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필 형제가 홀연히 주님 곁으로 간 지도 한 달이 넘었습니다.

두 주간 화요 모임에 나오지 않아 무슨 일이 있나 염려 중에, 온 몸이 바이러스에 감염돼 어떻게 해 볼 수 없다는 의사의 진단과 필리핀에서 부모님이신 고영집, 고순영 선교사님께서 오셨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 다음 날 임종 예배를 드린다는 엄청난 소식에 급히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관필 형제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 앞에 관필 형제는 여러가지 호스들을 몸에 꽂은채 누워 있었습니다. 목사님의 마지막 기도 후에 관필 형제는 찾아 온 얼굴들을 잊지 않고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눈에 촛점을 맞추고 온 병실을 휘둘러 본 후 눈을 감고는 그대로 평안히 주님께로 갔습니다.

관필 형제가 떠난 후 화요 모임에 참석하는 우리들은 조용 조용 관필 형제의 빈 자리를 이야기합니다.

관필 형제가 떠나기 얼마 전부터 가슴을 손으로 가르키며 “아파, 아파” 했는데 그걸 미쳐 깨닫지 못했다며 가슴 아파하시는 정택정 목사님.

부엌 한 편에 덩그라니 놓인 후레드 형제의 도시락 가방을 보며 “아이고, 관필이 도시락 가방은 어디있나” 하며 눈시울을 붉히는 정일분 사모님.

활기찬 걸음거리와 큰 소리로 도시락 가방을 흔들며 들어 오던 모습이 훤하고,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 때면 옆에서 꼭 먼저 시식을 했는데 하며 그 빈 자리를 이야기 하는 집사님.

작은 목소리로 관필 형제가 지금도 저기 서 있는 것 같다는 자매님.

관필이가 없으니 마음이 휑하니 허전하시다는 권사님들.

찬양시간에 흥이 나면 어깨 춤을 추며 힙합 댄스를 보여주던 모습.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며 큰 소리로 후레드 형제를 향해 “밷(bad) 밷(bad)” 외치던 모습.

자기 도시락 가방을 후레드 형제에게 들리곤 으시대며 현관문을 걸어나가던 모습.

광고 쪽지에서 용케도 자신이 갖고 싶은 운동화나 티셔츠를 잘라와 보여주고는 사달라며 두 눈이 다 감기듯 눈웃음을 짓다가도 당당히 내놓으라는듯 큰 소리로 벌컥하던 모습.

자신을 알아줄 듯한 여집사님들에게 괜시리 울먹이며 안겨 오던 모습.

콜라 한 캔을 받아 들고 수줍은 듯 “Jesus loves me ”를 말할 때 유독 Me~에 액센트를 주며 자기 가슴을 툭툭치며 히죽 웃던 모습.

이렇듯 밀알 친교실, 예배실, 부엌, 구석구석에 관필 형제의 빈자리가 아직도 남아 있고 우리 화요 밀알 단원의 가슴에도 관필 형제의 빈 자리가 남아 있습니다.

매월 첫번째 화요일 미용 시간 때, 순서 챠트 제일 윗자리에 꼬박 꼬박 힘주어 써놓았던 Kwan Phil Koh 라는 이름.

그 글자가 제 마음에 가장 깊이 남아 있습니다. 비록 알파벳의 모양의 좌우가 바뀌어 바르게 씌여지진 않았지만, 한 획 한 획을 분명하고도 힘차게 써 놓은 글자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생각은 제게 큰 빈 자리로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 어머니이신 고순영 선교사님으로부터, 관필 형제가 그렇게 자신의 이름을 쓰기까지 20년의 훈련이 필요했다는 이야길 듣고는 충격과 함께 마음이 묵직하니 아파왔습니다.

관필 형제가 무언가 자신의 이야기를 열심히 하는데도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겠다는 핑게로,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이며 마음으로 들을 생각은 아예 접은 체 건성 건성 넘어 갔던 제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관필 형제를 진정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어느새 타성처럼 그래 또 늘 그렇겠지 하며 지나쳐버린 무관심에 마음이 아파왔습니다.

고순영 선교사님의 이야기처럼 장애인을 대할 때는, 이렇게 오랜 시간을 반복하여 정성을 들이고 참아내며 함께 아파하며 때로는 상처도 받아야 하는 것임에도, 그동안 저는 너무 쉽고도 안일하게 일주일에 한 번 이들과 함께 해 주는 것으로 나의 할 일을 다한 듯한 생각을 은연중에 한 듯 합니다.

이제 관필 형제는 우리에게 많은 빈 자리를 남기고 주님 곁으로 갔지만, 오히려 그 빈 자리가 지금 제게는 축복의 공간임을 깨닫습니다. 관필 형제의 빈 자리를 통해, 내 자신을 비워내는 법을 배우며 또 그 빈 자리는 비워져야만 다시 채워질 수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마더 테레사의 말을 되새기며 관필 형제의 빈자리가 밀알에서 새로운 사랑의 자리로 만들어지기를 바랍니다.

“사랑이 참되기 위해서는 그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사랑은 상처를 받아야 하며 자기 자신을 비워내야 하는 것입니다.”

<워싱톤밀알선교단 최미진>