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기독교100주년기념교회를 담임하고 계시는 이재철 목사님께서 오래 전에 <참으로 신실하게>라는 책을 쓰신 적이 있다. 그 책에서 이 목사님은 한동안 미국의 경영학계에 주목을 받았던 이론 하나를 소개하고 있다. 한국계 미국인인 Chan Kim이라는 교수가 주창한 가치혁신 이론이다. 이 이론의 핵심은 기업은 고객이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파악하여 그 가치를 창출해 내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혁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한때, 전세계적으로 극장 산업이 사양길을 걷던 적이 있었다. 그때 벨기에의 어느 극장주가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였다. 사람들이 20대를 끝으로 극장에 발길을 끊어 버린다는 것이다. 예전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극장을 찾았는데, 이상하게도 30대가 되기만 하면 극장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극장주가 그 이유를 찾아 본즉, 다음과 같은 내용 때문이었다.
첫째로, 30대란 대부분 자녀를 가진 부부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부부가 함께 극장에 가기 위해서는 매번 누군가에게 자녀를 맡겨야만 하는데, 그 번거로움을 꺼려한다는 것이다. 둘째로, 30대부터는 자기 소득 증대로 인해 자연히 안락한 삶을 추구하기 마련인 반면, 오래 전에 지어진 극장의 의자는 전후좌우가 모두 협소하여 2시간 동안 앉아 있기에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셋째로, 시대의 발전으로 30대는 거의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지만, 옛날 시내 중심에 자리잡은 극장엔 주차장이 전혀 없는 실정이었다. 일단 자동차를 생활화하기 시작한 사람이 오직 극장에 가기 위해 정거장까지 걸어가서 전차나 버스로 움직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넷째로, TV와 비디오의 발달로 단지 한편의 영화 감상을 위해 극장에 간다는 것은 별다른 매력일 수가 없었다.
이상과 같은 사실은 극장주로 하여금 30대 이후의 사람들이 극장과 관련하여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 주었다고 한다. 즉, 극장에 갈 때에는 손쉽게 자녀를 맡길 수 있어야 하고, 극장에 주차장이 구비되어 있어야 하며, 극장의 좌석은 안락해야 한다. 나아가 극장은 단순히 한 편의 영화 감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놀이터의 기능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확인한 극장주는 혁신적인 방안을 실행하기 시작했다. 즉, 시내 중심가가 아닌 변두리의 넓은 땅을 싼 가격에 구입하여 극장을 짓고, 주차장을 완비했다. 그리고 극장 안에 차일드케어를 설치하여 부모가 마음 놓고 영화를 감상할 수 있게 했다. 또한 크고 안락한 의자를 설치해 쾌적함을 높였다. 극장 안에 여러 개의 상영관을 두어 관객들이 원하는 대로 영화를 선택해 볼 수 있게 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극장 안에 스낵 코너와 게임기까지 설치하여 명실공히 종합적인 오락장이 되게 했다. 이 극장주의 가치혁신이 30대 이후 사람들의 큰 호응을 얻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것이 오늘날 세계적으로 붐을 일으키고 있는 복합상영관의 효시가 되었다.
기업은 고객을 왕으로 부른다. 고객 없는 기업이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기업이 그 존속을 가능하게 해 주는 왕이 추구하는 가치를 바르게 파악하여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혁신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면서 이재철 목사님은 이것을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에 다음과 같이 적용을 하고 있다. “크리스천이란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우리의 왕으로, 우리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즉, 크리스천은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요구하신 가치가 무엇인지를 바르게 깨닫고 그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중단 없이 자기 혁신을 꾀하는 자이어야만 합니다.”
참으로 귀한 통찰력이요, 가르침이 아닐 수 없다. 이재철 목사님의 이 마지막 언급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매일의 삶 속에서 놓치지 않고 붙들어야 마땅한 신앙의 자세라고 믿는다. 신앙생활이란 바로 내가 하나님의 언약 백성임을 확신하며 하나님의 뜻을 나의 현실의 삶 가운데 적용하며 실행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기 위해 우리에게 부여해 주신 가치를 끊임없이 구현하며 나를 주님께 드려가는 삶,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마땅한 모습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매일의 삶 속에서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니면 저것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분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과연 이 결정이 하나님을 위한 것인가, 과연 나의 이 결정이 하나님께서 나를 향하여 부여해 주신 그 가치와 의미에 부합하고 있는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한때, 전세계적으로 극장 산업이 사양길을 걷던 적이 있었다. 그때 벨기에의 어느 극장주가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였다. 사람들이 20대를 끝으로 극장에 발길을 끊어 버린다는 것이다. 예전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극장을 찾았는데, 이상하게도 30대가 되기만 하면 극장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극장주가 그 이유를 찾아 본즉, 다음과 같은 내용 때문이었다.
첫째로, 30대란 대부분 자녀를 가진 부부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부부가 함께 극장에 가기 위해서는 매번 누군가에게 자녀를 맡겨야만 하는데, 그 번거로움을 꺼려한다는 것이다. 둘째로, 30대부터는 자기 소득 증대로 인해 자연히 안락한 삶을 추구하기 마련인 반면, 오래 전에 지어진 극장의 의자는 전후좌우가 모두 협소하여 2시간 동안 앉아 있기에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셋째로, 시대의 발전으로 30대는 거의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지만, 옛날 시내 중심에 자리잡은 극장엔 주차장이 전혀 없는 실정이었다. 일단 자동차를 생활화하기 시작한 사람이 오직 극장에 가기 위해 정거장까지 걸어가서 전차나 버스로 움직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넷째로, TV와 비디오의 발달로 단지 한편의 영화 감상을 위해 극장에 간다는 것은 별다른 매력일 수가 없었다.
이상과 같은 사실은 극장주로 하여금 30대 이후의 사람들이 극장과 관련하여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 주었다고 한다. 즉, 극장에 갈 때에는 손쉽게 자녀를 맡길 수 있어야 하고, 극장에 주차장이 구비되어 있어야 하며, 극장의 좌석은 안락해야 한다. 나아가 극장은 단순히 한 편의 영화 감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놀이터의 기능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확인한 극장주는 혁신적인 방안을 실행하기 시작했다. 즉, 시내 중심가가 아닌 변두리의 넓은 땅을 싼 가격에 구입하여 극장을 짓고, 주차장을 완비했다. 그리고 극장 안에 차일드케어를 설치하여 부모가 마음 놓고 영화를 감상할 수 있게 했다. 또한 크고 안락한 의자를 설치해 쾌적함을 높였다. 극장 안에 여러 개의 상영관을 두어 관객들이 원하는 대로 영화를 선택해 볼 수 있게 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극장 안에 스낵 코너와 게임기까지 설치하여 명실공히 종합적인 오락장이 되게 했다. 이 극장주의 가치혁신이 30대 이후 사람들의 큰 호응을 얻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것이 오늘날 세계적으로 붐을 일으키고 있는 복합상영관의 효시가 되었다.
기업은 고객을 왕으로 부른다. 고객 없는 기업이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기업이 그 존속을 가능하게 해 주는 왕이 추구하는 가치를 바르게 파악하여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혁신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면서 이재철 목사님은 이것을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에 다음과 같이 적용을 하고 있다. “크리스천이란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우리의 왕으로, 우리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즉, 크리스천은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요구하신 가치가 무엇인지를 바르게 깨닫고 그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중단 없이 자기 혁신을 꾀하는 자이어야만 합니다.”
참으로 귀한 통찰력이요, 가르침이 아닐 수 없다. 이재철 목사님의 이 마지막 언급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매일의 삶 속에서 놓치지 않고 붙들어야 마땅한 신앙의 자세라고 믿는다. 신앙생활이란 바로 내가 하나님의 언약 백성임을 확신하며 하나님의 뜻을 나의 현실의 삶 가운데 적용하며 실행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기 위해 우리에게 부여해 주신 가치를 끊임없이 구현하며 나를 주님께 드려가는 삶,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마땅한 모습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매일의 삶 속에서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니면 저것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분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과연 이 결정이 하나님을 위한 것인가, 과연 나의 이 결정이 하나님께서 나를 향하여 부여해 주신 그 가치와 의미에 부합하고 있는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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