 있도록 사용하기 바란다.
6. 엎드림의 단계
자꾸만 제가 지적하는 설교를 해서 될지 모르겠는데 훈수를 둘 수 있는 이유는 제가 밖에서 객관적인 입장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엎드리지 못하는 환경 속에 여러분이 살고 있다. 열심히 뛰지 않으면 어느 수준까지 맞춰 살 수 있는 이민사회 환경에서 살고 있는 여러분이다. 그런데 그 어느 곳도 기도하지 않고 이룰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런데 지금 새벽기도를 보면 너무도 안타깝다. 돌아가시거든 교회가 할 수 있는 회의는 최소화하시기 바란다. 회의는 하면 할수록 회의가 드는 것이다. 회사에서는 돈을 받고 일하는 입장에서 아무 소리도 안하다가 교회에서는 오히려 자기가 돈을 내니까 회의 때 목소리가 커진다. 영적인 일을 도모할 때 영적인 사람을 해야 하는데 영적이지 않은 사람이 이런 일을 맡게 되면, 돈이 많다는 이유로, 교회를 설립했다는 이유로 하게 되면 교회는 산으로 간다.
모세가 가나안 땅 갈 때 천부장 백부장 모아두고 회의하고 출발하지 않았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로 가실 때 회의하지 않으셨다. 요즘 교회들이 너무 민주주의 방식으로 가고 있다. 우리는 예배당 지을 때 카펫 하나 깔려고 해도 빨간색 깔아야 한다. 파란색 깔아야 한다. 그런 것을 두고 엄청나게 회의를 했다. 집에 치약 짜는 일 때문에 싸움이 일어난다고 한다. 치약을 중간에 누르는 사람, 끝에서 짜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이 부딪친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 가운데서 일을 할 때 물어보지 않는다. 사실 일주일만 지나면 아무도 모른다. 카펫을 아무 소리 없이 조용히 깔고 일주일 지나면 언제 깔았는지도 모르고 지나간다. 그 일주일 때문에 눈에 불을 켜고 회의하면서 싸움을 하는 것이다. 엎드림, 기도 외에는 다른 것이 나올 수 없다. 이것에 서공의
7. 내려 놓음의 단계
웰빙이란 단어가 한국에서 크게 유행했었다. 잘 살자는 것인데 중요한 것이 끝이다. 끝이 좋아야 하는 것이다.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려두고 주를 쫓았고 결국 그들의 삶은 영적인 풍요를 얻게 됐다. 그 동안 그렇게 극악스럽게 탐욕스럽게 또 남보다 더 잘살려고 악착같이 살았던 인생이 있다. 수 십 교회를 떠돌아 다닌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내려놓기를 바란다. 여기에 진정한 성공이 있다.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하고 마치고자 한다. 예배당에 불이 났었다. 새로 지을 때 돈이 많이 들었다. 예배당 좌석이 1천 명이고 2층을 트면 몇 부 예배를 드리면 1만 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규모다. 제가 불이 났을 때 정말 절망스러운 상황이었는데 어느 집사님이 밥을 같이 먹자고 했다. 예배당이 불에 타고 1층에 크리스탈 강대상 녹아서 아기 주먹 크기 정도가 돼서 굳어진 것을 건진 것이 다였다. 집사님이 밥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했다. 언제 한번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다는 것이다. 어떻게 아셨냐고 했더니 말을 안해서 계속 추궁했더니 목사님이 너무 깝쳤다는 것이다. 사실 깝쳤다. 좋은 차는 가속도 좋아야 하지만 제동도 중요하다. 내려 놓을 때 내려 놓아야 하는 것이다. 천국 열쇠가 주어지는 자리는 아내와 자식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리다. 여러분은 대단한 분들이고 한국을 빛낸 분들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이 의식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예배당 뜰을 밟고 다니는 사람은 될지언정 제자는 될 수 없다. 우리는 다시 한번 회복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비전을 가져야 한다. 오늘 이 민족 이 미국이 복음의 전성기를 맡을 수 있도록 여러분이 밑거름 썩어가는 밀알이 돼야 한다.
‘회복과 비전’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올해 호산나대회에는 장순직 목사(원주드림교회)가 강사로 초청돼 뉴저지 지역 성도들에게 새로운 비전을 심어주게 된다. 강사 장순직 목사는 합동총회 부흥사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에도 민족복음화운동본부 상임회장, 한기부 실무회장을 맡고 있다.
장순직 목사는 첫날 성도들에게 ‘성공을 장악하라’(눅5:1-11)는 제목의 설교를 통해 신앙의 핵심을 잃어버리고 세속화되고 있는 이민교회의 현실을 꼬집으면서 완전한 내려놓음을 통한 헌신을 당부했다.
현재 시골교회 목회자로서 한국 내에서도 촉망받고 있는 강사목사로 활동하고 있는 장순직 목사는 시종 유쾌한 분위기 가운데서도 뼈있는 말씀으로 성도들의 마음을 새롭게 했다. 다음은 장순직 목사 설교 주요 내용.
‘성공을 장악하라’(눅5:1-11)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여러분의 신앙의 패러다임이 변화되기 바란다. 총 7가지 키워드를 주심으로 말씀을 전하고자 한다. 신앙의 7가지 단계를 구분해 봤다.
1. 소중한 것을 내가 드리는 단계
우리 신앙에 있어서 딜레마가 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말을 하지만 정말 내게 아까운 것을 하나님께 드린 경험이 없다. 우리는 대충 부담없이 체면치레로 오늘 내 이름값을 하느라고 그리고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묻어서 묻어서 여기까지왔다. 정말 피눈물을 쏟을만큼 아까운 것을 드린 경험이 없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드려야 하는데, 내게 있는 모든 것을 드린다고 하면서 지갑 속에 1달러를 찾고 없으면 다음에 5달러를 찾고 100달러만 있으면 깜짝 놀란다. 대충 예배시간도 때우고 지나간다.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해서 상처를 입을지도 모르겠지만 한국교회를 망치는 원인이 대형교회다. 저는 대형교회 하나보다는 500명 정도 되는 교회 1백개가 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분은 생각해야 한다. 그 1만명 모인 성도들의 분포도를 보면 기둥 뒤에서 부담없이 예배 드리고 부담없이 천국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여러분이 부담없이 예수님을 믿고 부담없이 천국갈 것이라면 아예 천국 가는 것을 포기하시기 바란다.
여러분 어떻게 부담없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미국교회를 보니까 너무 안타까워서 이 말씀을 드린다. 미국 이민교회의 문제는 온데간데 배우지 못한 신앙이 계속 이어지면서 2세와 그 다음 세대까지 흘러가고 있다. 귀한 것을 드릴 생각이 없고 그럴 부담도 없다. 그래서 부담없이 천국에 갈려고 하는 이민교회의 특징이 아닌가. 너무 혹평을 했는가. 그렇다면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정말 주님 앞에 드리고 아까워 할 정도로 귀한 것을 드린 적이 있는가.
2. 진정한 누림은 드림으로부터 시작
한국의 100만원짜리 전세에 돌아 누우면 벽이 나오는 곳에 식구들이 살았는데, 신학교 공부할 때였다. 그 전세방을 빼서 하나님께 드렸다. 그 때 너무도 행복했다. 그리고 하나님이 23평형 아파트를 선물로 주셨다. 한국에 살면서 ‘방빼’라는 소리가 너무 서러웠다. 돈을 내지 못해서 가난한 신학생을 만난 아내는 이 서러움 속에 쫓겨나서 싼 방 부담없는 방으로 찾아 찾아 갔던 곳이 100만원짜리 전세였다. 그런데 이것마저 빼서 하나님께 드렸더니 23평 아파트를 주셨다. 아내가 너무 감격해서 잠을 못잘 정도였다. 이제 연탄불을 갈지 않아도 되느냐고 물어봤다. 그렇게 23평형 아파트의 감격에 푹 빠져 있던 때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했을 때 하나님이 물어보셨다. ‘너는 그렇게 23평형 아파트가 좋으냐’ 거기에 저는 너무도 좋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너는 23평형 아파트를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은 것이 아니냐고 하셨다. 그 때 정신이 번쩍들었다.
강원도 첩첩산중에 목회를 시작할 때 전체 교인은 7명이었다. 거의 노인대학이었다. 그리고 성도들은 후보생이었다. 오늘 내일 요단강 건너려는 후보생이었다. 그런 척박한 환경 속에 23평형 아파트가 주어졌을 때 너무도 의지가 되고 든든했다. 그 전까지는 우리는 늘 그 척박한 목회지에서 까마귀가 먹을 것을 가져다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기다렸다.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됐다. 그런데 23평형 아파트가 생기고 나서 하나님을 향한 의존도가 점점 손상이 온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의 음성을 듣고 아내에게 아파트를 하나님께 드리자고 했다. 그런데 늘 하나님께 봉헌하자고 할 때 선뜻 그렇게 하자고 했던 아내가 예상과 달리 눈을 한번 흘리는 듯 하더니 두 눈에 눈물이 폭포수같이 흘러내렸다. 저는 그래서 아내에게 어차피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라고 했는데 아내는 그것은 알지만 안타깝다면서 계속 울었다. 마음이 약해져서 그냥 없던 일로 하고 넘겼다.
그 후 시간이 흘렀다. 교회에 갔더니 봉투가 놓였는데 아내가 봉헌한다는 것이다. 무엇인가 했더니 23평형 아파트 권리증이 들어있었다. 이것이 집문서다. 그 예배를 드리던 날 아내는 뒤돌아서 끝까지 어깨를 떨었다. 계속 울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날 이후 마음이 그렇게 편했다고 한다.
우리는 자꾸 끌어안으려고 한다. 적당한 때에 놓아야할 줄을 알아야 하는데 무엇인가 더 많이 더 크게 더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 괜찮다고 평가될 만큼 키우기를 원한다. 여러분 모두 소중한 그 무엇인가를 하나님께 내려놓는 사람들이 되기 바란다. 2번째 키워드는 진정한 누림은 드림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3. 은혜 거리를 유지하는 단계
필그림교회는 이민교회 중에서는 큰 교회다. 그런데 대부분의 이민교회들은 100명 미만 겨우 렌트비를 살고 사는 곳들이 너무도 많다. 작은 곳에서 서로 부딪히다보니 서로 알 것 모를 것을 다 알고 있다. 너무 가깝다보니까 안전거리가 없다. 차와 차 사이에 목회자와 성도 사이에 안전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아시는가. 예수님 시대때도 안전거리가 있어야 했다. 청중들에게 주님은 육성으로 복음을 전하셨다. 예수님은 해풍을 이용해서 멀리 전하려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육지에서 조금 배를 끌고 나와야 하셨다는 것이다. 이것을 은혜 거리라고 생각한다. 제가 여의도순복음교회 교역자들을 대상으로 했던 교육을 지금 여기서 하고 있다. 여러분 중에 돈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저도 물론 좋아한다. 안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돈을 어느 정도 거리에 두고 봐야지 돈도 보이고 형제도, 성도도 보이는 것인데 돈을 눈 앞에 가져다보니 돈 밖에 안보이는 것이다. 돈에 눈이 먼 것이다.
청각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것도 너무 멀면 들리지 않는다. 적당하게 봐야 잘 보이고 적당한 거리에서 들어야 잘 들린다. 성도들에게 부탁한다. 적당한 은혜의 거리를 갖기 바란다. 교회에 사람이 적다고 너무 가깝게 들어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교회에 여학생과 남학생이 교제를 하려고 했는데 어느 날 둘이 한참 가까워지려는 것 같더니 얼마 안가서 깨졌다고 한다. 정식으로 교제하자고 여학생이 이야기를 하러 둘이 벤치에 앉았는데 너무 가까이 있어서 여학생 콧속에 코딱지를 봤다고 한다. 그날로 남학생은 도망쳐 나왔다고 한다.
여러분 은혜 거리는 정말 필요한 것이다. 안전거리가 되는 것이다. 교회가 건강해지려면 가장 은혜스러워지는 자리가 있고 거리가 있다. 너무 가까이 있으니 고막만 아프고 소리가 안들린다. 그런데 너무 멀리 있으니 소리가 안들리고 입모양만 보인다. 은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이것이 두 번째 키워드다.
3. 의식전환의 단계-자기 중심적 경험, 자기 고정관념을 버리라
이민교회 안에 큰 딜레마가 있다. 전도를 하는데 너무 적은 바닥에서 뻔한 한국인들 틈에서 전도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어려울 수 있지만 늘 이 생각을 갖는다면 언제까지고 변할 수 없다. 제가 농촌목회를 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다 말렸다. 어장도 황금어장인 서울을 놔두고 지방으로 가는 저를 쪼다라고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내려가기로 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제일 겁주는 것은 ‘애들 교육은’이었다. 미국은 아닐지언정 서울도 아닌 유치원도 없는 강원도 농촌으로 간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저는 제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한 7년동안 배고프고 외로웠다. 사람은 오지 않고 각설이가 오거나 멧돼지나 나타났다. 새벽기도를 가면 아무도 없고 산에서 뱀이 내려와 기어다닐 때도 있었다. 7년을 그렇게 어렵고 힘들고 고단하게 목회를 했다 입을 것, 먹을 것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날 소음이 들리고 굉음이 들려서 문을 열고 봤더니 이 작은 동네에 사람은 없고 산짐승만 왔다갔다 하는 이 곳에 아파트가 들어왔다. 뒤에는 뒷파트, 앞에는 아파트 옆에는 옆파트다. 교인들이 몰려들어오는데 저는 30명만 되면 목회 소원이 없다고 생각했다. 50명이면 정말 원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30명 금방 돌파되고, 50명을 넘어 100명, 200명 500명을 넘었다. 사모가 목회자 사모들과 모임을 할 때 강원도에서 왔다고 하면 개장수 트럭에 실린 개를 불쌍하게 쳐다보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리고 밥을 많이 먹으라고 권한다. 그런데 그런 때를 지나 보니 그렇게 촌스럽던 강원도의 농촌의 목회자가 강사 섭외 1순위가 됐다. 웃자고 하는 이야기를 이해하고 들으시기 바란다.
어려운 농촌목회의 현장에서 그곳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장소라면 목회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목회를 했는데 제 그 판단이 옳았다는 것을 느낀다.
미국은 기회의 땅이다. 한국도 여러분만큼 일하고 열심히 살면 성공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이다. 그런데 먹고 살기 위해서만 일하지는 말기 바란다. 제 아들은 농촌에서 자랐지만 지금은 유학 중에 있다. 영어도 너무 잘하고 한국어도 저만큼이나 잘한다. 우리 모두의 의식이 전환되지 않는다면 교회의 미래는 장담하지 못한다. 날이 샜어도 고기는 잡을 수 있다.
4. 말씀에 의지하는 단계-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이다.
이번 성회에 모두 성령이 충만하기를 바란다. 이 미국 기회의 땅에 여러분이 살고 있는데 미국에서 힘겹게 얻어낸 영주권 시민권, 아니면 유창한 영어실력을 의지하는가? 제자들은 오직 말씀에 의지했을 때 성공할 수 있었다. 여러분도 내려놓고 가난해져야 한다. 말씀을 따라가고 말씀이 멈추는 곳에서는 여러분도 멈춰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오버액션을 한다. 말씀없이도 곧잘 간다. 성경이 뭐라고 말씀하시는지만 생각하기 바란다. 정말 영혼을 살리는 일에 있어서만큼은 내가 프로가 돼야 하는데 직장에서 인정받는 것에는 목숨을 바치면서 말씀을 의지하는데에는 초보가 되는 슬픈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저는 가끔 성도들의 학력을 보고 깜짝깜짝 놀란다. ‘나는 이대 나온 여자야’라는 말이 있듯이 정말 깜짝 놀랄 정도의 학력을 가진 이들이 있다. 그런데 저는 학력을 내세울 것도 없고 그냥 무릎꿇고 울고 하나님께 매달렸는데, 어느날 보니 그 고학력자들을 가르치는 선생이 돼 있었다. 겨우겨우 힘들게 공부해서 목회학석사 하나 받은 것이 저의 학력이 전부다. 그런데 강원도 목회, 첩첩산중의 환경이 나를 말씀에만 의지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저보다 더 책가방 끈이 긴 분들 앞에서 가르치는 위치에 서게됐다.
5. 협력하는 단계
여러분 명심하시기 바란다. 목사님과 장로님의 관계는 협력의 관계가 돼야 한다. 만일 베드로 사도가 혼자 그 그물을 던지고자 독식하고자 힘을 쓰고 그물을 쓰다가 그물코가 찢어졌다면 그물은 그물대로 망가지고 물고기도 다 빠져 나갔을 것이다. 그 때 필요한 것이 협력이다. 여러분 모두는 돌아가시게 되면 교회의 모든 분들과 협력하시기 바란다. 개성 강한 이민교회 성도들이다. 개성이 너무 강해서 날마다 싸운다. 상충한다. 힘을 쓰면 쓸 수록 깨지고 다투는 것이 상충이다. 목사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 장로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다. 힘은 영혼을 살리는데 써야 한다. 그런데 자꾸만 교회에서 상충하는데 힘을 쓴다. 툭하면 갈라졌다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이민교회에 사임했다는 목회자가 너무 많다. 집회 예약이 돼 있어서 비행기를 타고 갈려다보면 사임했다는 목회자가 있다. 상승은 서로 협동하면 할수록 살아나는 힘이다. 베드로가 정말 추구했던 힘은 상승이다. 여기에 시너지가 있다. 여기는 정말 똑똑하고 공부 잘하고 남들 보다 먼저 와서 시민권을 얻은 이민교회 성도들이 있는 곳이다. 여러분의 그 재능을 목회자와 함께 협력하고 교회에 상승을 가져다 줄 수 있도록 사용하기 바란다.
6. 엎드림의 단계
자꾸만 제가 지적하는 설교를 해서 될지 모르겠는데 훈수를 둘 수 있는 이유는 제가 밖에서 객관적인 입장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엎드리지 못하는 환경 속에 여러분이 살고 있다. 열심히 뛰지 않으면 어느 수준까지 맞춰 살 수 있는 이민사회 환경에서 살고 있는 여러분이다. 그런데 그 어느 곳도 기도하지 않고 이룰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런데 지금 새벽기도를 보면 너무도 안타깝다. 돌아가시거든 교회가 할 수 있는 회의는 최소화하시기 바란다. 회의는 하면 할수록 회의가 드는 것이다. 회사에서는 돈을 받고 일하는 입장에서 아무 소리도 안하다가 교회에서는 오히려 자기가 돈을 내니까 회의 때 목소리가 커진다. 영적인 일을 도모할 때 영적인 사람을 해야 하는데 영적이지 않은 사람이 이런 일을 맡게 되면, 돈이 많다는 이유로, 교회를 설립했다는 이유로 하게 되면 교회는 산으로 간다.
모세가 가나안 땅 갈 때 천부장 백부장 모아두고 회의하고 출발하지 않았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로 가실 때 회의하지 않으셨다. 요즘 교회들이 너무 민주주의 방식으로 가고 있다. 우리는 예배당 지을 때 카펫 하나 깔려고 해도 빨간색 깔아야 한다. 파란색 깔아야 한다. 그런 것을 두고 엄청나게 회의를 했다. 집에 치약 짜는 일 때문에 싸움이 일어난다고 한다. 치약을 중간에 누르는 사람, 끝에서 짜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이 부딪친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 가운데서 일을 할 때 물어보지 않는다. 사실 일주일만 지나면 아무도 모른다. 카펫을 아무 소리 없이 조용히 깔고 일주일 지나면 언제 깔았는지도 모르고 지나간다. 그 일주일 때문에 눈에 불을 켜고 회의하면서 싸움을 하는 것이다. 엎드림, 기도 외에는 다른 것이 나올 수 없다. 이것에 서공의
7. 내려 놓음의 단계
웰빙이란 단어가 한국에서 크게 유행했었다. 잘 살자는 것인데 중요한 것이 끝이다. 끝이 좋아야 하는 것이다.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려두고 주를 쫓았고 결국 그들의 삶은 영적인 풍요를 얻게 됐다. 그 동안 그렇게 극악스럽게 탐욕스럽게 또 남보다 더 잘살려고 악착같이 살았던 인생이 있다. 수 십 교회를 떠돌아 다닌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내려놓기를 바란다. 여기에 진정한 성공이 있다.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하고 마치고자 한다. 예배당에 불이 났었다. 새로 지을 때 돈이 많이 들었다. 예배당 좌석이 1천 명이고 2층을 트면 몇 부 예배를 드리면 1만 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규모다. 제가 불이 났을 때 정말 절망스러운 상황이었는데 어느 집사님이 밥을 같이 먹자고 했다. 예배당이 불에 타고 1층에 크리스탈 강대상 녹아서 아기 주먹 크기 정도가 돼서 굳어진 것을 건진 것이 다였다. 집사님이 밥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했다. 언제 한번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다는 것이다. 어떻게 아셨냐고 했더니 말을 안해서 계속 추궁했더니 목사님이 너무 깝쳤다는 것이다. 사실 깝쳤다. 좋은 차는 가속도 좋아야 하지만 제동도 중요하다. 내려 놓을 때 내려 놓아야 하는 것이다. 천국 열쇠가 주어지는 자리는 아내와 자식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리다. 여러분은 대단한 분들이고 한국을 빛낸 분들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이 의식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예배당 뜰을 밟고 다니는 사람은 될지언정 제자는 될 수 없다. 우리는 다시 한번 회복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비전을 가져야 한다. 오늘 이 민족 이 미국이 복음의 전성기를 맡을 수 있도록 여러분이 밑거름 썩어가는 밀알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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