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이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면 선교사는 ‘사랑의 가슴’을 남기는 듯 하다. 지난 11월 11일 남편의 사고소식을 듣고 폐암 투병 중에도 기어코 탄자니아로 간 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작스런 저혈압으로 세상을 떠난 고 박경순 선교사. 그의 추모예배가 열린 4일(주일) 와싱톤한인교회에는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인연들이 예배당을 가득 메웠다.
“작고 아담한 여인이었지만, 잔잔한 미소와 넓은 가슴으로 수많은 영혼을 품었던 여인”으로 기억되는 고 박경순 선교사. 아들에게는 “스키장에서 굴렀을 때 아들을 구하려고 함께 몸을 굴려 팔이 부러지기도 했던 희생적인 어머니”였고, 단기선교를 온 이들에게는 “(본인도 2년 동안 말라리아에 11번 걸리는 고생을 했지만) 자신의 잠자리를 내주고 모기장을 쳐 주면서, 스폰지를 깔고 맨바닥에 자던 희생의 여인”으로 새겨져 있었다.
그녀는 2012년 1월 개교 예정이던 탄자니아 산돌기독학교의 개교를 결국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자신이 16년 간 품었던 탄자니아 영혼들의 땅에서.
추모예배에서 위로의 말씀을 전한 김영봉 목사는 “마치 죽음을 예감하신 듯 공사 중인 산돌학교를 한 밤중에 돌아보시고, 새벽에 돌아가셨다”며 “인간의 의식보다 더 큰 영성이 그 분을 이끌어 가셨다. 마지막 자취를 통해 자신이 믿던 것,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헌신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선명히 보여주셨다”고 추모했다.
장남 박영훈 씨는 “제가 알고 있던 분 중 가장 사랑이 많고 희생적인 분이 어머니셨다”면서 “동생과 함께 울고 이야기하고 때로는 화가 나기도 했지만 결국 누구도 원망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죽음은 바꿀 수 없는 것이지만, 어머니의 죽음이 앞으로 많은 생명을 바꾸리라 믿는다”고 전했다.
추모사를 전한 민원기 집사는 “고 박경순 선교사님은 병아리를 모아 안는 암탉과 같았던 분”이라고 회고하면서 “탄자니아 현지 기숙사 학생 70여명의 신원 하나하나를 아시고 어려운 가정환경을 말씀해 주시면서 한 명 한 명 눈물로 기도하며 헌신하는 모습이 꼭 자기 집안 식구를 돌보는 사람 같았다”고 했다. 또 “스와힐리어에 능통해 현지인들에게 영어를 가르치시며 선교사역을 감당하던 열정의 여인”이셨다고도 했다.
동부아프리카선교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창범 집사는 “24년 전, 버크에 교회를 개척하셨을 때 아내 손에 이끌려 처음 가 본 교회에서 선교사님을 처음 만났다. 제가 여전히 세상을 더 사랑할 때 그리스도의 사랑을 몸소 보여주신 분이셨다”며 “당시 아주 어렵고 위험한 일을 하고 있던 저를 위해 자주 안부를 물으시던 사모님은 어느 날 밥을 먹지 않은 저를 위해 뜨거운 여름날 차에서 기다리고 계시다가 밥상을 차려 주차장에 펼쳐놓으시기도 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박경순 선교사는 지난해 초 폐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마친 후 워싱턴 지역에서 한동안 요양중이었다. 그러다 최근 탄자니아에 있던 박윤석 선교사가 리빙스톤 중고등학교 개교를 앞두고 학생 모집차 순회중에 자동차가 언덕아래로 세바퀴 뒹구는 사고를 당해 이를 돕고자 현지에 방문했다가 갑작스런 저혈압으로 세상을 떠났다.
박경순 선교사는 남편 박윤석 선교사와 함께 미국에서 10년 간 교회사역,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17년간 선교사역을 담당했다. 2010년에는 정신 여자 중,고등학교에서 자랑스런 정신인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특히, 황무지나 다름없던 탄자니아 탕가 지역에서는 산돌 기독교 중, 고등학교(Living Stone Seminary) 등 기독교 지도자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신학교를 세워 수십명의 현지 목회자를 양성했다. 이에 와싱톤한인교회, 베다니장로교회, 올네이션스교회 등 워싱턴 지역의 많은 교회들도 그들의 사역을 기도와 물질로 협력하고 있다.
김영봉 목사는 “터툴리안은 순교의 피는 땅에 스며들어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순교가 어떤 열매를 맺을 지 알 수 없지만 나중에 우리는 눈으로 확인하게 될 것”이라며 어머니를 잃은 영훈, 영준 형제에게 “지금의 많은 사람들의 위로와 관심은 곧 사라질 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순교자의 자손을 결코 내버려 두시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위로했다.
이날 추모예배는 김미혜 목사가 집례, 오광섭 목사가 기도, 이용례 권사가 ‘겸손’ 찬양, 김영봉 목사의 위로의 말씀, 박영훈(장남), 민원기 집사, 김창범 집사의 추모사, 이상남 장로의 인사, 홍원기 목사의 축도로 이뤄졌다. 이후 와싱톤한인교회에서 준비한 다과로 위로와 친교 시간이 있었다.
추모예배의 조의금과 후원금은 산돌기독교중,고등학교(Living Stone Seminary)를 위해 쓰여진다. 조의금과 후원금은 ‘E. A. M. F.’로 기재해 동부아프리카 선교회(41480 Blincoe Ct., Leesburg, VA 20175)로 보내면 된다.
문의) 703-448-1131(교회), 703-577-1173, 1184(선교회)
“작고 아담한 여인이었지만, 잔잔한 미소와 넓은 가슴으로 수많은 영혼을 품었던 여인”으로 기억되는 고 박경순 선교사. 아들에게는 “스키장에서 굴렀을 때 아들을 구하려고 함께 몸을 굴려 팔이 부러지기도 했던 희생적인 어머니”였고, 단기선교를 온 이들에게는 “(본인도 2년 동안 말라리아에 11번 걸리는 고생을 했지만) 자신의 잠자리를 내주고 모기장을 쳐 주면서, 스폰지를 깔고 맨바닥에 자던 희생의 여인”으로 새겨져 있었다.
▲생전 고 박경순 선교사가 좋아했던 찬양 '겸손'을 부르고 있는 이용례 권사. | |
그녀는 2012년 1월 개교 예정이던 탄자니아 산돌기독학교의 개교를 결국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자신이 16년 간 품었던 탄자니아 영혼들의 땅에서.
추모예배에서 위로의 말씀을 전한 김영봉 목사는 “마치 죽음을 예감하신 듯 공사 중인 산돌학교를 한 밤중에 돌아보시고, 새벽에 돌아가셨다”며 “인간의 의식보다 더 큰 영성이 그 분을 이끌어 가셨다. 마지막 자취를 통해 자신이 믿던 것,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헌신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선명히 보여주셨다”고 추모했다.
장남 박영훈 씨는 “제가 알고 있던 분 중 가장 사랑이 많고 희생적인 분이 어머니셨다”면서 “동생과 함께 울고 이야기하고 때로는 화가 나기도 했지만 결국 누구도 원망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죽음은 바꿀 수 없는 것이지만, 어머니의 죽음이 앞으로 많은 생명을 바꾸리라 믿는다”고 전했다.
추모사를 전한 민원기 집사는 “고 박경순 선교사님은 병아리를 모아 안는 암탉과 같았던 분”이라고 회고하면서 “탄자니아 현지 기숙사 학생 70여명의 신원 하나하나를 아시고 어려운 가정환경을 말씀해 주시면서 한 명 한 명 눈물로 기도하며 헌신하는 모습이 꼭 자기 집안 식구를 돌보는 사람 같았다”고 했다. 또 “스와힐리어에 능통해 현지인들에게 영어를 가르치시며 선교사역을 감당하던 열정의 여인”이셨다고도 했다.
▲위로의 말씀을 전하는 김영봉 목사. | |
동부아프리카선교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창범 집사는 “24년 전, 버크에 교회를 개척하셨을 때 아내 손에 이끌려 처음 가 본 교회에서 선교사님을 처음 만났다. 제가 여전히 세상을 더 사랑할 때 그리스도의 사랑을 몸소 보여주신 분이셨다”며 “당시 아주 어렵고 위험한 일을 하고 있던 저를 위해 자주 안부를 물으시던 사모님은 어느 날 밥을 먹지 않은 저를 위해 뜨거운 여름날 차에서 기다리고 계시다가 밥상을 차려 주차장에 펼쳐놓으시기도 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박경순 선교사는 지난해 초 폐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마친 후 워싱턴 지역에서 한동안 요양중이었다. 그러다 최근 탄자니아에 있던 박윤석 선교사가 리빙스톤 중고등학교 개교를 앞두고 학생 모집차 순회중에 자동차가 언덕아래로 세바퀴 뒹구는 사고를 당해 이를 돕고자 현지에 방문했다가 갑작스런 저혈압으로 세상을 떠났다.
박경순 선교사는 남편 박윤석 선교사와 함께 미국에서 10년 간 교회사역,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17년간 선교사역을 담당했다. 2010년에는 정신 여자 중,고등학교에서 자랑스런 정신인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특히, 황무지나 다름없던 탄자니아 탕가 지역에서는 산돌 기독교 중, 고등학교(Living Stone Seminary) 등 기독교 지도자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신학교를 세워 수십명의 현지 목회자를 양성했다. 이에 와싱톤한인교회, 베다니장로교회, 올네이션스교회 등 워싱턴 지역의 많은 교회들도 그들의 사역을 기도와 물질로 협력하고 있다.
김영봉 목사는 “터툴리안은 순교의 피는 땅에 스며들어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순교가 어떤 열매를 맺을 지 알 수 없지만 나중에 우리는 눈으로 확인하게 될 것”이라며 어머니를 잃은 영훈, 영준 형제에게 “지금의 많은 사람들의 위로와 관심은 곧 사라질 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순교자의 자손을 결코 내버려 두시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위로했다.
▲축도하는 홍원기 목사. | |
추모예배의 조의금과 후원금은 산돌기독교중,고등학교(Living Stone Seminary)를 위해 쓰여진다. 조의금과 후원금은 ‘E. A. M. F.’로 기재해 동부아프리카 선교회(41480 Blincoe Ct., Leesburg, VA 20175)로 보내면 된다.
문의) 703-448-1131(교회), 703-577-1173, 1184(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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