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싱톤중앙장로교회(담임 노창수 목사) 원로 이원상 목사의 장모, 강옥화 권사의 백수 감사예배가 10일(토) 오전 11시 교회 다목적실에서 열렸다. 지난 12월 3일 100세 생일을 맞은 강옥화 권사는 1977년 사위인 이원상 목사가 와싱톤중앙장로교회에 부임하면서 부터 기도와 금식으로 중보하고 교회를 섬겨오며 목회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왔다.
이원상 목사는 “조용히 가족 간의 축하잔치로 넘어가려 했는 데,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시라는 노창수 목사님의 간곡한 부탁이 있었다. 장모님의 100세 생신을 맞아 그동안 감사했던 분들께 식사라도 대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 이렇게 여러분들을 모시게 됐다”며 참석한 이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달했다.
강 권사의 백수를 축하하기 위해 지역에서도 많은 목회자, 교인들이 참석해 자리를 가득 메웠다.
노창수 목사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눅 2:36~40)”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면서 “기도의 여종이신 강 권사님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교회와 목사님을 위해 많은 분들이 기도했지만 그 한복판에 권사님의 기도가 있었다는 것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안나 선지자가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겼던 것 같이 섬기셨던 권사님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가정과 와싱톤중앙장로교회의 밀알이 되어주셔서 감사한다”고 말했다.
주변인으로부터 평생을 하나님께 헌신한 섬김과 기도의 사람이라 증거받는 강 권사의 백수 감사예배에는 노창수 목사의 말씀, 박신욱 목사, 이 유니스(손녀), 이영자 사모(딸), 이원상 목사(사위)의 감사의 시간, 오찬, 축하공연, 생일케잌 커팅식 등이 마련됐다.
와싱톤중앙장로교회 제 1호 선교사이자 현재 SEED 인터내셔널 국제총무를 맡고 있는 박신욱 목사는 “일생을 살면서 많은 일을 하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1~2가지라도 확실히 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깨닫는다”면서 “강 권사님은 평생 섬기고 기도만 하셨는데 하나님께서 이런 축복의 자리까지 인도하신 것이다. 주님을 위해 수많은 성도를 목양하는 목사님을 위해 교회를 위해 기도하신 권사님께 부어주신 하나님의 축복이 여기 오신 많은 분들께도 임하길 기도한다”고 했다.
강 권사의 손녀인 이유니스 씨는 “밤 늦게까지 기도하시면서도 새벽 5시면 일어나 새벽기도에 가시던 할머니는 잠잔 시간 보다 기도한 시간이 더 많았던 것 같다”며 “할머니가 부르실 때 마다 눈물을 흘리시고, 가장 좋아하는 ‘나 같이 죄인 살리신’ 찬양은 연속해서 50번은 지겹지 않게 부르실 수 있을 정도”라고 했다.
또 “잘못한 일이 있어서 매를 맞을 때는 몰래 2층으로 데려와 내복 5개를 입혀주시던 우리 할머니”라며 “7살 때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어떻게 하나 너무 두려워서 울며 잠이 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30년이 지난 지금도 저희 옆에서 많은 사랑을 주시는 할머니가 있어 너무 좋다”고 말했다.
손자이자 목회자가 된 이요셉 목사는 “할머니는 늘 영원히 남아지는 일, 손자 손녀에게 대대로 전해줄 수 있는 일을 하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을 위한 인생을 살라고 입버릇 처럼 말씀 하셨다”며 “늘 소유를 잡고 살고 있던 내가 지금 이 자리에 목회자로 서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할머니가 제 가슴 속에 넣어준 삶의 가치관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감사를 돌렸다.
또 이 목사는 “좋은 음식이 있으면 자신이 먹기 전에 늘 누구에게 이 축복을 나눠줄 수 있을까 살피셨던 할머니, 자신의 꿈과 욕심을 내려놓고 자식을 위해 가정을 위해 교회를 위해 사신 할머니의 수십년의 섬김으로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딸인 이영자 사모도 어머니의 일대기를 훑으며 어렵고 힘들어 밥도 죽도 먹을 수 없던 때를 회상하면서 “그래도 자식 공부는 시켜야 된다며 온 동네를 도시며 돈을 구하셔서 늦게였지만 대학 학비를 내 주시며 고생 참 많이 하셨다”며 “배가 고파도 먹을 것이 없어, 동치미 국물을 마시면서도 찡그림 하나 없이 웃으며 공부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어머니의 공”이라고 말했다.
이 사모는 “어려워도 목사님 가정 연탄 부터 채워드리고, 한국에 지낼 때 아프셨던 교회 목사님을 위해 3년 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철야기도를 하셨던 어머니는 기도와 믿음을 삶의 본으로 보여주신 분”이라며 “지금도 늘 기도제목은 세계 선교인 어머니는 이원상 목사님 설교하시기 전에는 음식도 입에 대지 않고 중보하셨고, 교인들이 어려운 일이 있으면 금식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셨던 분”이라고 증거했다.
이원상 목사도 “한 일화로, 저는 덮을 것이 있는데도 자기는 담요가 2개 있으니 늘 담요 하나를 더 가지고 가라고 하실 정도로, 늘 다른 사람을 생각하시는 분”이라며 “22살 때 제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46년 간 장모님(권사님)과 함께 있으며 유전인자는 물려받지 않았지만 후천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았던 어머니 같은 분”이라고 소개했다.
강옥화 권사는 3남2녀를 낳았으며 손자 7명과 손녀 1명, 증손자와 증손녀가 총 16명이 있다. 이날 강 권사는 “이렇게 귀하신 분들이 지역에서 나를 축하해 주기 위해 많이 와주셔서 감사드린다”며 “이 지역과 교회가 영적으로나 질적으로, 양적으로 큰 축복을 누리게 되길 기도한다”고 밝혔다.
이원상 목사는 “조용히 가족 간의 축하잔치로 넘어가려 했는 데,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시라는 노창수 목사님의 간곡한 부탁이 있었다. 장모님의 100세 생신을 맞아 그동안 감사했던 분들께 식사라도 대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 이렇게 여러분들을 모시게 됐다”며 참석한 이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달했다.
강 권사의 백수를 축하하기 위해 지역에서도 많은 목회자, 교인들이 참석해 자리를 가득 메웠다.
노창수 목사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눅 2:36~40)”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면서 “기도의 여종이신 강 권사님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교회와 목사님을 위해 많은 분들이 기도했지만 그 한복판에 권사님의 기도가 있었다는 것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안나 선지자가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겼던 것 같이 섬기셨던 권사님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가정과 와싱톤중앙장로교회의 밀알이 되어주셔서 감사한다”고 말했다.
▲(오른쪽부터)이원상 목사, 강옥화 권사, 이영자 사모가 케잌커팅식을 하고 있다. 맨 왼쪽은 케잌을 손수 제작한 요리전문가 장재옥 권사. | |
주변인으로부터 평생을 하나님께 헌신한 섬김과 기도의 사람이라 증거받는 강 권사의 백수 감사예배에는 노창수 목사의 말씀, 박신욱 목사, 이 유니스(손녀), 이영자 사모(딸), 이원상 목사(사위)의 감사의 시간, 오찬, 축하공연, 생일케잌 커팅식 등이 마련됐다.
와싱톤중앙장로교회 제 1호 선교사이자 현재 SEED 인터내셔널 국제총무를 맡고 있는 박신욱 목사는 “일생을 살면서 많은 일을 하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1~2가지라도 확실히 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깨닫는다”면서 “강 권사님은 평생 섬기고 기도만 하셨는데 하나님께서 이런 축복의 자리까지 인도하신 것이다. 주님을 위해 수많은 성도를 목양하는 목사님을 위해 교회를 위해 기도하신 권사님께 부어주신 하나님의 축복이 여기 오신 많은 분들께도 임하길 기도한다”고 했다.
강 권사의 손녀인 이유니스 씨는 “밤 늦게까지 기도하시면서도 새벽 5시면 일어나 새벽기도에 가시던 할머니는 잠잔 시간 보다 기도한 시간이 더 많았던 것 같다”며 “할머니가 부르실 때 마다 눈물을 흘리시고, 가장 좋아하는 ‘나 같이 죄인 살리신’ 찬양은 연속해서 50번은 지겹지 않게 부르실 수 있을 정도”라고 했다.
또 “잘못한 일이 있어서 매를 맞을 때는 몰래 2층으로 데려와 내복 5개를 입혀주시던 우리 할머니”라며 “7살 때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어떻게 하나 너무 두려워서 울며 잠이 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30년이 지난 지금도 저희 옆에서 많은 사랑을 주시는 할머니가 있어 너무 좋다”고 말했다.
손자이자 목회자가 된 이요셉 목사는 “할머니는 늘 영원히 남아지는 일, 손자 손녀에게 대대로 전해줄 수 있는 일을 하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을 위한 인생을 살라고 입버릇 처럼 말씀 하셨다”며 “늘 소유를 잡고 살고 있던 내가 지금 이 자리에 목회자로 서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할머니가 제 가슴 속에 넣어준 삶의 가치관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감사를 돌렸다.
또 이 목사는 “좋은 음식이 있으면 자신이 먹기 전에 늘 누구에게 이 축복을 나눠줄 수 있을까 살피셨던 할머니, 자신의 꿈과 욕심을 내려놓고 자식을 위해 가정을 위해 교회를 위해 사신 할머니의 수십년의 섬김으로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증손자, 증손녀들의 축하 꽃다발을 받고 있는 강옥화 권사. | |
딸인 이영자 사모도 어머니의 일대기를 훑으며 어렵고 힘들어 밥도 죽도 먹을 수 없던 때를 회상하면서 “그래도 자식 공부는 시켜야 된다며 온 동네를 도시며 돈을 구하셔서 늦게였지만 대학 학비를 내 주시며 고생 참 많이 하셨다”며 “배가 고파도 먹을 것이 없어, 동치미 국물을 마시면서도 찡그림 하나 없이 웃으며 공부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어머니의 공”이라고 말했다.
이 사모는 “어려워도 목사님 가정 연탄 부터 채워드리고, 한국에 지낼 때 아프셨던 교회 목사님을 위해 3년 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철야기도를 하셨던 어머니는 기도와 믿음을 삶의 본으로 보여주신 분”이라며 “지금도 늘 기도제목은 세계 선교인 어머니는 이원상 목사님 설교하시기 전에는 음식도 입에 대지 않고 중보하셨고, 교인들이 어려운 일이 있으면 금식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셨던 분”이라고 증거했다.
이원상 목사도 “한 일화로, 저는 덮을 것이 있는데도 자기는 담요가 2개 있으니 늘 담요 하나를 더 가지고 가라고 하실 정도로, 늘 다른 사람을 생각하시는 분”이라며 “22살 때 제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46년 간 장모님(권사님)과 함께 있으며 유전인자는 물려받지 않았지만 후천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았던 어머니 같은 분”이라고 소개했다.
강옥화 권사는 3남2녀를 낳았으며 손자 7명과 손녀 1명, 증손자와 증손녀가 총 16명이 있다. 이날 강 권사는 “이렇게 귀하신 분들이 지역에서 나를 축하해 주기 위해 많이 와주셔서 감사드린다”며 “이 지역과 교회가 영적으로나 질적으로, 양적으로 큰 축복을 누리게 되길 기도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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