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북한 국방위원회가 30일 남측 정부를 향해 "리명박 역적패당과는 영원히 상종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세밑 한반도 정세에 날선 대치 전선이 형성되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추도기간이 끝나기 무섭게 북한의 최고 정책결정기구인 국방위가 전례없이 강경한 대남노선을 천명하고 나온 것이다.
특히 '김정은 체제'의 정책노선이 첫선을 보일 새해 1월1일 신년 공동사설 발표를 목전에 두고 나온 국방위 차원의 성명이라는 점에서 더욱 예사롭지 않다는 분석이다.
물론 북한이 1994년 김일성 주석의 추도대회 다음 날에도 당시 김영삼 대통령을 실명 비난했다는 점에서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내용과 성명의 주체 면에서 그 수위가 훨씬 높다는 점에 외교가는 주목하고 있다.
일단 북한 국방위의 이 같은 강경한 대남성명은 고도의 '계산된' 중층적 전략일 것으로 추정된다. 내부를 추스르는 동시에 외부로부터 경제ㆍ식량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한 북한 특유의 '외교'가 시작됐다는 분석이다.
우선 의도적인 '남한 때리기'로 내부 결속을 도모하려는 포석이 강해 보인다. 권력기반이 취약한 김정은으로서는 대외적으로 강경하게 나갈 유인을 느끼고 있고 그 대상이 남측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조문제한이 그 구실이 되고 있는 셈이다.
동시에 한반도 정세의 '새판짜기' 틀 속에서 남한의 선택을 압박하기 위한 고강도의 전술이 깔려있다.
김정일 사망 이후 대북정책 기조의 전환을 놓고 고심 중인 우리 정부에 대해 보다 더 근본적인 정책변화를 보이라는 압박으로도 보인다. 국방위 성명이 전체적인 대남 강경일색 속에서도 '6ㆍ15 공동선언과 10ㆍ4선언'을 강조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내년초 강성대국 건설 원년을 선포해야할 북한으로서는 남한으로부터 일정한 경제지원을 끌어내고 금강산 관광과 같은 '캐시카우(수익창출원)'가 절실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이 이미 이명박 정부와는 남북관계 개선이 어렵다고 보고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을 기도하고 있다는 분석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국방위 성명이 남한을 강경하게 비난하면서도 미국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앞으로 미국과의 양자대화(북미 3차대화)와 6자회담 재개를 염두에 둔 포석일 가능성이 높다고 외교소식통들은 보고있다.
미국과의 '빅딜'을 통해 대규모 식량ㆍ경제지원을 이끌어내고 이를 6자회담의 틀 속에서 추인받는 구도로 가려는 수법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남측이 기존 대북정책 기조를 고수할 경우 남북관계 실패의 책임을 남측에 전가하고 앞으로 남측을 소외시키는 형태의 북미 양자대화와 6자회담 재개 국면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국방위의 이 같은 강경한 입장표명이 과연 김정은 체제의 정책노선을 정확히 대변하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시각도 없지 않다. 국방위가 김정일 체제하에서는 명실상부한 최고 의사결정기구였으나 당 중앙군사위를 기반으로 하는 김정은 체제 하에서도 같은 위상과 역할을 수행할 지 미지수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김정은 체제가 지향할 정책 청사진의 정확한 밑그림은 내년 1월1일 신년 공동사설을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김정일 유훈정치라는 큰 틀에서 보면 국방위 성명의 기조에 따라 대남 강경론이 우세할 것이라는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남북관계와 6자회담을 두개의 축으로 하는 한반도 정세는 매우 미묘하게 돌아갈 가능성이 커졌다.
남과 북이 조문문제를 고리로 신경전을 벌이고 이것이 강(强) 대 강(强)의 대치구도로 간다면 남북관계가 단절된 채 북미 대화와 6자회담 재개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문제는 남북관계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경우 한반도 정세 전반이 불안정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특히 북측이 차기정부와 거래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내년 총선과 대선에 영향을 주기위한 공세를 펴거나 경우에 따라 도발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여기에 6자회담 재개로 이어지는 한반도 대화국면에서 한국 정부가 배제된 채 북미에 의해 주도되는 외교적 고립상황이 재연될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우리 정부로서는 대북 정책기조 전환을 놓고 선택의 기로에 놓인 형국이다. 한반도 주변 4강의 외교적 흐름에 발맞춰 대북 정책기조를 선회할 전략적 필요성도 있지만 집권 4년간 지켜온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특히 현시점에서 천안함.연평도 문제를 매듭짓지 않고 대북정책 기조를 전환한다면 내년 선거를 앞두고 핵심 보수층의 이탈과 반발을 감수해야 하는 정치적 위험성이 적지 않다. 대외적 흐름과 국내적 여론을 아우르는 '전략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높다. 이런 측면에서 다음달 2일 이명박 대통령의 신년 특별연설을 통해 발표될 대북 메시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새해 한반도 정세는 남과 북의 첨예한 신경전속에서 '살얼음판' 같은 첫걸음을 떼게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